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관계철
이 기록물철은 조선총독부 경무국(警務局) 경무과(警務課)에서 1931년도 경비관계 문건 50여 종을 편철한 것이다. 이것들은 1932년 1월부터 12월 사이에 주로 전국 각 도의 경찰부장이나 도지사가 조선총독부 경무국장에게 보낸 것과 경무국장이 전국 각도의 도지사나 경찰부장에게 보낸 것이다. 이 밖에 조선총독부 학무국장, 도서과장, 문서과장, 비서과장, 조선군 참모장 등이 보낸 것이나 진해요항부(鎭海要港部) 등에서 보낸 것들도 있다. 또한 일본 도쿄(東京)이나 중국 상하이(上海)의 파견원이 보낸 전보문도 상당수 수록되어 있으며, 기타 각지에서 각처로 보낸 문건들도 상당량이 있다. 이 기록물철은 모두 1931년 9월 만주사변(滿洲事變) 이후 일제의 조선 내 또는 국경지대에 대한 치안 및 경비 상황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즉 이 문서는 1931년 9월 18일 일제가 불법적으로 만주를 점령한 후 한반도를 일제 전쟁 수행의 병참기지로 삼아 본격적인 대륙침략을 준비하게 되는 시점에서, 일제가 전국 각지의 경비 및 치안계획을 어떻게 수립했는가를 보여주는 문건들로 엮여 있다. 이 문건들을 면밀히 검토해 보면, 이 시기 들어 조선 내에서 ‘조선군(朝鮮軍)’과 일제경찰의 연계나 협력 체계가 점차 강화되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30년대 당시 조선에서는 우가키(宇垣一成) 총독을 중심으로 이른바 식민지 ‘안정화’ 정책이 추진되던 상황에서 오히려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 사회운동은 이전 시기에 비해 더욱 폭동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으며 기왕의 사회주의자들이나 학생층을 중심으로 ‘만주사변’ 이후 반전·반제투쟁이 본격화되고 있었다. 따라서 일제측에서는 이전 시기보다 훨씬 조선 내의 치안 및 경비에 엄중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했으며, 거기에 수반하여 강화된 경비력은 주로 경찰관이나 순사들이 그 업무를 담당하였다. 특히 국외 항일무장투쟁세력의 새로운 재편과 활동이 본격화되던 상황에서 만주와 한반도 접경(接境)지역인 국경지대는 이러한 경찰력이 집중되었던 곳이었다. 이 기록물철은 이러한 상황에서 일제가 본격적인 경비계획을 어떻게 취하려 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자료이다.

창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