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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향한 여섯발의 총성 그리고 그후

저격 사건을 수사하라-드러나는 용의자들

1956년 1월 30일 아침, 사건현장을 목격한 증인들의 진술에 따라 인상착의와 범행시 사용된 차량의 특징을 토대로 육군특무부대는 사건발생 당일인 1월 30일에 전체 파견특무부대장 앞으로 〈부대장저격범체포수배〉를 하달하여 전대원을 총동원하여 범인을 체포하고, 범행에 사용된 지프차에 대한 차량수색을 지시하였다.

부대장저격범체포수배 1956년 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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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육군특무부대는 사건수사 10여일이 지나도 김창룡 저격 범인들을 체포하지 못하다가 1956년 2월 10일에서야 저격범들과 인상이 흡사한 용의자들의 소재를 파악하고 〈고김중장저격범소재심지보고〉를 작성하게 된다. 특무부대에서는 김창룡을 암살할 만한 유력한 혐의자를 찾던 중 허태영대령을 주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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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동기가 되어 마침내 육군특무대는 허태영 집 주위에 잠복해 있다가 증인들이 진술한 자들과 흡사한 용의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이름은 신초식으로 나이는 30세 가량이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육군특무대에 군속으로 입대하여 마산, 전방 등지에서 근무하였고, 특무대에서는 허태영의 심복 부하였던 인물이었다. 현장을 목격한 증인들이 진술한 인상착의와 비슷하고, 용의자 허태영 집을 자주 왕래하는 것으로 보아 김창룡 특무부대장의 저격용의가 농후하다는 보고를 올렸다.

고김중장저격용의자소재심지보고 1956년 1월 30일  고김중장저격용의자소재심지보고 1956년 1월 30일

이후 육군특무부대의 수사관들은 2월 20일 허태영의 집과 신초식의 의정부에 있는 처가 주변에 잠복하여 주변 인물들의 동향을 수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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