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식이야기(의)

  • 한복에서 양복으로
  • 신생활복의 등장
  • 미니스커트의 등장
  • 교복자율화 추진
  • 기록물로 다시 살펴보기

처음으로 > 복식이야기(의) > 미니스커트의 등장

미니스커트의 등장

(사진)미니스커트 단속을 위해 길이를 재고 있는 경찰.

미니스커트 단속을 위해 길이를 재고 있는 경찰.

196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적으로 번져나간 히피문화가 팝음악과 함께 유입되면서 팝음악의 소도구 역할을 했던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게 되었다. 대학생을 중심으로 권위주의 정치체제 하에서 각종 규제와 제재가 만연하던 상황에서 복장이라도 자유를 만끽하고픈 젊은이들의 일종의 저항의식이 발동하여 장발과 미니스커트는 1970년대를 상징하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967년 미국에서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귀국하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초미니, 핫 팬츠라는 단어가 이 시절에도 유행어였다. 무릎 위 20cm 이상은 단속 대상이었고, 경찰은 대나무 자를 들고 이를 확인하였다.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장발과 미니스커트를 퇴폐풍조로 규정하고 이의 근절을 작심한 정부는 단속에 나섰다. 그야말로 통제와 단속의 시대였다.

이 시대를 풍자하는 시대극에서 흔히 볼 수 있듯,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들은 자를 들고 단속에 나선 경찰들과 추격전을 벌이거나 실랑이를 벌이기 일쑤였다. 당시의「경범죄처벌법」에 의하면, 미니스커트 단속기준은 무릎 위 20cm였다고 한다.

(사진)장발족 단속1(1975), CET0027488(1-1)

장발족 단속1(1975), CET0027488(1-1)

원문보기

하지만 젊은이들의 머리모양과 복장을 법으로 통제하려는 정부의 조치는 그리 효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정부는 주기적으로 강력한 단속을 실시했으나 장발과 미니스커트의 유행은 사라지지 않았고, 단속의 성과가 미미하자 1976년에는 당시 성행하던 새마을운동과 병행하여 지역단위 기관, 단체, 기업체, 공장, 각급 학교 등의 소속장 책임 하에 단속을 실시하도록 하여 이를 뿌리 뽑고자 시도하기도 했다. 1980년(9월 6일)에 가서야 결국, 정부는 이러한 단속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하고 내무부 장관이 단속 중지를 지시하게 된다.

* 출처
국가기록원, 기록으로 보는 생활사, 제15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