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이야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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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활복의 등장

박정희 대통령은 국가재건을 실현하려면 민족성과 인간성을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인간성 개조의 대상은 게으르게 일은 하지 않고 남의 것을 얻어먹는 거지들, 남을 괴롭히고 폭력을 일삼는 깡패들, 연예인들이 주요 대상이었다. 연예인들, 특히 배우들은 인간개조 대상이라는 이유로 재건운동의 여기저기로 불려 다녔다.

인간개조는 국민들의 정신개조에만 있지 않았다. 정신은 입고 다니는 옷에 따라 바뀔 수 있기 때문에 옷도 개조 대상이었다.

1961년 10월 전 국민들에게 ‘표준 간소복’ 을 정하여 입도록 하였다. 표준 간소복이란 의미는 국가에서 일률적으로 지정했다는 의미에서 표준이고, 종전의 펄렁펄렁한 한복 대신 활동하기에 편리한 간편복이란 의미에서 간소복이다. 이 옷을 제정한 이유는 한복에 비해 돈도 많이 들지 않아 옷값에 소비되는 돈을 아껴 절약할 수 있고, 이 옷을 착용함으로써 재건을 위한 새로운 정신을 함양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로 필요하였다. 간소복은 주로 양복을 입던 사람들에게 양복 대신 입도록 하는 복장이었다. 그 종류는 남자근무복, 여자근무복, 여자 개량한복, 남자 하절기 노동복이며, 근무복이 중심이었다.

(사진)재건운동본부주최신생활간소복패션쇼24(1961), CET0037044(24-1)

재건운동본부주최신생활간소복패션쇼24(1961), CET0037044(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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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 간소복’이 정책으로 결정되어 실시되기까지 다양한 홍보가 이루어졌다.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직후인 6월 25일 재건운동 서울시지부가 여성 신생활 복장을 시민에게 공개하였다. 공개방식은 실내에서 치러진 일반적인 패션쇼 형식이 아니었다. 10여 명의 유명 배우들이 간소복을 입고 모델로 나섰다. 미녀 배우들이 입고 홍보한 복장은 한복과 양장의 고급스러운 옷이 아니라 검소하고 위생적이며 활동에 편리한 옷이었다.

같은 해 8월에는 재건국민운동본부가 ‘신생활간소복패션쇼’ 를 열었다. 영화배우들이 모델로 등장하였고, 농민들이 입는 농민복에서 사무복까지 37점의 간소복을 관람객들에게 소개했다.

배우들이 입고 웃음 짓는 모습을 목격한 국민들은 거추장스러운 한복을 벗어던지고 활동에 편리한 간편복을 입고, 근대적인 사고를 생산하도록 강요받았던 셈이다.

4~5개월의 홍보와 준비를 거쳐 10월에 공개된 ‘표준 간소복’ 은 재건의 꿈을 담은 희망의 복장이기는 했지만, 직장이나 가정에서, 아니면 학교에서 이 복장을 입은 사람들은 국가를 생각하고, 충성을 다하는 국민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간소복 착용을 요구한 것은 이 시대만이 아니었다. 1955년 이승만 정권 때에도 물자난 때문에 국무위원과 각급 공무원에게 솔선해서 국내에서 생산된 복지로 만든 생활복을 착용하도록 국회에서 결정하기도 했다.

(사진)공무원신생활복착용(196-1), BA0084279(8-1)

공무원신생활복착용(196-1), BA00842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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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10월 국민에게 간소복을 소개하기에 앞서 정부는 솔선수범을 보이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공무원 신생활복’ 을 착용토록 강요하였다. 국민의 신생활 체제를 확립하고 재건의식을 고취하고자 사치한 옷차림을 없애는 뜻에서 신생활복장을 제정하여 널리 국민에게 보급시키려는 재건국민운동본부의 권장에 호응하여, 정부는 국민의 모범자로서 솔선수범하기 위해 공무원과 국영기업체 종사원에게 신생활복을 착용토록 하였다.

이는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표준 간소복 착용운동을 정착시키려는 의도였다. 신생활복을 만들 때는 모직 70%에 면직 30% 이하의 복지를 선택해 사치스럽지 않게 제작토록 했다.

근무복은 남자의 경우 넥타이를 사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구분하였다. 단추는 3개 혹은 4개로 두 가지 종류였다. 여자용은 원피스에 손목에는 소매 끝을 만들고, 치마는 무릎과 발목의 중간 정도로 활동에 편리하게 제작해, 거추장스럽지 않을 정도였다.

공무원들의 경직되고 획일적인 근무복은 1996년 정치적·사회적인 자율화의 분위기에 편승해 사라지게 되었다.

* 출처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보는 생활사, 제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