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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목: |
부군폐합 관계서류 * 해당 철의 내용설명을 볼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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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년도: | 1914년 |
기록물 유형: | 일반문서류(문서대장) |
생산기관: | 지방행정 |
소장위치: | 대전국가기록정보센터 |
공개여부: | 공개 |
관리번호: | CJA0002545 |
[부군 폐합에 관한 건(경기도장관->정무총감 : 1913.11.19)]
신청
올해 8월 6일자 비제467호로 위 제목의 건에 관하여 의견을 제출하였는데, 조사표 및 기타에서 오류가 있어 별지대로 정정하고자 하니 이를 처리해주시기 바랍니다.
조사서
(一) 폐합 이유 중 16을 다음과 같이 고친다.
一六. 양평군(楊平郡) 남종면(南終面)은 한강을 끼고 대안인 광주군(廣州郡)에 연속하여 동방에 산령을 두고 있어 자연히 양평 지방과 격리되어 있기 때문에 남종면을 분할하여 광주군(廣州郡)에 이속함이 지당하다고 보인다.
[부·군폐합에 관한 건(경기도장관->정무총감 : 1913.8.6)]
비제467호
5월 30일, 동월 31일 및 6월 2일자 내비제114호로 위 제목의 건에 관한 통첩에 따라, 조사한 바 별지조사서 대로 조치함이 지당하다고 인정되니 양지하기 바라며 도면 및 관계서류를 첨부하여 이에 대한 의견을 제출합니다.
조사서
(一) 폐합의 이유
一. 경성부(京城府) 및 고양군(高陽郡)을 병합한다. 경성부(京城府) 및 고양군(高陽郡)을 병합함은 경성부(京城府) 동부(東部), 서부(西部), 남부(南部), 북부(北部), 중부(中部)의 5부 및 용산면(龍山面), 숭신면(崇信面), 인창면(仁昌面), 한지면(漢芝面)의 4면 내의 43개동은 부제시행 예정지이므로 조만간 부제를 시행할 때에는 그 잔여 8면을 분리해야한다. 그런데 이 잔여 부분을 독립시키는 것은 군의 폐합 표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에 지세 및 교통 기타 관계를 고려하여 고양군(高陽郡)과 병합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된다.
二. 인천부(仁川府) 및 부평군(富平郡)을 폐합하고 남양군(南陽郡) 대부면(大阜面), 영흥면(靈興面) 및 강화군(江華郡)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 장봉도(長峯島)를 부속시킨다. 인천부(仁川府) 및 부평군(富平郡)을 병합하는 것은 인천부(仁川府)도 경성부(京城府)와 같이 부제시행지이므로, 부제시행 후에는 지역이 협소하고 인구 수가 한 군을 조직하기에 부족하기 때문에 지형상 부평군(富平郡)을 병합하여 한 군으로 조직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된다.
또한 남양군(南陽郡) 2면(영흥도, 대부도) 및 강화군(江華郡) 신도(信島) 외 3도를 부속시킴은 종래 지방 인민의 희망도 있었고, 남양군(南陽郡)·강화군(江華郡)에는 인천처럼 부선(艀舡) 등의 설비가 없고 교통이 매우 불편하므로 인천부(仁川府)에 부속하게 함이 가장 지당하다고 인정된다.
三. 시흥군(始興郡), 과천군(果川郡) 및 안산군(安山郡)[월곡면(月谷面), 성곶면(聲串面)을 제외]을 병합한다. 이상 3군을 병합하는 것은 종래 각군 모두 그 지역이 매우 비좁아서 각기 독립하는 것은 모두 불이익이 되므로 지세 상 3군을 병합하는 것이 좋은 방책이라고 본다.
四. 양주군(楊州郡), 통진군(通津郡) 및 김포군(金浦郡)을 병합한다.
五. 교하군(交河郡) 및 파주군(坡州郡)을 병합한다.
六. 교동군(喬桐郡) 및 강화군(江華郡)[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 장봉도(長峯島)를 제외]을 병합한다.
七. 개성군(開城郡) 및 풍덕군(豊德郡)을 병합한다.
八. 연천군(漣川郡) 및 삭녕군(朔寧郡)을 병합한다.
九. 포천군(抱川郡) 및 영평군(永平郡)을 병합한다. 제4나 제9는 제3과 동일한 이유로 병합한다.
十. 마전군(麻田郡) 및 적성군(積城郡)과 양주군(楊州郡) 영척면(嶺斥面)을 합병한다. 2군의 병합은 전기한 이유와 같고 또 영척면(嶺斥面)을 분할하여 적성, 마전 양군의 병합하는 부분에 이속시키는 것은 원래 양주군(楊州郡)은 지역이 매우 넓을 뿐만 아니라 이 면은 연천군(漣川郡)의 남부에 들어가 있기에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十一. 죽산군(竹山郡) 원일면(遠一面), 근삼면(近三面), 원삼면(遠三面), 근일이면(近一二面)을 분할하여 양지군(陽智郡)에 이속시키고 동군과 용인군(龍仁郡)을 병합한다. 죽산군(竹山郡) 원일면(遠一面), 근삼면(近三面), 원삼면(遠三面), 근일이면(近一二面)은 양지군(陽智郡)에 깊이 들어가 있으므로 종래 양군의 경계는 매우 뒤섞여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용인군(龍仁郡) 양지군(陽智郡)을 병합하는 것은 지역이 비좁고 지세 상 병합하는 것이 양군에게 가장 이익이 많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十二. 이천군(利川郡) 및 음죽군(陰竹郡)을 병합한다. 여주군(驪州郡)을 독립시키고 이천군(利川郡) 및 음죽군(陰竹郡)을 병합하는 것은 여주군(驪州郡)은 현재 면적이 38방리이고 호수가 10,500여 호, 인구가 50,800여 명으로 거의 1군의 표준에 해당하기 때문에 독립하여 존치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보인다. 또 3군을 병합할 경우에는 군청소재지를 예정하기가 매우 곤란하기 때문에 각 인접군의 폐합을 참작하여 이천군(利川郡)과 음죽군(陰竹郡)을 병합하는 것이 적당한 조치라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十三. 양성군(陽城郡), 안성군(安城郡) 및 죽산군(竹山郡)(원일면(遠一面), 근삼면(近三面), 원삼면(遠三面), 근일이면(近一二面)을 제외)을 병합한다. 죽산군(竹山郡), 안성군(安城郡), 양성군(陽城郡), 진위군(振威郡)을 병합하도록 한 것은 면적이 그 표준을 넘는 것이 겨우 4방리에 지나지 않는다하더라도 그 호수에 있어서는 죽산군(竹山郡)에서 양지군(陽智郡)에 편입한 400호를 제하더라도 16,000호에 달하여 표준을 초과하는 것이 6,000호에 달해 호수 상으로 보면 훌륭하게 군을 조성할 수 있는 듯하다. 또한 진위군(振威郡)은 죽산군(竹山郡)에서 십여 리 거리로 종래 안성군(安城郡)·양성군(陽城郡)을 그 사이에 두고 있었던 결과, 인정·관습 등이 다소 그 취지와 다른 점이 있으므로 안성군(安城郡)을 중심으로 하여 죽산군(竹山郡), 양성군(陽城郡)을 병합하여 그 중앙인 안성군(安城郡)에 군청을 두는 것이 지형 및 교통관계에서 가장 온당한 조치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十四. 수원군(水原郡) 수북면(水北面), 율북면(栗北面), 서신리면(西新里面), 종덕면(宗德面), 청룡면(靑龍面), 숙성면(宿城面), 언북면(堰北面), 오정면(梧井面), 현암면(玄巖面), 광덕면(廣德面), 가사면(佳士面), 포내면(浦內面), 안외면(安外面), 천량면(舛良面), 토진면(土津面)을 분할하여 진위군(振威郡)에 이속시킨다.
현재 수원군청은 그 위치가 매우 북쪽 모퉁이에 있어 남단으로부터 10여리의 거리에 있으므로 매우 불편하다. 그러므로 수원군(水原郡) 수북면(水北面) 외 14면은 지세 관계 상 평택역(平澤驛)을 중심으로 하여 교통 및 물자의 수출입에 이 역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이참에 수북면 외 14면을 분할하여 진위군(振威郡)에 이속시켜 종래 인민이 희망했던 평택역 부근으로 군청을 옮기는 것이 지형상 교통상 가장 지당하다고 인정되기 때문이다.
十五. 광주군(廣州郡) 의곡면(儀谷面), 왕륜면(旺倫面) 및 안산군(安山郡) 월곡면(月谷面), 북방면(北方面), 성곶면(聲串面)을 분할하여 수원군(水原郡)(수북면(水北面) 외 14면을 제외)에 이속시키고 이 군과 남양군(南陽郡)(대부면(大阜面), 영흥면(靈興面)을 제외)을 병합한다. 광주군(廣州郡) 의곡면(儀谷面), 왕륜면(旺倫面)은 수원군(水原郡)의 북방으로 들어가 있고, 안산군(安山郡)의 월곡면(月谷面), 북방면(北方面), 성곶면(聲串面)의 3면은 원래 광주군(廣州郡)에서 안산군(安山郡)으로 편입된 면이므로 의곡면(儀谷面), 왕륜면(旺倫面)과 함께 안산군(安山郡)에서 이를 분할하여 수원군(水原郡)으로 이속시키는 것이 지당하다고 여겨진다.
왜냐하면 안산군(安山郡) 월곡면(月谷面), 북방면(北方面), 성곶면(聲串面)은 다른 면의 결세 8엔에 대하여 6엔 60전결이며 또한 풍속·습관 등이 의연히 광주군(廣州郡)과 유사하다. 하지만 이상의 각 면을 모두 광주군(廣州郡)에 편입시키는 것은 지형상 이를 적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수원군청의 현재 위치는 북쪽으로 치우쳐 있으므로 이상의 5면을 수원군(水原郡)에 이속시킴은 지형 및 교통상 가장 편리하다고 여겨진다. 남양군(南陽郡)의 대부면(大阜面) 및 영흥도(靈興島)를 인천부(仁川府)에 부속시키는 것은 해운 교통 기타 관계에서 앞서 설명한 것과 같다.
十六. 양평군(楊平郡) 남종면(南終面) 외 2면은 한강을 끼고 건너편 멀리 광주군(廣州郡)에 연속하고 있기 때문에 양평군(楊平郡)과 광주군(廣州郡)과의 군 경계는 한강을 경계로 획정하여 종래 양평군(楊平郡)에 속한 남시면(南始面), 남중면(南中面), 남종면(南終面)을 분할하여 광주군(廣州郡)에 이속시키는 것이 온당하다고 인정된다.
(二) 폐합 후의 군 명칭 및 그 이유
一. 고양군(高陽郡)경성부(京城府)의 5부 497동은 부제 시행 예정지이므로 다른 8면 164동리는 이를 고양군(高陽郡)에 병합했기 때문에 고양군(高陽郡)의 명칭은 그대로 계속 사용했다.
二. 부천군(富川郡)본 군은 부평군(富平郡) 및 인천부(仁川府)(부제 시행 예정지 제외)를 병합했기 때문에 부평군(富平郡)의 부(富)와 인천부(仁川府)의 천(川) 자를 결합하여 새 명칭을 붙임으로써 옛 명칭의 존치를 의도한 것이다.
三. 죽천군(竹川郡)본 군은 음죽군(陰竹郡) 및 이천군(利川郡)을 병합한 것이므로 양 군의 이름에서 1자를 택하여 이를 결합하여 죽천군으로 명명했다.
四. 용지군(龍智郡)본 군은 용인군(龍仁郡)과 양지군(陽智郡)을 병합한 것이므로 양 군 이름의 1글자를 따서 이와 같이 명명하였다.
五. 안성군(安城郡)양성군(陽城郡) 및 죽산군(竹山郡)(11면)을 안성군(安城郡)에 병합하였기에 본 군은 그 지세 상, 그리고 구 도회로서 유명한 지역이다. 특히 안성천(安城川)은 옛 전장이며 안성시장은 본도에서 손꼽는 큰 시장으로 함께 유명하기 때문에 군명을 그대로 계속 사용하였다.
六. 수원군(水原郡)본 군은 역사상 빼놓을 수 없는 땅이므로 남양군(南陽郡) 및 광주군(廣州郡)(2면), 안산군(安山郡)(3면)을 병합해도 군명은 그대로 이를 존치시켰다.
七. 진위군(振威郡)본 군은 수원군(水原郡)의 옛 도시로 왕성했던 시대에 그 무위를 떨친 데 인한 명칭이므로 수원군(水原郡)(15면)을 병합해도 그 명칭은 그대로 옛 이름을 계속 사용했다.
八. 경남군(京南郡)본 군은 시흥군(始興郡)·과천군(果川郡)·안산군(安山郡)(6면)을 병합한 것으로 칭호관계 상 이들 3군 중 문자를 결합할 수가 없으며, 마침 본 군은 경성의 남부에 위치하므로 지세 상 이 명칭을 붙이는 바이다.
九. 김진군(金津郡)본 군은 김포군(金浦郡)·통진군(通津郡) 및 양천군(楊川郡)을 병합한 것이므로 김포군(金浦郡)의 김(金), 통진군(通津郡)의 진(津) 자를 따서 결합하여 김진군(金津郡)이라고 명명한 바이다.
十. 강화군(江華郡)본 군은 교동군(喬桐郡)을 병합한 것이지만, 강화군(江華郡)은 원래 유수를 둔 곳으로 역사상 유명한 지역이므로 현재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十一. 파교군(坡交郡)본 군은 파주군(坡州郡) 및 교하군(交河郡)을 병합한 곳이므로 양 군의 머리글자를 따서 이 이름을 붙였다.
十二. 개성군(開城郡)풍덕군(豊德郡)은 원래 개성군(開城郡)에서 분할한 것이라 하며 본 군은 옛 도읍으로 역사상 그 이름이 빼놓을 수 없으므로 명칭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十三. 마적군(麻積郡)본 군은 마전군(麻田郡) 및 적성군(積城郡)을 병합한 것이므로 옛 명칭을 존속시키고자 양 군의 머리글자를 따서 마적군(麻積郡)으로 칭했다.
十四. 영천군(永川郡)본 군은 영평군(永平郡), 포천군(抱川郡)을 병합한 곳이므로 위와 같이 양 군에서 1글자를 택하여 이름 지었다.
十五. 연녕군(漣寧郡)본 군은 연천군(漣川郡) 및 삭녕군(朔寧郡)을 병합한 곳이므로 연천군(漣川郡)의 연(漣) 및 삭녕군(朔寧郡)의 녕(寧) 자를 따서 이를 합쳐서 이름하였다.
(三) 폐합 후 군청소재지의 예정 및 사용할 건물의 유무, 군청소재지를 변경하는 이유
一. 광주군청(廣州郡廳) 소재지를 경안면(慶安面) 주막리(酒幕里)로 이전한다. 본 군의 현 군청 소재지는 남한산이라고 불리고, 원래 유수를 둔 곳이라고 하나, 산악의 정상에 성벽을 쌓아서 동서남북 모든 방향에서 다니기에 험조하여 군민은 항상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벽지(僻地)이므로 이참에 군청을 이전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이며, 주막리에는 종래 헌병파견소 및 사립학교 등이 있고 일등도로의 통로에 해당하고, 또 등외도로는 각 지역으로 통하고 지세가 평탄하다. 특히 이 지역은 이 군의 중앙에 위치하므로 장래 이 군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역임을 잃지 않을 것으로 인정된다. 다만 군청사에 해당하는 건물이 없으므로 상당하는 건축을 할 필요가 있다.
二. 양주군청(楊州郡廳)을 둔야면 의정부리(議政府里)로 이전한다. 본 군청은 종래 양주군(楊州郡) 읍내에 존재했으나 의정부 정거장에서 1리 20정 북쪽에 위치하여 교통이 매우 불편하다. 이에 반해 의정부는 본 군의 중앙에 위치하여 운수, 교통 및 기타 관계 상 이 군의 중심지이므로 종래 누차 이청문제를 제기하기도 했기 때문에 이참에 본 군청을 의정부로 이전하는 것이 가장 좋은 시기라고 인정된다. 다만 임시 청사로 충당할 건물이 있지만 본청사가 없기에 마땅한 땅을 구해 신축할 필요가 있다.
三. 고양군청(高陽郡廳)을 경성부(京城府) 내에 둔다. 현 고양군청(高陽郡廳) 소재지는 경성에서 5리 북쪽에 있어 매우 외진 지역이므로 이 군청을 경성부(京城府) 내에 두어 사용치 않는 관유(官有) 건물을 이용한다면 신축할 필요가 없다.
四. 부천군청(富川郡廳)을 인천부(仁川府) 구읍면(舊邑面) 관청리(官廳里)에 둔다. 이곳은 원래 인천군(仁川郡)의 군청소지재로서 주안역(朱安驛)에서 거리가 겨우 32정에 지나지 않지만 인천부(仁川府)의 중앙에 위치하고 또 쓰지 않는 관유 건물이 적지 않기 때문에 해당 건물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고 동시에 지형상 가장 적당하다고 인정된다.
五. 죽천군청(竹川郡廳)을 이천군(利川郡) 군읍면(郡邑面) 가고리(可庫里)에 둔다. 이천군(利川郡)은 거의 1등 2등 도로가 서로 교차하는 요로에 해당하며 지세 상 이천군(利川郡)·음죽군(陰竹郡)의 중추지이며 교통 상이나 그 외 관계에서 보아도 이 군의 소재지는 이천군(利川郡) 군읍면만한 곳이 없기 때문에 본 군청은 이곳에 두고 옛 이천군청(利川郡廳)으로 충당한다. 다만 다소 비좁기 때문에 증축할 필요가 있다.
六. 용지군청(龍智郡廳)을 용인군(龍仁郡) 수여면(水餘面) 소학동(巢鶴洞, 김량방(金良坊))에 둔다. 용인군청(龍仁郡廳)은 종래 군의 동단에 위치하였는데, 양지군(陽智郡) 병합 후 이곳은 거의 군의 중앙이 되었다. 도로교통의 편익 상 이 곳을 군청소재지로 정하고 구 용인군(龍仁郡) 청사를 충당토록 하는 것이 적당하다.
七. 안성군청(安城郡廳)을 안성군(安城郡) 동리면 목리에 둔다. 이 군청은 지세 상 안성군(安城郡) 읍내에 두는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곳에 군청을 두고 종래의 청사를 충당한다. 다만 이 청사는 매우 비좁고 낡아서 가까운 건물을 크게 수축하고 또 증축할 필요가 있다.
八. 진위군청(振威郡廳)을 동군 파병면(坡丙面)에 둔다. 이곳은 평택역(坪澤驛) 정거장이 있고 평안가도 및 충청남도의 통로에 해당하고 안성천(安城川)을 이용하여 해운이 편하다. 또한 이곳은 수원군(水原郡)(15면) 병합 후 이 군의 중앙에 위치하고 사통팔달로 편리하며 평택 부근의 인민이 군청 이전을 청원한 또한 이유가 있으니 이참에 이 군청을 이곳에 두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당분간 임시 청사로 충당할 건물이 있어도 본청사가 없기 때문에 해당 땅을 선정하여 신축할 필요가 있다.
九. 수원군청(水原郡廳)을 수원군(水原郡) 북부면(北部面) 신풍동(新豊洞)에 둔다. 본 군은 지세와 교통, 기타 관계 상 이곳에 군청을 두고 종래의 청사를 충당케 한다. 다만 청사가 좁기 때문에 수축 또는 증축할 필요가 있다.
十. 경남군청(京南郡廳)을 시흥군(始興郡) 하북면(下北面) 영등포(永登浦)에 둔다. 지세 및 교통 상 영등포에 군청을 두고 종래 시흥군(始興郡)의 청사를 충당한다.
十一. 김진군청(金津郡廳)을 김포군(金浦郡) 군내면(郡內面) 북변리(北邊里)에 둔다. 김포군(金浦郡)은 거의 군의 중앙에 취지하기 때문에 이 군에 군청을 두고 종래의 군청사를 충당한다.
十二. 강화군청(江華郡廳)을 강화군(江華郡) 부내면 부사후동(府司后洞)에 둔다. 본 군청은 지세 상 강화군(江華郡)에 두고 종래 군청사로 충당한다.
十三. 파교군(坡交郡) 청사를 파주군(坡州郡) 칠정면(七井面) 문산포(汶山浦)에 둔다. 본 군청사는 파주군(坡州郡) 문산포(문산정거장에서 약 3정의 거리)에 두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된다. 종래 파주군청(坡州郡廳)은 문산정거장에서 약 1리 동남쪽에 위치하여 교통이 매우 불편했다. 하지만 문산포는 정거장 및 문산 시장이 있어 이 지방에서 물자의 집산지가 될 뿐만 아니라 우편국, 순사부장주재소, 금융조합, 학교조합, 일본인 소학교, 사립학교, 철도정거장 등의 관공서 등이 있기에 점차 번영할 경향이 있는 반면에, 파주군청(坡州郡廳) 소재지에는 겨우 우편소, 순사주재소가 있을 뿐 산간벽지이므로 점차 쇠퇴할 경향이 있기 때문에 파주군(坡州郡)·교하군(交河郡) 병합 후에는 문산포에 군청을 이전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고 보인다.
다만 청사로 충당할 건물이 적기 때문에 파주군(坡州郡) 읍내의 쓰지 않는 관유 건물로 이전하기로 하고 그렇지 않다면 신축할 필요가 있다.
十四. 개성군청(開城郡廳)을 북부면(北部面) 성가리(城加里)에 둔다. 본 군청사는 구 개성군청(開城郡廳) 소재지에 이를 두고 종래의 청사를 충당한다. 다만 다소 비좁으므로 증축할 필요가 있다.
十五. 마적군청(麻積郡廳)을 마전군(麻田郡) 군내면(郡內面) 읍부리(邑部里)에 둔다. 이 군은 경원철도(京元鐵道) 전곡정거장(全谷停車場)에서 2리 15정 서북에 위치하며 지세 및 교통 상 여기에 군청을 두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된다. 그리고 청사는 구 마전군(麻田郡) 청사로 충당한다. 다만 현 청사는 매우 비좁아 도저히 사용을 감당하지 못하므로 증축할 필요가 있다.
十六. 영천군청(永川郡廳)을 포천군(抱川郡) 군내면(郡內面) 서변리(西邊里)에 둔다. 영평군(永平郡) 및 포천군(抱川郡) 병합한 후에는 포천군(抱川郡) 현군청 소재지는 이 군의 중앙에 해당하므로 이곳에 군청을 두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된다. 다만 종래 포천군(抱川郡) 청사는 매우 비좁을 뿐만 아니라 지형 상 매우 불편하므로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탓에 현재 헌병분견소로 쓰고 있는 옛 군아(郡衙) 건물을 보관 전환할 수 있다면 가장 편리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증축하거나 혹은 그에 상당한 땅을 찾아 신축하는 수밖에 없다고 인정된다.
十七. 연녕군(漣寧郡)을 연천군(漣川郡) 군내면(郡內面) 읍내리(邑內里)에 둔다. 연천군(漣川郡) 현군청 소재지는 경원선 연천정거장에서 16정 서쪽에 위치하여 운수 및 교통이 매우 편리하므로 본 군청은 이곳에 두고 종래의 청사를 충당한다. 다만 비좁으므로 수축 또는 증축할 필요가 있다.
[부군폐합에 관한 건(내무부장관->경기도장관 : 1913.5.21)]
통첩안
귀도에서 부군폐합표준에 관하여 이전에 정무총감으로부터 통첩이 있었던 바, 본부의 조사에 의한 별지 폐합예정안을 참고하기 바라며 이에 송부하는 바이다.
추신 : 본안은 대체로 부군 지역에 의해 조사하여 폐합을 계획한 것으로, 그 실제 상황에 따르면 자연 경계의 정리를 요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바,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한 후에 이전에 정무총감이 통첩한 취지에 따라 조사하기 바라며 이에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참고
[부군폐합에 관한 건(경기도장관 : 1912.5.28)]
[부군폐합에 관한 건(경기도장관->내무부장관 : 1912.5.20)]
회답(비867)
작년 10월 23일자 지비제255호로 부군폐합의 건에 관해 조회한 지시대로 조사한 바 별지대로 폐합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므로 조사서 및 약도를 첨부하고 이에 회답합니다.
추신: 도의 경계 또는 군의 경계가 불명확한 것 및 면·동·리 폐치분합의 결과 군의 경계에 변경이 생긴 것은 토지조사국의 조사 진행에 맞추어 정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들은 순차적으로 보고하는 사실을 양지하기 바라며 이에 덧붙입니다.
회답요령
一. 현재 : 2부 36군
一. 폐합 후 : 2부 23군 감(減) 13군
一. 현재 1부군 평균 호수 : 6,520, 인구 : 31,029
一. 폐합 후 1부군 평균 호수 : 10,206, 인구 : 48,567
一. 폐합으로 인해 군 청사의 위치 변경이 요하는 것 : 1
一. 폐합으로 인해 군 청사의 건물 개축 또는 신축을 요하는 것 : 11
[부군폐합에 관한 건(경기도장관->정무총감 : 1913.9.3)]
신청(비제467호)
이달 6일자 비제467호로 위 제목의 건을 신청하였는데, 조사의 결과 별지대로 정정하고자 하고자 하니 적절하게 처리해주기 바랍니다.
조사서
(一) 폐합의 이유 중 다음과 같이 정정한다.
8. 을 삭제하고 10을 다음과 같이 고친다.
10. 마전군(麻田郡) 적성군(積城郡), 연천군(漣川郡), 삭녕군(朔寧郡) 및 양주군(楊州郡) 영척면(嶺斥面)을 합병한다. 4군의 병합은 위의 이유와 같고 또한 영척면을 분할하여 4군에 이속시키는 것은 원래 양주군(楊州郡)은 지역이 매우 넓을 뿐만 아니라 이 면은 연천군(漣川郡)의 남부에 깊이 들어가 있으므로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二) 폐합 후 군의 명칭 및 그 이유 중 다음과 같이 정정한다.
13. 삭제
15. 연천군(漣川郡)본 군은 적성, 마전, 연천 및 삭녕 등 4군 및 양주군(楊州郡) 내의 1면을 병합한 것으로, 연천군(漣川郡)은 경원철도의 정거장이 있어 다른 곳에 비하여 저명하기 때문에 바로 이 명칭을 붙였다.
(三) 폐합 후 군청소재지의 예정 및 여기에 사용할 건물의 유무 및 군청소재지 변경의 이유5.를 다음과 같이 고친다.
5. 죽천군청을 음죽군(陰竹郡) 장호원(長湖院)에 둔다. 장호원은 충청북도 충주와 일등도로와 연결되어 있고 안성가도인 3등도로와 교차점이다. 고래로 유명한 시장으로 물자가 집산하는 데 중요한 곳으로, 장래 발전 가능성이 있으므로 이 지역에 군청을 두는 것이 적당하다고 인정된다. 다만 현재 군청사는 협소할 뿐만 아니라 초가집이라 매우 반듯하지 못하여 개축이 필요하다.
15. 삭제
17. 연녕군(漣寧郡)으로 되어있는 부분을 연천군(漣川郡)으로 고친다.
[부군 폐합에 관한 건(○○○->경기도장관 : 1913년)]
조회
위 제목의 건에 관해 8월 6일자 비제46호로 의견을 제출한 바 있는데, 또한 삭녕군(朔寧郡)은 지세·교통 등의 관계상 차라리 강원도 철원군과 병합함이 적당하다고 인정되는데 이에 대한 의경을 알고 싶으니 이에 대하여 조회합니다.
추신 철원군(鐵原郡)의 면적·호구 등은 다음과 같다.
철원군
1. 면적 40방리
1. 호수 6,701호
1. 인구 31,322인
1. 면수 8면
도(道)에 있어서도 교류 및 행정상에 있어서는 이천(利川)을 오히려 적당하다고 인정하지만, 장호원(長湖院)에는 손꼽히는 시장이 있고, 또한 충청북도 서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그 지역에 군청을 둔 듯 하다. 그렇지만 충청북도와 관계는 군청 위치를 정하는 이유가 되지 않고 또 단지 시장의 관계상 그 지역에 군청을 둔다고 하더라도 이유로는 부족하다. 결국 이천(利川) 쪽이 군청 소재지로서 적당하다고 인정되기 때문에 이 방침에 따라 조사를 진행해야하는가.
[부군폐합의 건(경기도장관->내무부장관 : 1913.9.18)]
제467호(회답)
이달 13일자 내비(內秘)제114호로 위 제목의 건에 대해 조회한 취지를 이해하였으며, 교통상에서 볼 때는 양방이 우열을 가릴 수 없고, 행정상으로 볼 때에는 말씀드린 대로 약간 동쪽에 치우쳐 있지만 교통기관을 개선한 오늘날에 있어서는 특별한 불편이 없는 것으로 인정됩니다. 그래서 장호원(長湖院)은 전번에 신청한대로 충청북도 서부와 교통·경제상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한강(漢江)의 지류를 개수함에 있어서는 수운의 편리함이 있고, 시장으로서는 본도 시장 중 손꼽히는 곳으로 작년 중 1개월의 평균 매매가격이 6,750원에 이르고, 해가 갈수록 번영해지고 있는 상황으로 장래 유망한 위치라고 인정됨에 따라 군의 위치를 여기로 정하는 쪽이 적당하다고 믿고 정정을 신청한 것인데 이것을 양지하기 바라며 이에 회답합니다.
[부군 폐합의 건(○○○->경기도장관 : 1913.9월)]
본월 3일 秘제467호로 보고한 부군 폐합의 건 중 죽천군청(竹川郡廳)(원래 利川·陰竹의 두 군을 병합)의 위치를 장호원(長湖院)으로 변경하는 것을 신청하였는데, 그 이유로는 장호원은 충청북도 충주(忠州)와 일등도로의 연락이 있고, 안성(安城)가도인 3등 도로와 교차점으로서 고래로
저명한 시장이 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이 땅은 군의 동단에 위치하므로 군청의 위치로서는 한쪽으로 치우치는 면이 있다. 이에 반해 이천(利川)은 약간 군의 중앙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지난번에 이 땅으로써 군청의 위치로 삼는다고 보고한 이유에 따르면 이 땅은 1·2등 도로 교차의 요로(要路)에 해당된다고 함을 보면
교통상 별로 불편함이 없는 듯 하고, 차라리 이천으로 군청의 위치로 하는 편이 행정상, 기타 여러 면에서 편리하다고 인정되는데 대해서는 지금 알던 조사한 후에 어떤 회답을 하기 바랍니다. 이 일에 미쳐 조회합니다.
[부군 폐합에 관한 건(1913.10.8)]
경기도장관으로부터 직산군(稷山郡)을 경기도로 옮기고 진위군(振威郡)과 병합하는 건을 별지와 같이 신청한 것에 따라 조사하니, 이 군을 진위군에 병합시키는 것을 별지 을호 약도와 같이 한 군으로서의
지형이 부적당할 뿐만 아니라 경기도의 지역은 충청남도로 매우 깊숙히 들어가게 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교통의 관계는 별지 조사와 같이 직산으로부터 천안 및 평택과 비교하면, 철로에 따라서는 평택 쪽이 약간 단거리이지만, 육로에 의하면 전혀 차이가 없는 상태이므로 이것을 경기도로 옮길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데 그 취지로 처리했으면 하는데 어떻습니까.
[부군 폐합에 관한 건(경기도장관->정무총감 : 1913.10.2)]
비제467호(신청)
지난 달 6일자 비제467호로 위 제목의 건에 관해 의견을 제출해 둔 바, 또한 충청남도 직산군(稷山郡)은 본도 안성군(安城郡) 및 양성군(陽城郡)(평택군(平澤郡)을 진위군(振威郡)으로 병합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과 접해 있고, 그 경계는 대부분 논·밭의 언덕 등으로서 매우 뒤섞여 있어 도의 경계로서 특히 불확실하다고 인정된다. 그리고 지세상 군내가 대체로 평탄해서 교통·경제는 본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인정풍속은 앞의 두 군과 서로 유사하므로 직산군의 전부를 본도에 편입하고, 성거산(聖居山)의 분수령을 도의 경계로 확정함이 지당하다고 인정됨에 되는데 적절한 조치가 있기를 바라며 도면을 첨부하여 이 점을 상신합니다.
본 건은 제출한 바와 같이 군청의 위치를 평택에 둘 예정인데, 아직 결정이 되지 않고 있어서 추후에 결정한 뒤에 미리 ●●한다고 인정되어 우선 공람한다.
-양평군광주군경계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