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이야기(의)

  • 한복에서 양복으로
  • 신생활복의 등장
  • 미니스커트의 등장
  • 교복자율화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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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에서 양복으로

(사진)홍영식-일본의문물제도를조사하기위해파견된소위신사유람단(1983), CER0000050(11-1)

홍영식-일본의문물제도를조사하기위해파견된소위신사유람단(1983), CER000005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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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 이후 서구문화가 조선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조선정부는 근대문화와 제도를 받아들여 조선을 근대화시킬 방법을 강구하였다. 이웃나라 일본과 중국으로 사절단을 파견하여 새로운 문화를 배워오게 하였다. 1881년 일본에서 신식문화를 배우기 위해 박정양, 어윤중, 홍영식 등으로 신사 유람단을 조직하여 일본에 파견하였다.

현재까지는 이들이 양복을 입고 귀국한 것이 조선인 가운데 최초의 양복 입은 신사로 알려져 있다.

1896년 1월 고종이 「문무관복제개정령」을 선포하고, 본인도 종전의 의관을 벗고 양복으로 바꾸었다. 전근대의 상징이던 한복과 상투는 단발과 양복으로 변하였다.

중앙의 관리들이 양복으로 갈아입고, 권력과 재력 있는 자들부터 서서히 양복에 반질반질한 머릿기름을 바른 짧은 머리로 권위를 이어나갔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일본인들이 조선으로 건너오면서 양복문화는 급속히 퍼져나갔다.

(사진)한복여인담화(1978), CET0048928(2-1)

한복여인담화(1978),
CET004892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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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일본은 조선에 양복을 만들 수 있는 옷감을 마구 제공하였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양복이 많이 보급되었을 법하지만, 간간이 발견되는 사진들을 보면 여전히 조선의 많은 민중들은 무명으로 짠 힘없는 한복으로 몸을 칭칭 감고 있다. 일제 말이 되면서 부녀자들의 노동복으로 몸뻬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백의민족의 상징물인 한복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해방이 되자 귀환동포들이 몰려들어 왔고 미군도 진주하였다. 이들이 입고 들어온 복장은 그동안 고이 지켜온 한복 중심의 복장 패턴을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자나 여자들이 한복을 벗고 양장을 하기란 쉽지 않았다. 한국전쟁은 많은 공장시설을 파괴하기도 했지만 원조물자나 구호물자, 군용관련 물자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시기이기도 했다.

(사진)73년봄신세계뉴모드패션쇼2(1973), CET0029807(2-1)

73년봄신세계뉴모드패션쇼2(1973), CET00298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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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의잡지(1977), CET0047401

한국의잡지(1977),
CET0047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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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어지러움 속에 거추장스러운 한복보다 간편한 양장계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중반 원조자금으로 면방직공장이 복구되고, 고급복지를 생산하는 공장이 등장하였다. 나일론이 수입되다가 생산되면서 새로운 옷감이 다양한 옷을 만들 수 있게 하였다. 1956년 10월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패션쇼가 열렸다.

패션의 변화에는 당시 상영되었던 영화나 출판된 여성용 잡지들이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점차 양장이 한복을 압도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고, 사치를 근절하는 재건국민운동의 영향으로 의류제품의 수입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수출산업으로 섬유산업이 발달하면서 국내 의류산업 또한 발전하였다. 재건운동 과정에서 재건복, 즉 남자와 여자의 근무복이 등장하고, 사회 전반적으로 간편복이 강요되면서 자유로운 패션에 걸림돌이 되는 듯 했다.

1970년대 들어서자 서양 옷이 우리의 평상복이 되었다. 한복은 어머니들이 큰 일이 있어 외출하는 날이나 명절 때나 등장하는 특별한 옷이 되었다. ○○라사, ○○양복점이니 하는 양복 맞추는 집들이 한 몫 보는 시기도 이즈음이었다.

(사진)백화점전경(1966), CET0066557(2-1)

백화점전경(1966), CET00665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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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초, 반도패션, 삼성물산, 코오롱, 한일합섬, 제일모직 등 대기업에서 기성복을 만들어 내면서 수제품 양복점들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컬러텔레비전의 등장, 1983년 교복자율화,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 해외여행 자유화, 수입 자유화 등은 패션산업에도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그리고 백화점과 대형할인마트의 등장은 패션의 다양화를 더욱 부채질하였다.

1990년대 이후 웰빙 바람은 건강의 중요성을 일깨웠고, 이 바람을 탄 스포츠용품은 또 다른 스포츠 패션을 만들었다. 그리고 IT산업 발달과 함께 통신판매가 증가하면서 우리의 입을 거리는 한층 다양해졌다.

* 출처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보는 생활사, 제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