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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기록원 이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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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대국민 기록정보 서비스 및 기록문화 확산을 위해 매월 시의성 있는 주제를 선정하여 관련된 기록을 소개합니다.

  1. 01월
    '밤의 거리,부활하다' 야간 통행금지 해제에 관한 보고
  2. 02월
    국토건설단 창단식
  3. 03월
    `말하는 꽃` 기생, 민족의 이름으로 일어서다
  4. 04월
    근대 법제 이후 최초의 형사판결문
  5. 05월
    1957년 대한민국 어린이헌장 제정
  6. 06월
    1984년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7. 07월
    중학입시제도 폐지
  8. 08월
    광주(廣州)대단지 사건
  9. 09월
    1975년 조총련계 재일동포 모국방문단
  10. 10월
    독일로 파견되는 한국 간호사
  11. 11월
    1964년 '수출의 날' 제정
  12. 12월
    1967년 지리산국립공원 지정
본 콘텐츠는 2007. 6월 ~ 2017. 12월 개발된 콘텐츠입니다.
2008년 10월

독일로 파견되는 한국 간호사

10월의 기록은 독일로 파견되는 간호사들이 비행기 트랩에 오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경제개발을 추진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력수출을 추진했다. 가장 유망한 직종으로 떠오른 것은 광부와 간호사였다.

광부는 1963년 12월 27일 1진 243명이 독일로 떠날 때부터 정부가 주도했다. 간호사는 1950년대 후반부터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다가 정부의 추진계획에 따라 1966년부터 정부대행기관인 한국해외개발공사가 공식적으로 추진했다. 1960년대 한국이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휴노동력의 해외 파견에 따른 국내 실업 완화와 외화획득을 위하여 정부 차원에서 간호사와 광부의 독일 파견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10월의 기록은 독일로 파견되는 간호사들이 비행기 트랩에 오르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1962년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한 정부는 경제개발을 추진할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으로 인력수출을 추진했다. 가장 유망한 직종으로 떠오른 것은 광부와 간호사였다.

광부는 1963년 12월 27일 1진 243명이 독일로 떠날 때부터 정부가 주도했다. 간호사는 1950년대 후반부터 민간 차원에서 이루어지다가 정부의 추진계획에 따라 1966년부터 정부대행기관인 한국해외개발공사가 공식적으로 추진했다. 1960년대 한국이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유휴노동력의 해외 파견에 따른 국내 실업 완화와 외화획득을 위하여 정부 차원에서 간호사와 광부의 독일 파견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한국전쟁 후 피폐한 경제상황, 사회적 혼란과 원조를 받는 나라에는 차관을 줄 수 없다는 미국의 입장표명으로 외국으로부터의 차관을 얻기 어려운 상황에 있던 우리나라는 같은 분단을 경험하고 있는 독일에 경제사절단을 파견해 어려운 상황에서 차관을 받아낼 수 있었다.

독일정부 역시 생산분야에 노동력이 집중되면서 노동조건이 좋지 않은 탓에 자국 노동자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광산이나 간호직에 인력을 양성하기보다 외국의 인력을 수입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필요 인력을 수입하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3년 고용으로 독일로 간 한국의 간호사들은 한국과는 달리 간호 이외의 잡일과 청소 등 온갖 궂은 일까지 담당해야 했지만 독일 언론에서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할 수 있을까?"라며 경이로워 할 정도로 헌신적으로 일하며 ‘코리아니쉐 엥겔(한국의 천사들)’로 불리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오일쇼크’ 여파와 간호사의 노동조건이 나아지면서 외국인 간호사들은 우선 감축 대상이 되었고, 1976년부터 독일정부가 노동허가와 체류 허가를 연장해 주지 않음으로써 외국인 간호사들의 독일 생활이 어렵게 되었다. 한국인 간호사들은 ‘5년 이상 종사자는 무기한 노동허가, 8년 이상 종사자는 무기한 체류 허가’를 요구하며 1977년 12월에는 1만 1천명의 서명을 받는 등 추방 조치에 항의하는 행동을 하는 등 낯선 땅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동시에 이질적인 문화와 생활에 적응해 나갔다. 독일에 파견된 한국인 간호사 1만여 명, 광부 7,900여 명이 1970년대 후반까지 한국에 보낸 송금액은 연간 5,000만 달러로 한 때 국민총생산(GNP)의 2퍼센트에 달하기도 했다. 이들이 송금한 돈은 1960,70년대 경제 여건에서 국제수지 개선과 국민소득 향상을 가져오는 등 한국의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되었다. (공개서비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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