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도에 표기된 동해와 국호

단지 지도가 축소되어 있어 국경에 대한 뚜렷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관찰이 필요하다.
당빌의 지도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만주에서 중국과 변경 지역을 측량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이「한국전도」를 검토하여 자기들 지도첩에 지도화하였고, 한자와 만주어로 지명을 표시한 지도의 동판을, 당시 프랑스에서 중국 관련 백과사전을 편찬하고 있던 듀 알드(Du Halde) 신부에게 보냈다. 듀 알드 신부는 프랑스어로 된 지도첩 제작을 당대 가장 유능한 지리학자 당빌에게 의뢰하였고, 당빌은 번역과 연구를 거쳐 이웃 지역을 포함하는「중국지도첩」을 발간하였다.

이 지도를 검토해보면, 압록강의 본류를 반분하여 국경선을 정한 것이 아니라 압록강 본류의 북쪽에서 압록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지류들의 꼭지점을 이은 선이 국경선으로 되어있다. 이는 당시 만주의 남부지역까지가 한국의 영토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그러나 이후 청(淸) 말기에 만주 철도를 건설하면서 그 이권을 일본에 넘기는 대신 일본은 압록강의 본류를 한국과 중국의 국경선으로 인정하였다. 이 조약은 한국이 제외된 상태로 체결된 불평등조약이므로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한 새로운 국경선 협상이 불가피해진다. 그 경우 당빌의「한국전도」가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할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이번에 발간되는 지도에 나타난 지명들은 중국어 발음을 표기한 것이 많은데, 현재로서는 그 지명들이 어디를 가리키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국의 명칭에 대해서도‘Corea’,‘Korea’,‘Corai’등으로 표기된 것이 있고, 중국식으로‘Kaoli’, 만주식으로‘Solongues’라고 병기한 것들도 있다.
역사상 제일 먼저 해외에 널리 알려진 우리의 고대국가는 신라이다. 12세기 중엽 아랍의 지리학자 알 이드리시(al Idrisi, 1100~1165)가 섬으로 구성된 나라를 ‘Sila’라고 표기하였다. 이는 이전 시대 신라와 교역했던 해상 무역선의 상인을 통하여 이미 신라가 아랍에 알려졌던 것으로 생각된다.
‘Korea’는 몇 가지 다른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예성강을 통하여 고려와 교역을 하던 아랍인들은 한국을‘코리(Cory)’라고 부르고 현재도 그렇게 부르고 있다.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