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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 돌파에 대한 지령

문서개요

38선 돌파에 대한 지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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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서 제목│ 38선 돌파에 관한 지령
  • 대통령 이름│ 이승만
  • 생산 기관│ 대통령 비서실
  • 생산 일자│ 1951.3.18
  • 이관 연도│ 1982년
  • 관리 번호│ AA000294
  • 문서 크기│ 17.6×25.5(cm)
  • - 대통령비서실에서 작성한 문서이며, 1951년 3월 18일자로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관련 부처 등에 통보한 사본(寫本)으로「38선 돌파에 관한 지령」1건으로 1철이 구성되어 있다.
  • - 1982년 대통령비서실에서 정부기록보존소(국가기록원 전신)에 이관되었으며, 이관 당시에는『대통령지시사항(依命)관계철(1951)』에 합철 되어 있었다.
  • - 이 문서에 이승만 대통령의 서명은 없으나, 정부기록보존소 직제 개정(1986년 6월 14일 대통령령 11930호)에 따른 대통령 재가 문서의 특별 관리(“대통령 결재 문서에 대하여 대통령기록문서고를 설치하여 이를 수집, 관리 보존하여야 한다.”) 규정에 따라 ‘대통령 결재 문서’로 관리되었다.
문서탈초

단기4284년 3월 18일

대비지 제 호

사본

대통령      귀하

38선 돌파에 관한 지령

무마정책과 친공분자들이 세계 각처에서 열광적으로 선전 활동해서 <1>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올라가면 세계 대전이 날 것이니 절대로 막아야 한다는 것이요, 또 맥아더 장군은 공(산)군 근거지인 만주를 폭격하지 않고는 전쟁을 속히 완수할 수 없을 것임으로 유엔에서 그 권리를 허락하지 않으면 차라리 퇴군하는 것이 옳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연합군 장병들은 이 전쟁을 완수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많은 희생을 하며 이만큼 성공한 자리에 지금 중지하고 만나면 모든 희생이 다 허지(虛地)로 돌아가고 세계 대전도 피치 못할 것이니 밀고 올라가야 되겠다는 사상이 충만하고 있는 중이나 이 사상을 공개로 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오늘 우리의 형편이다.

유엔에서는 세계 대전을 피할 것을 최고 목적으로 다수가 평화적 해결책을 완수한다는 조건 아래 의미 없는 토의로 시일을 보내고 있는 동시에 <2>영국과 인도 같은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친공주의를 가지고 극력 활동해서 아무쪼록 한국을 포기하고 구라파와 향항(香港)[홍콩]을 보호하자는 것을 최고 목적으로 삼아 오는 터이니 이에 처한 우리로는 이 기회를 잃고 우방들의 결정만 기다리고 있다가는 결국 우리가 다 함몰할 자리에 들어갈 것이므로 우리 국군 장병들은 맹렬한 결심으로 어떠한 장애와 난관이 있을지라도 이를 다 막론하고 38선을 신속히 넘어가서 우리를 막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말할 여지조차 없도록 만들어 놓아야 세계 공론이 돌변해서 친공·반공하는 각국 분자들의 구별이 드러나서 우리의 목적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절대로 구원하게 될 것이요, 유엔 내에 있어서도 의려(疑慮)하고 주저하는 사람들을 다 용맹스러히 군병할 것이니, 오늘 이 기회가 일변으로 위험하며 일변으로 희귀한 시기임을 알고, 대한민국 국군 원수인 대통령의 명령으로 이에 지시하는 바이니, 이 명령을 아직 공개로 발표하지는 말고, 사람마다 준비하고 있다가 기회 있는 대로 밀고 올라가서 38선을 타파시킨 뒤에는 혹 맥아더 장군이나 릿지웨이 장군이 지휘를 불복한다는 말이 있을지라도 이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책임지고 대답할 것이므로 우리가 정신과 군사상으로 절대 준비해서 38선을 돌파하고 올라가야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맥아더 장군과 릿지웨이 장군이 지금 이런 것을 허락할 수 없는 형편이요, 도리어 이것을 공개로 찬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이것을 막으려고도 할 것이나, 그분들이 정신상으로는 이것이 당연한 줄로 알 것임으로 극력 막으려고는 못할 것이며, 설령 그분들이 경우에 따라서는 공개로 정지시킬지라도 우리로는 거기에 복종할 수 없는 터이니, 이에 대해서는 본 대통령이 책임을 질 것이요, 또 필요한 경우에는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서 우리 민국 통일과 독립 완수를 위해서 전적으로 복종하기를 자에 지령함. 이상.

학습정리하기
  • <굳세어라 금순아>의 3절에서 ‘북진통일 그날이 오면’에서 북진통일은 당시 정부의 공식입장이기도 한데, 과연 북진통일이 가능했을지 국가기록원의 대통령 기록 ‘38 선 돌파에 관한 지령’을 분석해보자.
  • 6·25전쟁의 발발에서 협정까지 간단한 연표를 만들어 본 뒤, 위 문서가 생산된 시 점의 전쟁 상황을 간략히 정리해보자.
  • <1> ‘유엔군이 38선 이북으로 올라가면 세계대전이 날 것이니’ 와 같은 비판이 제기되었음에도 이승만정부와 미국이 38도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명령한 이유, 즉 이승만 정부와 미국이 북진을 통하여 얻고자 했던 정치·군사적 대가가 무엇이었으며 그 결과 6·25전쟁의 성격이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 <2> ‘영국과 인도 같은 나라들은 자기 나라의 친공주의를 가지고 극력 활동해서 아무쪼록 한국을 포기하고 구라파와 향항(香港)[홍콩]을 보호하자는 것을 최고 목적’에서처럼 영국은 6·25전쟁의 조속한 종결을 희망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당시 맥아더 유엔 사령관의 견해와 상반되는 것이다. 6·25전쟁과 관련하여 홍콩과 대만에 대한 영국 정부와 맥아더 사령관의 견해 차이를 생각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