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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이제는 한류다. 우수한 기록문화 전통이 이어져 대한민국은 기록강국이 되었고 이제는 세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 기록, 이제는 한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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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영상 자막 ]  할머니들이 오래간만에 공연장에 나섰다. 전국 방방곡곡 아리랑이 한데 모이는 자리 누구랄 것도 없이 어깨를 들썩이며 한바탕 신명을 울린다.

    “배우기는 뭘 배워요 그냥 하지”
    “우리나라 동해물과 백두산이 그 노래같이 다 알아브러 여그 사람들은”

    한국인에게 아리랑은 민요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리랑을 부르고 삶의 현장 어디에서나 아리랑이 흐른다.
    단순한 삶 속에 인생의 희로애락과 수많은 이야기를 담은 노래, 유네스코 인류 무형문화유산 아리랑이다.
    경북 문경의 한 박물관. 아리랑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렸다.
    이곳에서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닌 아리랑이 발표되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로 잡힌 세 명의 한국인. 그들이 부른 아리랑이다.

    [멜라니/독일 훔볼트대학 라우트아카이브]
    베를리 라우트아카이브에는 한국어로 된 음반이 세 개 있는데 그 음반들의 첫 곡이 모두 아리랑입니다. 그래서 아리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고 아리랑의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독일 어느 학자들에 의해 수용소에서 채록된 아리랑. 100년간 잠들어 있던 망향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인에게 고향과 같은 이 소리. 아리랑은 과연 어떤 노래일까?

    아리랑은 아리랑 아라리와 같은 후렴을 유사한 선율로 부르는 민요를 말한다. 아리랑이라는 제목도 노랫말에 반복되는 후렴에서 나온 것이다. 아리랑은 아주 오래전부터 불리워진 토속민요에서 비롯되었다. 한반도 중북부에 위치한 강원도. 이 지역에 오랜 세월 구전된 향토 노동요에는 아리랑의 원형이 남아있다.


    [손병선/보유자/강릉학산오독떼기]
    여럿이서 소리하고 나면 고을이 들썩들썩할 정도로 일하는 게 힘이 안 든다고, 그러니 그 이튿날 자고 나서 또 소리를 하고..

    태백산맥을 끼고 있는 이 지역은 농사 부칠 땅이 적었다. 주민들은 산비탈을 깎아 밭을 만들고 척박한 땅을 일구어 나갔다. 쉼 없이 이어지는 고된 노동에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는 것은 어머니가 부르던 아주 오래된 노래였다.

    [인터뷰] 시집오고 한 40대 이런 사람들이 소리 하는 거 듣고 처녀 적, 열댓 살 때 어른들이 하는 거 듣고 그래했어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며 고단한 삶을 풀어주던 노래는 정선 고유의 아리랑이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전통시장 가운데 하나인 정선 오일장. 장터 한 복판에서 펼쳐지는 아리랑 공연은 단연 명물이다. 전국 각지에서 찾아온 사람들은 아리랑과 더불어 함께 어울린다.

    [김성로/ 관광객] 제가 아는 아리랑은 애환이 담겨 있고 슬픔이 담겨있는 민족의 (노래라고)알고 있는데 요즘은 시대가 바뀌어서 그런지 아리랑을 들으면 슬픔보다는 흥겨움도 느껴지고 좋은 것 같습니다.

    장터 인근에는 누구라도 아리랑을 배울 수 있는 열린 학당이 있다. 아리랑 굽이굽이에는 평범한 아낙을 소리 선생으로 만든 한 많은 세월이 담겨 있다.

    [배귀연/전수조교/ 정선아리랑] 아버지가 저를 키워서 결혼 시킬 때 너는 결혼을 해서 9년을 입을 다물고 살아야 한다고 했어요. 어른들이 엄하고 그러니깐 참다가 속에 병이 됐어요.

    고된 시집살이에 말 못할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주던 노래 아리랑은 그런 것이었다.

    [배귀연/전수조교/ 정선아리랑] (정선아리랑을 배우고 소리를 하니까) 화가 다 없어졌어요.

    시집살이는 서러웠고 남편은 원망스러웠지만 늘 그리웠다. 담담한 선율의 정선아리랑은 시대마다 다양한 퇴적층을 이루며 8,700여 수의 가사로 전해지고 있다.

    [김남기/보유자/정선아리랑] 삶의 애환이 되다 보니까 살아나가는 대로 가사가 다 있어요.
    [최진실/전수장학생/정선아리랑] 남아 있는 가사들 중에 전해 내려오는 가사들이 많잖아요. 지금도 계속되는 가사들도 많고 그 가사에 깊은 매력을 느끼고 감동을 느껴서 소리가 좋아서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뱃사공의 아리랑 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루터. 정선 아우라지는 조선시대 한양으로 목재를 운반하던 유명한 뗏목터였다. 특히 대원군의 경복궁 중수 당시에는 강원도의 질 좋은 목재들이 이 물길을 따라 한양으로 전해졌고 뗏군들이 부르던 노래도 함께 흘러들었다. 경복궁 중수에 동원된 백성들을 달래기 위한 놀이판에서 아리랑은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각 지방의 아리랑은 지역 토착민요의 음률을 흡수하며 발달했다. 한반도 서남부의 섬 진도. 한국에서 3번째로 큰 섬인 이 곳은 어로와 농사가 함께 발달한 곳이다. 뙤약볕 아래 땅을 고르던 부부가 잠시 그늘에 앉았다.

    “맛있어? ”
    “응.. ”
    “일하고 힘들어서(그런가보다)”

    무심한 눈길에 같이 산 세월만큼의 살뜰함이 배어있다.

    “게장 맛있다.”
    “그걸 좀 더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 때 못 잡아가지고 막내 주려고 좀 덜어놓고 큰 아들 다 줘버렸어. 그걸 싸달라고 하잖아.그래서 다 싸줬지.”

    평생 남편과 자식을 위해 살아온 아내. 그 삶을 아리랑이 없었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을까.

    [박수심] 나도 이제 속에 있는 것이 갑갑해 가지고 (아리랑 부르면) 속이 후련해요. 있는 대로 악을 쓰면.

    소리 사랑으로 유명한 진도에서는 어디에서나 아리랑을 들을 수 있다. 진도 아리랑에는 남도 특유의 음조인 육자배기 가락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진도는 진돗개도 멍멍하면 아리랑이 돼. 진돗개도 이렇게 멋지게 울어.

    [박병훈/회장/진도아리랑보존회] 이렇게 다른 아리랑은 다 세 마디 끝이 내려가는데 진도아리랑은 그 반대입니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여기서 흥겹고, 진도아리랑은 생동감이 일어난다.

    진도아리랑보존회 회원들은 모두 동네 주민들이다. 손에 잡히는 것이면 무엇이든 장단을 맞추고 살아온 내력을 엮어 부르다보면 끝이 나지 않는다.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로 가사를 지어 부르는 것은 아리랑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인터뷰 박정례] 내가 좋아하지.
    왜요?
    내가 혼자되었기 때문에
    바깥 분 생각도 많이 나시고?
    그러니까 그 노래가 나왔지. 기러기야 뭐 하러 울고 가느냐 울고 가면 너만 가지. 왜 잠든 나를 깨우고 가냐. 그것이 얼마나 좋은 노래요.

    인생사 쓰린 상처를 정으로 다스려 풀어내는 진도아리랑에서는 아낙들의 끈끈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한반도 동남부 경상도로 내려가면 아리랑의 기운이 한결 씩씩해진다. 넓은 들과 온화한 기후 삶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의 낙천성, 밀양의 아리랑은 흥과 힘이 넘친다.

    [이용만/회장/밀양백중놀이 보존회] 우리 밀양 아리랑은 수백 곡인데 보면 힘이 바짝바짝 난단 말이에요. 한번 보세요. ‘남의 집 서방님은 가마를 타는데 우리 집 저 문디는 콩밭 골만 탄다’ 이런 거 보세요. 전부 풍자가 다 들어간단 말이에요.

    나무를 하던 남자들이 이 산에서 저 산으로 주고받았다는 소리엔 슬픔을 신명으로 바꿔버리는 이곳 사람들의 특징이 담겨있다.

    [하용부/보유자/밀양백중놀이] 3박 장단으로서 굉장히 신명 나고 우리가 즐거운 표현을 할 때 부르는 소리가 밀양아리랑입니다.

    농사일의 고충을 달래주는 노동요이자 기쁠 때 흥을 돋우는 유희요로 마음을 담은 사랑노래로 아리랑은 민초들과 함께 했다. 아버지들이 부르던 노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박숙자/회원/밀양백중놀이 보존회] 지게목발장단이 우리 아버지들이 풀 베러 갔다가 힘드니까 쉬어가면서 두드려가면서 친구들끼리 막걸리 드시면서 부르시던 모습이 눈에 삼삼하죠

    19세기 중반 이후 아리랑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경제 발달로 직업적인 소리꾼들이 생겨나게 되자 서울, 경기지역의 명창들이 향토 민요 아리랑을 세련되게 편곡하여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뛰어난 소리목을 가진 그들의 아리랑은 시골 촌부들이 부르던 아리랑과는 또 다른 맛을 지닌 것이었다. 소리꾼들이 각 지역 아리랑을 레퍼토리로 수용하면서 다양한 아리랑이 대중적으로 확산되었다. 근대에 한국을 찾은 외국인 눈에도 아리랑은 한국인 그 자체였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펄벅은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표지를 아리랑으로 장식했고 선교자이자 역사학자였던 헐버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은 것이며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노래라고 말했다. 다양한 아리랑 가운데 전형이되는 곡이 탄생한 것은 1926년 민족 영화 아리랑이 크게 히트하면서 기존 아리랑을 편곡한 주제가가 모든 아리랑을 대표하는 멜로디가 되었다. 이 노래를 본조아리랑이라고 한다.
    한국인이 있는 곳은 어디에나 아리랑이 있었다. 민중들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였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한국인들은 아리랑의 선율에 가사를 붙여 저항의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20세기 초 식민과 전쟁의 격랑 속에 국경을 넘은 한국인을 따라 아리랑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김영운/교수/한양대학교 국악과] 해외로 그때 국내에서 못 살겠어서 이주해 간 한국 이주민들 그 사람들이 고향 생각이 날 때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노래는 자기가 고향을 떠나올 때 우리나라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었던 노래 그게 아리랑이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아리랑이 한국 디아스포라,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상징이 된 거예요.

    해외 아리랑의 범위는 일본, 중국, 러시아, 미국과 중앙아시아, 유럽, 남미에 이른다. 노래 하나가 세대와 장소를 뛰어넘어 민족을 하나로 묶는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다.
    아리랑은 하나의 노래를 넘어 현대 문화 전반에 흡수되었다. 생활용품에서부터 순수예술, 대중문화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은 아리랑을 통해 문화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
    아리랑 문화는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한 초등학교의 음악시간. 아이들은 교과과정을 통해 다양한 아리랑을 배우고 직접 불러본다.

    [인윤서/당수초등학교 6학년] 경기아리랑. 진도아리랑, 강원도아리랑 알아요. 흥겹고 떠는 느낌이 재미있어요.

    학교 밖에도 아리랑을 배울 수 있는 강좌는 많다. 국립극장에서 진행하는 국악아카데미. 이런 강좌는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하며 수강생들의 호응도 높다.

    [문수현/ 강사] 꺾는 음, 희망도~ 아주 낮게, 떨면서

    더 크게 소리 내질러요
    알겠어요.

    아리랑은 한국인의 정서를 더 깊이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콘텐츠다.

    “더 즐겁게,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웃으면서, 아라리가 났네“

    [크리스티안/ 루마니아] 진도아리랑이 아주 독특해서 배우는 것이 재미있어요. 이렇게 재밌게 변화하는 노래는 전에 불러본 적이 없어요.

    [리사 /미국] 아리랑은 아주 감동적인 음악이라고 생각해요. 아리랑에는 흥겨움도 있지만 한국인의 애환이 담겨 있어요.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면서 학술연구는 더욱 활기를 띠고 있다. 국내 및 해외 연구자들은 정기적인 교류를 갖고 한국 정신문화의 원형질인 아리랑에 대해 소통하고 있다. 한국어로 발표에 나선 힐러리 핀첨 성 교수. 민족학자인 그녀는 서울대학교 국악과에 임용된 최초의 외국인 교수다. 해금과 아리랑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핀첨 성 교수는 한국 문화의 DNA가 바로 아리랑에 숨어있다고 말한다.

    [힐러리 핀첨 성/교수/서울대학교 국악과] 아리랑은 한국의 역사, 아름다움, 문화를 대표하는 상징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못 느낄 수도 있지만 그들 안에는 아리랑의 무언가를 가지고 있고 외국인들도 아리랑을 듣고 부르면서 한국문화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특별한 역사성과 세계성은 아리랑을 국가의 상징으로 거듭나게 했다. 아리랑은 올림픽, 월드컵 등 중요한 국제 경기에서 전 국민의 응원가로 희망과 화합의 메시지를 전파했다.
    아리랑은 한국인의 정서를 온전히 담고 있으면서 세계적으로도 그 매력을 공유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포크가수 피트 시거는 반전과 평화를 소망하는 노래로 아리랑을 불렀고 지금도 전 세계의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이 아리랑을 모티브로 한 레퍼토리를 발표하고 있다. 아리랑의 변주와 재해석은 계속되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챔피언 김연아는 세계 선수권과 아이스쇼에서 아리랑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삼박자, 단순한 멜로디 즉흥 연주가 가능한 아리랑은 시대와 장르, 국가를 뛰어넘어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 되고 있다.
    시대와 함께 진화하며 새로운 전통을 창조해 가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고 무력한 백성들이 넘어야 했던 힘든 삶의 고개. 그때마다 아리랑은 서로를 위로하고 고난을 헤쳐 나갈 힘을 주었다.

    [이춘희/경기민요 보유자] 다른 민요보다도 특별히 아리랑은 가슴이 이렇게 저릿저릿하다고 할까. 또 좋을 때는 희열을 느끼는 그래서 아리랑은 여러 가지가 함축되어 있는 그런 뜻을 포함한 아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은 흥이 되고 한숨은 노래로 바뀌었다. 이제 아리랑은 국가의 경계를 뛰어넘어 열정과 화합, 치유와 평화의 노래로 세계인과 더불어 그 생명력을 이어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