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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고등보통학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경성고등보통학교,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한일합방 이후 1911년 조선교육령에 따라 교육제도가 새롭게 정비되면서 고등보통학교, 여자고등보통학교, 실업학교 및 중학교 등이 중등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특히 고등보통학교는 ‘고등보통학교는 남자에게 고등한 보통교육을 하는 곳’이라 규정하고 교육목표를 ‘상식을 기르고 국민(일본인)된 성격을 도야하며 그 상황에 유용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친다.’라고 설정하였으며, 수업연한은 4년으로 하고, 입학자격은 12세 이상의 수업연한 4년의 보통학교 졸업자 또는 동등학력이상자로 규정하였다. 1922년 개정된 제2차 조선교육령에 의해 고등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은 5년으로 되었으며,(여자고등보통학교는 4-5년) 1938년 제3차 교육령이 공포되면서는 모든 고등보통학교가 중학교로 개칭되게 되었다.(여자고등보통학교는 고등여학교로 개칭) 이는 전쟁기에 들어서면서 일제가 ‘내선일체’ 등을 내세우며, 기존의 조선인/일본인 학교로 나뉘어 있는 중등교육기관의 교명을 동일하게 한 것이었다.

경성고등보통학교의 전신은 대한제국 당시의 관립중학교이다. 대한제국이 1899년 중학교 심상과 4년, 고등과 3년의 관제를 공포하면서, 1900년에 관립중학교가 지금의 종로구 화동 1번지에서 개교하였으며, 1906년에 관립한성고등학교로 개칭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 이후, 1911년에 공포된 조선교육령에 따라 경성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가, 1921년에 경성에 고등보통학교(경성제이고등보통학교)가 한 개 더 설립되면서,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 1922년에 개정된 제2차 조선교육령에 의거해 수업연한이 5년으로 연장되었으며, 관리가 경기도로 이관되면서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되었다. 1938년 제3차 조선 교육령이 공포되면서 경기공립중학교로 개칭되었으며, 해방 이후, 1951년에 경기중·고등학교로 분리되었다가, 1971년 중학교는 폐쇄되었다. 경기고등학교는 한국전쟁 이후, 1954년부터 세종로 소재 체신부 가교사를 사용하다가 1956년 종로구 화동 교사로 복귀하였으며, 1976년 현재의 강남구 삼성동 교사로 이전하게 되었다. 종로구 화동의 부지에는 1977년부터 정독도서관이 개관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화동 구 경기고교, 현 정독도서관 본관은 2002년에 등록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관립한성고등학교와 경성고등보통학교의 배치는 시기별로 큰 변화를 보인다.
1900년대 후반의 관립한성고등학교 시절의 배치를 [도판1]에서 볼 수 있다. [도판1]은 1906년에서 1910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배치도로, 동서로 길고 북쪽으로 구릉진 비정형의 대지 위에 부지의 서쪽 부분에 석축을 쌓아 부지를 평탄하게 만든 후 주요 교사 3동을 건립하였다. 'A'라고 표기된 본관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 2동의 교사를 더 지어 각각을 회랑으로 연결하였고, 회랑에는 작은 부속가를 건설하였다. 본관의 남쪽으로 돌출된 부지는 운동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의 출입은 서쪽에서 이루어졌으며, 운동장 방향의 석축에는 두 개의 계단이 설치되었다. 또한, 학교 부지를 북서쪽으로 확장하려는 계획과 ‘c' 교사 서쪽으로 교사를 1동 더 신축하려는 계획을 붉은 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도면에는 ’부지 2351평, 건물 298평‘ 이라 표기되어 있다.
이후 1911년에 경성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된 직후의 상황을 [도판2]에서 볼 수 있다. [도판2]는 ‘(경성)고등보통학교증축공사배치도’로 1910년대 중반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도판1]에서 계획하였던 부지의 확장과 교사 신축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지는 북서쪽으로 확장되어 동서로 긴 장방형의 부지가 되었다.
남향하고 있는 본관을 포함하여 총 4동의 주요 교사가 한성고등학교 시절부터 건립되어 있었으며, 이 시기에 증축공사를 통해 교실 2동과 생도구소, 수공실, 기숙사를 증축하려는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4동의 교사는 본관과 본관의 동북쪽으로 약간 물린 교사, 그리고 그 북쪽으로의 일자형 교사 2동이 있었는데, 협소한 대지에 4동의 교사를 더 짓다 보니, 서쪽의 추가 확장된 공지로도 대지가 협소하여 증축되는 교실 건물이 기존 건물열 사이에도 끼여 들어가게 되었으며, 수공실도 북쪽의 자투리 부지에 건립되게 되었다. 그 결과 교실 건물 전체 배치는 총 3열에 가까운 배치가 되었다. 또한, 원래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던 남쪽으로 돌출된 부지에는 기숙사 건립이 계획되었으며, 기숙사 건립으로 인해 없어지게 된 운동장은 추후 부지 확장을 통해 교사의 북쪽에 다시 확보하게 되었다.
학교의 주 출입은 본관의 남서쪽 오르막길을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학교의 후면에 기숙사를 배치하는 것에 비해, 본관 남쪽으로의 돌출된 부지에 기숙사가 증축된 것은 부지의 협소함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도판3]는 1918년에 작성된 배치도이다. 당시에 북쪽으로 부지를 재확장하면서 학교의 배치가 크게 변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배치의 변화는 북쪽의 교실을 본관으로 수선․ 증축하여 전체 학교의 배치를 북면하도록 바꾼 것이다. 운동장도 북쪽으로 확장된 부지에 새로 배치하였고, 북쪽 중앙의 기존 교실 건물에 포치와 현관을 덧붙이고, 건물을 수선하여 새로운 본관을 형성하였다. 학교의 정문도 부지의 서쪽에 신축하여, 정문에서 진입하면 왼쪽으로 운동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본관과 교실군이 위치하는 배치가 완성되었다.
1919년의 [도판4]은 기숙사배치도로, 학교 부지의 북쪽에 대지를 추가로 확보하여 기숙사를 신축하는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기숙사의 부지는 구릉지에 위치하여 사면으로 석축을 쌓아 기숙사 부지를 확보하고, 3동의 기숙사와 식당 건물을 두었다.
1922년의 [도판5]의 배치도에서 보이는 주요한 변화는 대지의 남쪽에 있던 구 본관과 구 기숙사가 철거된 것이다. 구 본관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작은 교실 건물과 창고를 신축하였다. 구 기숙사도 철거되었으며, 배치도에 연필로 약하게 스케치가 되어 있어 추가적인 건물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요 교실 군들을 회랑을 통해 연결시키는 계획을 볼 수 있다.
1920년대 중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판6]에서는 대지 남동쪽의 교사를 철거하고 1910년대 중후반에 신축된 교실군([도판2] 참조)들과 열을 맞추어 건물을 증축하는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1922년까지의 연이은 부지확장과 공사로 인해 경성고등보통학교의 배치가 완성되었다. 남북으로 긴 부지의 중앙에 운동장이 자리하였고, 그 서쪽에 정문이 위치하였으며, 부지의 북쪽에는 기숙사가, 남쪽에는 교실이 위치하였다. 교실군의 북쪽 중앙에 본관이 위치하였으며, 그 좌우로 강당과 교실이 위치하였고, 뒤쪽열에 다시 3동의 교실군이 있고, 그 뒤쪽에 독립교실과 창고가 위치하였다. 1910년대 관립중학교 시절의 무질서한 배치가 2열의 병렬 배치로 완성되게 된 것이다.
학교의 연혁에 의하면, 1925년에 본관이 신축 준공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관련 도면이 없어 자세한 상황은 알 수 없지만, [도판6]에서 보이는 북쪽의 운동장 자리에 신축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자체는 현재까지 남아 있어, 종로구 정독도서관의 본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화동 구 경기고교’의 이름으로 2002년에 등록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철근콘크리트 3층 건물로 근대적인 재료와 공법을 사용하였음에도 여전히 조적조 건축 시기의 양식건축 특징을 여전히 가지고 있어, 좌우대칭의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중앙에 포치가 돌출되고 상부를 높이 쌓아 수직성과 중심성을 강조하고 있다. 창호 역시 좁고 긴 형태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였다.

[도판7]은 1910년대 중후반에 작성된 도면으로 당시 신축된 2동의 교실에 대한 평면도와 입면도이다. 교실은 2층 목조 건물로 건립되었으며, 각각 3개의 교실이 계획되었다. 지붕은 경사지붕을 사용하였고, 외벽은 목조 미늘판벽으로 마감하였다.
[도판8]은 1918년에 작성된 도면으로 당시 북쪽의 교실동을 본관으로 수선․증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 목조 2층의 교사를 1층 평면의 북쪽에 돌출부를 형성하고 그 앞쪽으로 포치를 만들었으며, 내부 평면을 사무실 등의 용도로 개조한 모습을 보여준다. 돌출된 중앙의 1층부에는 전면으로 우진각형태의 경사지붕이 만들어졌다. 입면의 창호 또한 본관에 걸맞게 세로로 좁고 긴 창호로 바뀌었으며, 좌우대칭의 형태로 계획되었다. 정면이 북향함에 따라, 주요 실들이 남향하고, 북쪽으로 복도가 위치하였으며, 포치-현관-홀-계단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이 형성되어 있다.

참고 : 한국교육시설학회, 한국근대학교건축발달사(전편, 1895-1945), 2004
서울경기고등학교 홈페이지, http://www.kyunggi.hs.kr/



도판1. 관립한성고등학교평면도, 1906-10년 추정


1900년대 후반의 관립한성고등학교 시절의 배치를 보여주는 도면으로 1906년에서 1910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동서로 길고 북쪽으로 구릉진 비정형의 대지 위에 부지의 서쪽 부분에 석축을 쌓아 부지를 평탄하게 만든 후 주요 교사 3동을 건립하였다. 'A'라고 표기된 본관을 중심으로 북동쪽으로 2동의 교사를 더 지어 각각을 회랑으로 연결하였고, 회랑에는 작은 부속가를 건설하였다. 본관의 남쪽으로 돌출된 부지는 운동장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학교의 출입은 서쪽에서 이루어졌으며, 운동장 방향의 석축에는 두 개의 계단이 설치되었다. 또한, 학교 부지를 북서쪽으로 확장하려는 계획과 ‘c' 교사 서쪽으로 교사를 1동 더 신축하려는 계획을 붉은 색으로 표시하고 있다. 도면에는 ’부지 2351평, 건물 298평‘ 이라 표기되어 있다.


도판2. 고등보통학교교실기타증축공사평면도, 1910년대 중후반 추정


‘(경성)고등보통학교증축공사배치도’로 1910년대 중반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도면이다. 1911년에 경성고등보통학교로 개칭된 직후의 상황을 볼 수 있다. [관립한성고등학교평면도]에서 계획하였던 부지의 확장과 교사 신축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부지는 북서쪽으로 확장되어 동서로 긴 장방형의 부지가 되었다.
남향하고 있는 본관을 포함하여 총 4동의 주요 교사가 한성고등학교 시절부터 건립되어 있었으며, 이 시기에 증축공사를 통해 교실 2동과 생도구소, 수공실, 기숙사를 증축하려는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4동의 교사는 본관과 본관의 동북쪽으로 약간 물린 교사, 그리고 그 북쪽으로의 일자형 교사 2동이 있었는데, 협소한 대지에 4동의 교사를 더 짓다 보니, 서쪽의 추가 확장된 공지로도 대지가 협소하여 증축되는 교실 건물이 기존 건물열 사이에도 끼여 들어가게 되었으며, 수공실도 북쪽의 자투리 부지에 건립되게 되었다. 그 결과 교실 건물 전체 배치는 총 3열에 가까운 배치가 되었다. 또한, 원래 운동장으로 사용되었던 남쪽으로 돌출된 부지에는 기숙사 건립이 계획되었으며, 기숙사 건립으로 인해 없어지게 된 운동장은 추후 부지 확장을 통해 교사의 북쪽에 다시 확보하게 되었다.
학교의 주 출입은 본관의 남서쪽 오르막길을 활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학교의 후면에 기숙사를 배치하는 것에 비해, 본관 남쪽으로의 돌출된 부지에 기숙사가 증축된 것은 부지의 협소함으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


도판3. 경성고등보통학교교사증축기타공사배치도, 1918


1918년에 작성된 배치도이다. 당시에 북쪽으로 부지를 재확장하면서 학교의 배치가 크게 변하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배치의 변화는 북쪽의 교실을 본관으로 수선, 증축하여 전체 학교의 배치를 북면하도록 바꾼 것이다. 운동장도 북쪽으로 확장된 부지에 새로 배치하였고, 북쪽 중앙의 기존 교실 건물에 포치와 현관을 덧붙이고, 건물을 수선하여 새로운 본관을 형성하였다. 학교의 정문도 부지의 서쪽에 신축하여, 정문에서 진입하면 왼쪽으로 운동장이 있고 오른쪽으로 본관과 교실군이 위치하는 배치가 완성되었다.


도판4. 경성고등보통학교기숙사배치도, 1919

 
1919년에 작성된 기숙사배치도로, 학교 부지의 북쪽에 대지를 추가로 확보하여 기숙사를 신축하는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기숙사의 부지는 구릉지에 위치하여, 사면으로 석축을 쌓아 기숙사 부지를 확보하고, 3동의 기숙사와 식당 건물을 두었다.


도판5. 경성고등보통학교도랑하신축공사배치도, 1922


1922년의 배치도에서 보이는 주요한 변화는 대지의 남쪽에 있던 구 본관과 구 기숙사가 철거된 것이다. 구 본관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작은 교실 건물과 창고를 신축하였다. 구 기숙사도 철거되었으며, 배치도에 연필로 약하게 스케치가 되어 있어 추가적인 건물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요 교실 군들을 회랑을 통해 연결시키는 계획을 볼 수 있다.


도판6.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교사증축설계배치도, 1920년대 중반 추정


1920년대 중반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면으로, 대지 남동쪽의 교사를 철거하고 1910년대 중후반에 신축된 교실군([관립한성고등학교평면도] 참조)들과 열을 맞추어 건물을 증축하는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도판7. 경성고등보통학교교실증축설계도, 1910년대 중후반 추정


1910년대 중후반에 작성된 도면으로 당시 신축된 2동의 교실에 대한 평면도와 입면도이다. 교실은 2층 목조 건물로 건립되었으며, 각각 3개의 교실이 계획되었다. 지붕은 경사지붕을 사용하였고, 외벽은 목조 미늘판벽으로 마감하였다.


도판8. 경성고등보통학교교사증축급모양체설계도, 1918


1918년에 작성된 도면으로 당시 북쪽의 교실을 본관으로 수선․증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존 목조 2층의 교사를 1층 평면의 북쪽에 돌출부를 형성하고 그 앞쪽으로 포치를 만들었으며, 내부 평면을 사무실 등의 용도로 개조한 모습을 보여준다. 돌출된 중앙의 1층부에는 전면으로 우진각형태의 경사지붕이 만들어졌다. 입면의 창호 또한 본관에 걸맞게 세로로 좁고 긴 창호로 바뀌었으며, 좌우대칭의 형태로 계획되었다. 정면이 북향함에 따라, 주요 실들이 남향하고, 북쪽으로 복도가 위치하였으며, 포치-현관-홀-계단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이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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