콜롬비아는 유엔결의를 접한 후 1개 대대를 파병할 뜻을 밝혔으나 자국의 경제 사정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참전에 따르는 무장·훈련·보급 등의 문제를 놓고 미국과 오랫동안 협상하는 바람에 실제 참전은 늦어지게 되었다.
콜롬비아는 우선 해군함정을 파견했으며, 육군은 참전국 중 가장 늦은 1951년 6월 16일 한국에 도착했다. 비록 참전 규모(프리깃함 1척, 지상군 1개 대대)는 작았지만 라틴아메리카의 유일한 참전국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적지 않았다.
미 제24사단에 배속된 콜롬비아 대대는 한국에서의 첫 전투인 흑운토령에서 11명의 부상자를 내며 혈전을 수행했다. 또한 금성 진격전투에서 대대장이 부상을 입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나 결국 목표고지를 확보했으며, 그 후 볼모고지 전투에서도 중공군의 대대적인 공격을 물리치고 전초선을 방어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