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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문화영화로 보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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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0년대 문화영화의 특징
  • 1950년대 주요 문화영화 해설

우리의 공업 (1956, 이형표)

이 영화는 제일모직, 럭키화학, 기아산업, 흥아타이어, 문경시멘트, 충주비료공장, 한국화약, 장항제련소, 장성탄광, 화천수력발전소 등 전국 각지에 건설•가동 중인 공장에서 국산품을 생산하는 모습이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그려져 있다. 20여개소의 촬영장소에 제작비만 5백여만환이 든 이 영화는 총 28분 분량으로 되어 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1956년은 이승만 정부에서 경제개발계획이 처음으로 구상된 해이다. 경제개발계획은 1958년에 구체화되지만 실시되기 전에 4.19가 일어났고, 민주당 정부 역시 경제개발계획을 실시하기 직전 5.16으로 좌절되었던 것이다. 1950년대는 오늘날 ‘재벌’이라 불리우는 많은 대기업들이 자리를 잡아나갔던 시기이기도 하다.

  • 우리의 공업 (1956, 이형표)
    우리의 공업 (1956, 이형표)
    우리의 공업 (1956, 이형표)
    우리의 공업 (1956, 이형표)
    우리의 공업 (1956, 이형표)

정의는 부른다 (1957, 김영권)

영문제목이 <Justice Demands : United Nations Membership for the Republic of Korea>인 이 영화는 영문판으로 만들어져 15개국 공관에 배포되었다. 제작계획서 상의 제목은 <Korea wants UN admission (Why not Korea?)>였다. UN 결의에 의해 탄생한 대한민국이 UN에 가입하지 못한 부당함을 알리고 전국 각지에서 열린 UN가입 추진운동 상황을 편집하였다. 대한민국의 UN 가입이 역사적으로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한국 국민들이 열화와 같이 UN 가입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당시 UN가입은 남북한의 정통성 경쟁에서 승리함을 의미했기 때문에 이승만 정부는 UN가입에 열의를 다했지만 UN 안전보장이사회 사회주의 국가들의 거부권 행사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 마찬가지 이유로 북한 역시 UN에 가입하지 못하다가 냉전 질서가 해체되던 1991년에서야 남북한 동시 UN가입이 이루어졌다.

  • 정의는 부른다 (1957, 김영권)
    정의는 부른다 (1957, 김영권)
    정의는 부른다 (1957, 김영권)
    정의는 부른다 (1957, 김영권)
    정의는 부른다 (1957, 김영권)

자손 만대에 고하노라 (1957, 이형표)

이 영화는 3.1절 경축영화이다. 3.1독립선언문 낭독으로 시작하여 선열들의 독립투쟁, 8.15광복의 기쁨과 미군 진주, 이승만의 귀국 환영행사, 초대 대통령 취임식, 3.1절 경축행사, 3.1절 노래 합창으로 끝맺는다. 이승만 정부 시절부터 3.1운동은 대한민국 역사의 시작으로 자리매김되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3.1운동 이후 각지에서 만들어진 임시정부들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상해에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임시정부 인사들의 귀국에 대한 언급도 역시 없다. 이 영화는 3.1운동이 그 이후의 독립투사, 열사들, 학생들의 저항운동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주면서, 8.15광복과 미군 진주 다음에 이승만의 귀국과 취임식을 연달아 편집함으로써 3.1정신이 결국 이승만 정부에게로 귀결되었음을 강조한다. 이 영화는 ‘민족’의 독립정신을 앙양하는 화면으로 시작하여, 용공 저지와 자유 수호 등 ‘반공’의 깃발을 휘날리며 끝난다. ‘민족’과 ‘반공’이 결합한 1950년대의 전형적인 서사를 띠고 있다.

  • 자손 만대에 고하노라 (1957, 이형표)
    자손 만대에 고하노라 (1957, 이형표)
    자손 만대에 고하노라 (1957, 이형표)
    자손 만대에 고하노라 (1957, 이형표)
    자손 만대에 고하노라 (1957, 이형표)

새로운 출발 (1957, 김영권)

이 영화는 직업보도기관의 도움으로 절망에서 벗어나 경제적인 자립을 하게 된 전쟁미망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1인칭 시점으로 재연된 다큐드라마 형식이다. ‘나’는 19세에 결혼하여 6.25때 남편을 잃고 살길이 막막하여 식모살이를 하게 되지만 기술을 배우고 싶은 마음이 크다. 국립서울자매원에 들어가 미용 기술을 배워 미용사가 된 ‘나’와 국립서울모자원에서 양재 기술을 배워 양재사로 일하고 있는 이웃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전사한 남편을 둔 여성을 높여 칭하는 ‘전쟁 미망인’이라는 용어는 사실 남편을 따라죽지 못한 여성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1955년 조사에 의하면 전체 미망인의 수는 100만여 명에 이르며, 이 중 대다수가 전쟁 미망인이거나 이산으로 인해 남편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경우였다. 남편이 죽었건 불구가 되었건 간에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여성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노동이나 행상, 품팔이, 삯바느질, 음식 장사 등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한 여성들의 경제적 투쟁은 전후 여성의 지위와 활동을 규정하는 주요 요인이었다. 이 영화는 그러한 여성들의 자립을 위해 만들어진 시설을 홍보하는 영화인데, 여성 주체가 화자가 되어 자전적인 실화를 전달한다는 것은 당시 극장의 주요 고객인 여성 관객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기록영화에 극적 요소를 더한 기획이 돋보이는 영화이다.

  • 새로운 출발 (1957, 김영권)
    새로운 출발 (1957, 김영권)
    새로운 출발 (1957, 김영권)
    새로운 출발 (1957, 김영권)
    새로운 출발 (1957, 김영권)

내 강산 좋을시고 (1957, 이형표)

이 영화에는 음악영화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다. 방아타령에서 시작하여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 흥타령, 고전무용, 밀양아리랑, 꼭두각시 춤, 남원 광한루 화면, 막간 춘향전, 정선아리랑, 농부가, 농악놀이, 국악협주 등을 다채롭게 엮었다. 마치 노래, 음악, 무용, 코미디를 다양하게 엮은 극장의 쇼무대(버라이어티쇼)를 그대로 영화로 옮긴 듯하다. 이 영화는 <민속예술제>(1958, 강래식), <홀리데이 온 아이스 쑈오>(1958, 강래식), <원각사 개관 예술제>(1959, 라한태) 등과 함께 1950년대 문화영화 중에서 계몽이나 선전이 아닌 순수 오락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흔치 않은 경우이다. 그렇지만 순수 오락영화라고 하더라도 정부 시책과 관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 정부는 ‘명랑’을 사회의 중요한 가치로 내걸었다.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배고프고 고달픈 삶을 살아갔던 국민들을 좌절에 빠지지 않도록 유도하고 위로와 희망을 주는 것은 사회와 국가의 유지에 필수적인 일이었다. 이 영화는 16mm로 14벌이 복사되어 각 지방에 배포되었는데, 순회상영 시에는 계몽성이 짙은 문화영화들 사이에서 대중의 관심을 끌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 내 강산 좋을시고 (1957, 이형표)
    내 강산 좋을시고 (1957, 이형표)
    내 강산 좋을시고 (1957, 이형표)
    내 강산 좋을시고 (1957, 이형표)
    내 강산 좋을시고 (1957, 이형표)

보리를 기르는 새비료 (1958, 양종해)

이 영화는 한미경제조정관실(OEC)이 한국정부와 합의한 ‘공보기술 개선 사업계획(Improvement of Technical Information Services)’에 의해 기획된 것이다. 이 사업계획은 영화 기술과 인력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으로, 모든 기획과 구성안, 제작상의 유의사항, 심지어 기술고문과 자문위원까지 한미경제조정관실(OEC)에서 맡고, 영화과 대한영화사에서는 이를 받아 그대로 제작하였다. 형식적으로는 한미경제조정관실(OEC)이 영화과에 제작의뢰를 하는 절차를 갖추었는데, 한미경제조정관실(OEC)이 요청한 영화들은 대부분 농사기술이라든가 위생, 보건, 생활 등에 관련된 교육영화였다. 이 영화의 내용은 농토의 토질개량에 필수불가결한 석회비료의 원료와 제조과정, 과학적인 비료 사용법, 비료를 쓰기 전과 후의 농작물 성장 변화, 비료의 과학적 성분 분석 등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써 농토를 개량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16mm로 20벌이 복사되어 10벌은 보관되고 10벌은 각 지역 농사원에 배포되었다. 한미경제조정관실(OEC)이 기획하고 영화과가 제작한 문화영화들은 모두 원조로 획득한 대충자금으로 제작되었다. 이 계통의 문화영화들은 모두 원조경제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미국의 경제적, 사회적 조치들에 정당성을 부여한 문화적 기제이기도 했다.

  • 보리를 기르는 새비료 (1958, 양종해)
    보리를 기르는 새비료 (1958, 양종해)
    보리를 기르는 새비료 (1958, 양종해)
    보리를 기르는 새비료 (1958, 양종해)
    보리를 기르는 새비료 (1958, 양종해)

약진 10년 (1958, 강래식)

이 영화는 대한민국 정부수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영화이다. 지난 10년간 국민과 정부가 전쟁을 극복하고 수립한 빛나는 업적을 국내외에 공개하고 정부의 업적을 기록으로 보존한다는 취지로 만들었다. 전4편으로 되어 있으며, 제1편은 ‘정치와 외교’, 제2편은 ‘농·축·수산업, 교통’, 3편은 ‘체신, 산업경제’, 4편은 ‘교육문화, 국방’이다. 제1편 ‘정치와 외교’에서는 애국가를 시작으로 정부수립, 6.25전쟁 발발, 유엔군의 참전, 반공포로 석방, 휴전협정 체결, 이승만 대통령의 장개석 총통 방문, 클라크 장군 초청 일본 유엔군 총사령부 방문, 아이젠하워 초청 미국 방문, 이 대통령의 미의회 연설과 미국 주요 도시 순방 및 거리 퍼레이드,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외국과 방문협정 체결, 베트남 대통령 내한 등을 다루었다. 제2편에서는 폐허가 된 국토를 시작으로 식량 증산, 축산 개량, 수리시설 발전, 어선 보유량 증가 등 농·축·수산업의 발전과 3대 산업선 개설, 시발택시와 버스, 여객기 운항 등 교통발전을 다루었다. 제3편 체신 분야에서는 자동전화 신설, 공중전화 보급, 우체통 개량, 국제 우체국 신설 등을, 산업경제 분야에서는 화력발전소 및 수력발전소, 충주 비료 공장, 삼척과 문경의 시멘트 공장, 유리공장 등을 다루었다. 제4편 교육 분야에서는 의무교육 완성 6개년 계획 수립, 학교수와 학생수 증가 상황 등을 그렸으며, 문화 분야에서는 음악, 미술, 영화 등 예술 분야에서의 발전과 텔레비전 방송국 건설, 종일 방송 실시, 방송문화 발전, 동남아 예술사절단 파견, TV 프로그램 제작 모습, 극장 시설 확충, 한국의 집 건설, 한강 인도교 복구 공사, 재건과 부흥으로 나아가는 서울의 변화상 등을 그렸다. 국방 분야에서는 육군 600명으로 발족하여 100만 대군으로 자유세계 3위라는 비약적 발전을 이룬 국군의 발전상을 다루었다. 1950년대 각 분야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이 영화는 기록영화이면서도 선전영화로서 약진하는 국가의 이미지를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다고 할 수 있다.

  • 약진 10년 (1958, 강래식)
    약진 10년 (1958, 강래식)
    약진 10년 (1958, 강래식)
    약진 10년 (1958, 강래식)
    약진 10년 (1958, 강래식)

건강한 어머니와 어린이 (1959, 최창균)

이 영화는 한미경제조정관실(OEC)의 요청에 의해 제작된 계몽교육영화이다. 임신 중인 용길 엄마 ‘나’의 1인칭 나레이션으로 모자 보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보건소 의사로부터 임신 중 정기 검진의 필요성, 임신 중 주의사항 등을 듣고 보건간호원의 도움을 받아 집에서 무사히 순산하게 된다. 산모와 아기의 건강을 챙기는 보건소의 의사와 간호사, 그리고 실제 임산부의 진찰 모습 등을 통해 신생아 건강검진 및 예방접종을 꼭 해야 한다고 계몽하고 있다. 아기를 목욕시키는 법이나 옷을 입히는 법, 안전하게 아기를 안는 법 등을 시연해 보이는 간호사의 모습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아기 엄마들의 진지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모자 보건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던 당시에 모자 보건의 중요성을 강조한 드문 영화이다.

  • 건강한 어머니와 어린이 (1959, 최창균)
    건강한 어머니와 어린이 (1959, 최창균)
    건강한 어머니와 어린이 (1959, 최창균)
    건강한 어머니와 어린이 (1959, 최창균)
    건강한 어머니와 어린이 (1959, 최창균)

둑(발전은 협력에서) (1959, 양종해)

이 영화는 한미경제조정관실(OEC)(USOM으로 개칭) 요청으로 만든 영화로서, 교육영화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미국이 추진한 지역사회개발사업을 홍보하는 계몽선전영화이다. 부흥부 및 지역사회개발 중앙위원회 제공, 공보실 제작이라는 영어 크래딧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The Dyke: Development through Cooperation>이다. 1인칭 시점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두 명의 직업 배우와 함께 실제 지역민을 출연시켜 지역사회개발 시범부락인 강원도 명주군 강동면 모전리의 사례를 극화한 일종의 다큐드라마이다. 세트 제작을 포함, 400만환에 달하는 제작비가 든 대작 문화영화라 할 수 있다. 6년전 군에서 제대하고 돌아온 ‘나’(김동식)는 황폐한 마을을 변화시키기 위해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여 둑 쌓기에 나선다. 방해하려는 사람들에 동요하기도 했지만 사재를 털어 헌신하는 이장에게 감동한 마을 사람들은 결국 협력하여 둑을 완성하고 빈곤에서 벗어난 삶을 영위한다는 내용이다. 이 영화는 1960년 제7회 아세아영화제 문화영화 부문 최우수기획상을 수상하였다.

  • 둑(발전은 협력에서) (1959, 양종해)
    둑(발전은 협력에서) (1959, 양종해)
    둑(발전은 협력에서) (1959, 양종해)
    둑(발전은 협력에서) (1959, 양종해)
    둑(발전은 협력에서) (1959, 양종해)

쥐를 잡자 (1959, 김영권)

이 영화는 주한미경제협조처(USOM) 요청에 의해 제작된 1분 10초 가량의 대한늬우스 부록 만화영화이다. 쥐가 식량을 갉아먹고 이질, 장티푸스, 흑사병과 같은 전염병을 옮기므로 약이나 덫으로 쥐를 잡아야 한다는 내용의 영화이다. 1950년대의 대표적인 시사만화인 ‘코주부’ 캐릭터를 활용해 동화 작업을 진행했다. 김용환 화백의 <코주부>는 광복 직후 영자신문 『서울타임즈(The Seoul Times)』에 연재되다가 1946년 말에 중단되었고, 1952년 『서울신문』에 106회, 1956년에 『평화신문』에 90회 연재되었다. 또한 『코리안 리퍼블릭(The Korean Republic)』에도 창간호(1953.8.15)부터 1959년 12월 31일까지 약 6년 4개월 동안 매일 게재될 정도로 당시 한국을 대표하는 만화 캐릭터였다. ‘코주부’ 만화는 대사가 없으며 정치 비판이나 사회 풍자보다는 생활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명랑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이 영화는 ‘코주부’ 캐릭터의 특징을 활용해 대사 없이 자막으로만 주제를 전달한다. 문화영화 장르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쥐를 잡자 (1959, 김영권)
    쥐를 잡자 (1959, 김영권)
    쥐를 잡자 (1959, 김영권)
    쥐를 잡자 (1959, 김영권)
    쥐를 잡자 (1959, 김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