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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주대회

  • 제3회 경상북도 산주대회장 전경,
    1975, CET010552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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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회 경상북도 산주대회 시
    유공자 표창,
    1975, CET01055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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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이 내무부로 이관되면서 내무 행정력이 강해졌고 산주와 산림청을 비롯하여 산주와 도 · 시 · 군 · 읍면이 서로 협력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또 산주의 관계도 상호 협동하는 관계로 묶어 놓아야 산림녹화 활성화를 앞당길 수 있고 땔감채취의 무질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여 산림청에서는 산주들 화합협력의 장으로 산주대회를 열었다.

제1회 전국산주대회는 1973년 10월 26일 산이 가장 많은 강원도에서 시작하여 11월 4일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순차적으로 각도에서 단위대회 형식으로 열렸다. 대회의 목적과 취지는 정부가 추진하는 ‘제1차 치산녹화 10년계획’ 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하여 산주의 자발적인 조림참여 의욕을 고취하고, 산주가 지녀야할 사명과 의욕을 다짐하며 전 국민의 조림에 대한 참여 분위기를 진작시키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있었다.

대회를 민간운동형태로 이끌기 위하여 민간산림단체의 주축을 이루는 대한산림조합연합회가 대회를 주최하고 여기에 내무부, 산림청, 각도가 적극적인 후원을 하였다.

그 후 산주대회는 도단위 대회와 군단위 대회로 나누어 개최되었다. 대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산주, 마을양묘 지도자, 산림계장, 임업공무원, 임업기업인, 시장 · 군수, 경찰서장, 교육장, 교수 · 학생 등이었으며 각 대회에 참가한 인원수는 500~1,000여명이 넘었다.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산림경영에 관한 성공사례 발표, 우수조림가에 대한 표창 등을 함으로써 산주의 산림경영의욕을 고취시키고 국민의 애림사상을 높이도록 하였다.

‘제1차 치산녹화 10년계획’ 이 끝난 것을 계기로, 도 단위 산주대회는 1979년 제7회 대회로, 군단위 산주대회는 1980년 역시 7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그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