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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수결(서명)

  • 수결의 의미
  • 왕과 대통령의 수결(서명)
  • 수결 이야기

수결이야기

오성 이항복 李恒福

오성은 쌓여있는 업무를 빨리 처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간단한 수결을 고안하였는데, 그 모양은 '一' 자로 그 아래위에 아무 표시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사안의 결재가 논의되었을 때 자신의 수결을 둔 기억이 없어 결재한 바 없다 하였는데 담당관은 오성의 수결이 있는 문건을 제시하면서 '분명 대감의 수결임에 틀림없지 않으냐'고 반박했다.
이에 오성은 '一'자 수결이 틀림없으나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고, 자신이 손수 둔 수결과 대조하라고 하였다.
비교 결과 진짜 수결에는 '一'자 좌우 양끝에 바늘 구멍이 뚫려 있었고, 가짜 수결에는 좌우에 구멍이 없어 진짜와 가짜가 판명되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다른 표시를 해 둔 재치 덕분에 곤란을 넘기긴 하였으나 이 사건 후, 오성은 다른 수결을 만들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나로티 시모니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물론 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한사람으로 추앙받고 있는 미켈란젤로는 로마 산피에로 대성당의 "피에타(Pieta)"에만 직접 서명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작품의 성모 마리아 옷깃에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나로티 제작' 이라는 서명이 들어가 있다.

그런데 왜 미켈란젤로는 '피에타'에만 서명을 했을까? 여기에 두가지 이유가 전해진다.
첫째, 롬바르디아인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보고 롬바르디아인의 작품이라고 한데서 격분하여 서명했다는 것이다.
둘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있는 그리스도 얼굴과 '피에타' 의 그리스도 얼굴이 비슷해서 자기의 작품임을 명백히 밝히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클로드 드뷔시 Claude Debussy

20세기 음악의 기초를 확립한 프랑스 음악가 드뷔시는 의지의 표시로 서명을 활용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드뷔시는 50세 때 암에 걸렸고, 얼마 후 1차 세계대전(1914-1918)이 발발했다.
애국심에 불탄 그는 군에 입대해서 조국을 위해 싸우고 싶었지만, 건강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그는 전쟁터에 나가 싸우는 것은 포기하고, 대신 적에 의해 파괴되어 가는 프랑스 고전예술의 재건을 위해 한동안 손을 놓았던 작곡을 다시 시작했고, 그런 의지의 표시로 자신의 작품 악보에 '프랑스 작곡가 클로드 드뷔시'라 서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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