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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고등보통학교
동래고등보통학교


한일합방 이후 1911년 조선교육령에 따라 교육제도가 새롭게 정비되면서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실업학교 및 중학교 등이 중등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고등보통학교는 ‘고등보통학교는 남자에게 고등한 보통교육을 하는 곳’이라 규정하고 교육목표를 ‘상식을 기르고 국민(일본인)된 성격을 도야하며 그 상황에 유용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친다.’라고 설정하였으며, 수업연한은 4년으로 하고, 입학자격은 12세 이상의 수업연한 4년의 보통학교 졸업자 또는 동등학력이상자로 규정하였다. 1922년 개정된 제2차 조선교육령에 의해 고등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은 5년으로 되었으며,(여자고등보통학교는 4-5년) 1938년 제3차 교육령이 공포되면서는 모든 고등보통학교가 중학교로 개칭되게 되었다.(여자고등보통학교는 고등여학교로 개칭) 이는 전쟁기에 들어서면서 일제가 ‘내선일체’ 등을 내세우며, 기존의 조선인/일본인 학교로 나뉘어 있는 중등교육기관의 교명을 동일하게 한 것이었다.

1898년 공립동래부학교로 설립된 동래고등보통학교는 일제강점 이후, 1922년 사립에서 관립으로 바뀌게 되었다. 1923년 4월 2일 현재 동래고등학교 부지인 동래구 칠산동 360번지로 이전하여 1925년 4월에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로 개칭하였으며, 1938년에 제3차 조선교육령에 의거하여 동래공립중학교로 개칭하였다. 해방 이후, 1951년 9월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분리하여 동래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1964년에 대화재로 교사가 소실되었고 1968년에 다시 신축하게 되었다.

동래고등보통학교의 부지는 도로에 면한 낮은 부지와 그 뒤의 높은 부지로 구성되었고, 후면의 높은 부지에 교사와 기숙사를 신축하였다. 후면의 부지는 ㄱ자 형의 부지로서 도로 쪽에 가까운 동쪽부분에 기숙사를 두고 북서쪽으로 교사군을 신축하였다. 교사는 주도로에서 운동장으로 추정되는 공터를 지나 진입하게 되어 있었고, 기숙사의 출입은 따로 부지의 동쪽모서리에서 이루어졌다. 1922년에서 23년 사이의 도면으로 추정되는 [도판1]에서 초기의 계획을 볼 수 있는데 북쪽에 두 동의 교사와 강당이 있었고 그와 연결된 남쪽에 세 동의 기숙사와, 수직으로 연접된 식당과 사감실 건물이 있었다.
[도판2]는 1923년의 도면으로 빗금으로 표시된 교사와 기숙사 두 동 및 식당이 가장 먼저 신축됨을 보여준다. 이 중에서 교사가 먼저 1923년에 완공되었고 이후 기숙사 두 동과 식당, 사감실이 신축되었다. 1924년에 기존 교사 맞은편에 새로운 교사가 계획․신축되었는데, 이때 초기의 계획안이 변경되었다. 이는 [도판3]의 빗금 친 부분에서 확인되는데, 기존의 안 보다 교사 건물의 좌우측 길이가 짧아지고, 이에 따라 신축예정인 교사와 회랑 연결이 계단실로 되던 것을, 계단실을 바깥으로 돌출하여 내부 복도와 직접 만나게 하여 좀 더 효율적인 동선이 가능하게 하였다.

1923년 첫 번째로 신축한 교사는 서쪽부가 2층이고, 동쪽부가 1층인 박공지붕의 목구조 건물이었다. 2층으로 된 부분은 모두 교실로서 한 층에 4개씩 총 8실의 교실이 있었으며 1층은 특별교실로서 박물교실 및 준비실로 구성되었다. 입면은 주출입구에 박공을 두어 중심을 강조하면서 세로로 긴 격자창을 사용하는 당시 관립 학교의 전형적인 입면구성을 따르고 있었다.([도판4] 참조) 두 번째로 신축한 교사는 전형적인 좌우대칭의 목구조 건물로서 1924년에 변경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난방을 위한 굴뚝을 설치하였다. 계단실은 단부에 돌출되어 있었고 1층에는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측에 사감실, 교장실, 교관실, 회의실, 교실 1실이 있었으며 2층에는 동일한 크기의 7실의 교실이 위치하였다.([도판5] 참조)
기숙사는 목구조 건물로, 두 동의 기숙사 건물이 수직으로 연접하여 동쪽에 식당 및 취사시설을, 서쪽에 사감실을 두고 있었다. 특히 기숙사의 단위주거는 각 실이 복도로 연결되었으며, 각 실에는 2개의 수납공간이 있었다. 또한 두 단위주거 당 하나의 굴뚝을 공유하여 온돌난방을 하였다. 입면의 마감은 나무판을 가락잇기형식으로 붙여서 당시 목조 기숙사의 전형적인 격자형 패턴을 만들었다.([도판6] 참조)

참고 : 한국교육시설학회, 한국근대학교건축발달사(전편, 1895-1945), 2004
부산동래고등학교 홈페이지, http://www.dongnae.hs.kr



도판1. 동래고등보통학교부지배수공사평면도, 1922-23년경


1922년-23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래고등보통학교부지배수공사평면도’를 통해 동래고등학교의 부지 및 초기 배치 계획을 알 수 있다. 건축부지는 도로에 면한 낮은 부지와 그 뒤의 높은 부지로 구성되었다. 후면의 부지는 ㄱ자 형의 부지로서 도로 쪽에 가까운 동쪽부분에 기숙사를 두고 북서쪽으로 교사군을 신축하였다. 교사는 주도로에서 운동장으로 추정되는 공터를 지나 진입하게 되어 있었고, 기숙사의 출입은 따로 부지의 동쪽모서리에서 이루어졌다. 대지의 북쪽에 두 동의 교사와 강당이 있었고 그와 연결된 남쪽에 세 동의 기숙사와, 수직으로 연접된 식당건물과 사감실 건물이 있었다.


도판2. 동래고등보통학교부지설계평면도, 1923


1923년의 동래고등보통학교부지설계평면도를 통해 1923년 당시의 건축상황을 알 수 있다. 우선 빗금친 교사와 기숙사 두 동 및 식당과 사감실을 신축하게 되는데, 이 중에서 교사동을 먼저 신축한다. 이 도면의 범례를 통해 1923년 당시 교사는 이미 완공되었고 그 후 기숙사 두 동과 식당, 사감실을 신축하려고 했었음을 알 수 있다.


도판3. 동래고등보통학교본교기타배치도, 1924


이 도면을 통해 1924년에 기존 교사 맞은편에 새로운 교사가 계획․신축되었는데, 초기의 계획안이 변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기존의 안 보다 교사 건물의 좌우측 길이가 짧아지고, 이에 따라 신축예정인 교사와의 회랑 연결이 계단실로 되던 것을 계단실을 바깥으로 돌출하여 내부 복도와 직접 만나게 하여 좀 더 효율적인 동선이 가능하게 하였다.


도판4. 동래고등보통학교본교사신축공사설계도교실기타, 1922-23년경

 
1923년에 첫 번째로 신축한 교사 도면으로 서쪽부가 2층이고, 동쪽부가 1층인 박공지붕의 목구조 건물이었다. 2층으로 된 부분은 모두 교실로서 한 층에 4개씩 총 8실의 교실이 있었으며 1층은 특별교실로서 박물교실 및 준비실로 구성되었다. 입면은 주출입구에 박공을 두어 중심을 강조하면서 세로로 긴 격자창을 사용하는 당시 관립 학교의 전형적인 입면구성을 따르고 있었다.


도판5. 동래고등보통학교본교사기타신축공사설계변경도, 1924년경


1923년 이후 두 번째로 신축한 교사의 신축변경도면으로 1924년경에 작성되었다. 교사는 전형적인 좌우대칭의 목구조 건물이었으며, 초기의 계획에서 변경되어 좌우의 길이가 짧아지고 단부의 계단실이 돌출되었다. 난방을 위한 굴뚝도 새롭게 계획하였다. 이 교사의 평면구성을 보면 계단실은 단부에 돌출되어 있었고 1층에는 현관을 중심으로 좌, 우측에 사감실, 교장실, 교관실, 회의실, 교실 1실이 있었으며 2층에는 동일한 크기의 7실의 교실이 위치하였다.


도판6. 동래고등보통학교기숙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1923


1923년에 작성된 기숙사 신축공사 도면이다. 기숙사는 목구조 건물로, 두 동의 기숙사 건물이 수직으로 연접하여 동쪽에 식당 및 취사시설을, 서쪽에 사감실을 두고 있었다. 특히 기숙사의 단위주거는 각 실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각 실에는 2개의 수납공간이 있었다. 또한 두 단위주거 당 하나의 굴뚝을 공유하여 온돌난방을 하였다. 입면의 마감은 나무판을 가락잇기형식으로 붙여서 당시 목조 기숙사의 전형적인 격자형 패턴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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