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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으로 나는 <타임머신>

‘푸른 바다’의 불편한 진실, 담령은 나쁜 남자였다

「조선왕조실록」 - 사헌부, 백성들 재산 빼앗는데 몰두 당장 파직해야

푸른 바다의 전설 썸네일
출처 : SBS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 공식 스틸컷

지난달 16일 첫 방송을 시작한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박지은 극본, 진혁 연출)」이 같은 시간대 경쟁사 드라마들을 압도적인 시청률로 따돌리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시청률조사 전문업체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첫 회 16.4%를 시작으로 같은 시간대 경쟁사 드라마 보다 최소 3배 이상 높은 16%대를 상회하고 있으며, 회를 더 할수록 시청률이 높아지고 있다.

조선시대 강원도 바닷가 마을에 인어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이 드라마는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인 유몽인(柳夢寅, 1559~1623)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나오는 인어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판타지 로맨스 드라마이다. 태풍으로 떠밀러 온 인어를 이 고을에 새로 부임해 온 현령(종5품 지방관) 김담령(金聃齡)이 바다에 놓아 주었는데, 은혜를 베푼 담령은 현대에 사기꾼 허준재(이민호)로 환생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수중폭발로 육지로 밀려 온 인어 심청(전지현)을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내용이다.

20부작으로 기획된 이 드라마가 첫 회부터 고공행진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최고 시청률 28.1%를 기록하며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별에서 온 그대」의 작가 박지은과 이 드라마의 주인공 전지현이 3년 만에 호흡을 맞췄고, 화려한 출연진과 이들의 탄탄한 연기력도 뒷받침되었지만, 조선시대 인어이야기를 소재로 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반적으로 인어하면 안데르센의 ‘인어공주’나 디즈니 만화에 나오는 착하고 명랑한 빨간 머리 ‘에리얼 공주’처럼 서양 인어를 먼저 떠올린다. 우리나라 역사 속에는 이 보다 훨씬 흥미롭고 다양한 인어이야기가 있음에도, 이처럼 인식하는 것은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나 할리우드 영화에 너무 익숙한 탓이다. 국토의 3면이 바다이고, 세계 어느 민족 보다 문학적 소양과 감성을 가진 우리 민족이 인어이야기 몇 개쯤 갖고 있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지 않을까.

「푸른 바다의 전설」 방영에 맞추어 돌도래출판사가 여러 문헌과 각 지역에 전해져 오는 인어이야기를 모아 『인어에 홀린 담령』이라는 전자책을 지난 달 16일 발 빠르게 발간했다. 이 책에는 8건의 이야기를 실었는데, 비교적 많이 알려진 것은 해운대 동백섬에 살았다는 ‘황옥공주’, ‘신지께’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거문도 인어, 은혜를 갚은 장봉도 인어, 인어고기를 먹고 영생을 얻은 평양기생 낭간, 강원도 흡곡현 인어 등이다.

이 중 우리나라 최초의 야담집으로 1621년 편찬된 『어우야담』 제5권에 나오는 강원도 흡곡(歙谷)현령 김담령(金聃齡)의 경험담이 이 드라마의 모티브이다. 흡곡현령 김담령이 한 어부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이 어부가 6마리의 인어를 잡았다는 것. 잡는 과정에서 2마리는 죽고 4마리가 살았는데, 김담령을 보자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고 이를 불쌍히 여긴 담령이 어부에게서 이들을 빼앗아 바다에 놓아 주었다. 인어들은 얼굴이 하얗고 예뻤으며 콧날이 오뚝했는데, 크기는 네 살배기 아이만 했다는 것.

어우야담 기록물 썸네일어우야담 기록물 썸네일
유몽인이 저술한『어우야담』ⓒ한국학중앙연구원

담령의 인어이야기는 『어우야담』의 편찬자인 유몽인이 광해군 10년인 1618년 인목대비 폐비사건에 연루되어 사직한 후 사사(賜死)되기까지 5년여 동안 전국을 유람하며 글을 썼는데, 이때 들은 이야기를 수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유몽인은 이 이야기에 대한 후기를 남겼다. “예전에 고서에서 인어에 관한 이야기를 보며 많이 비웃었는데, 실제로 인어를 보았다는 어부에게서 자세하게 전해 들었다. 어부의 말이 사실일까?” 이 대목으로 보아 유몽인은 어부의 목격담을 듣고도 선뜻 믿지 못한 것 같다.

그런데 놀랍게도 조선왕조실록에는 유몽인이 이 이야기를 채집하기 얼마 전 김담령이 강원도 흡곡현(歙谷縣) 현령으로 재직하고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 이야기의 배경인 흡곡현은 고려 태조 23년인 940년 습계현(習磎縣)에서 흡곡현으로, 1895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강릉부 흡곡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52년 강원도 안변군 흡곡면으로 흡수되었는데, 실록에는 김담령이 흡곡현이던 1609년 현령을 지낸 것으로 나온다.

『어우야담』이 편찬된 것은 김담령이 흡곡현령을 지낸 때로부터 12년이 지난 1621년이다. 따라서 시간적으로는 개연성이 충분하지만, 어떻게 담령이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실제로 있었던 일이 구전되었거나, 담령이 자신의 사람됨을 알리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내 유포시켰을 수도 있는데, 실록에는 후자의 가능성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몇 가지 기록이 있다.

「푸른 바다의 전설」과 『어우야담』 모두에서 욕심 사나운 인간에 붙잡혀 저항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불쌍한 인어를 구한 어진 현령으로 묘사되지만, 실록 기록으로만 보면 아주 몹쓸 관료였다. 따라서 자신의 악행을 감추려는 기획된 야담이 아니었을까 의심하게 한다.

담령은 『선조실록』 1604년 1월 28일 다섯 번째 기사 은율현감(종6품 지방관)에 제수되었다는 내용부터, 1609년 11월 27일 첫 번째 기사 사헌부 조사보고서까지 모두 다섯 번 실록에 등장한다. 이 중 두 번은 인사발령, 한 번은 임해군(臨海君, 1574~1609)을 처형하라는 상소, 두 번은 부정부패와 관련된 내용이다. 따라서 담령을 평가할만한 기록은 3건인 셈인데, 모두 어진 인물과는 거리가 멀다.

『선조실록』 1605년 12월 13일 두 번째 기사는 사간원이 은율(殷栗)현감 김담령을 탄핵한 것이다. “은율현감 김담령은 위인이 용열(容悅)하여 정사를 하리(下吏, 하급관리)들에게 위임하는가 하면, 침탈이 끝이 없어 관고(官庫)가 탕갈(蕩竭)되기에 이르러 경내가 모두 원망하고 있습니다. 파직시키소서”하니 임금이 담령을 파직했다. 1608년 7월 2일 일곱 번째 기사는 감찰 김담령이 임해군의 처형을 상소하자 임금이 “이미 외방에 안치하였고, 천륜(天倫)도 중요한데, 죽이라고 하느냐. 그렇게는 못하겠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내용이다. 이때는 파직 된지 3년여가 지난 후로 아마도 광해군 즉위과정에서 복직된 담령이 보은차원 또는 존재감 과시를 위해 쓴 상소가 아니었을까 의심된다.

『광해군일기』 1609년 11월 27일 첫 번째 기사는 이 드라마의 작가가 담령의 환생으로 주인공인 준재를 사기꾼으로 설정하게 한 근거가 아니었을까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 기사는 김담령에 대한 사헌부의 보고서로 탐관오리(貪官汚吏)의 전형이다. “흡곡현령 김담령은 사람이 난잡하고 임지에 도착한 뒤로 백성들의 재물 빼앗기를 일삼고 있다. 이렇게 심한 흉년인데도 친족의 천장(遷葬, 묘를 옮김)을 핑계로 강원도 흡곡현의 인마(人馬)를 뽑아 호남까지 보내고 있는데, 말 한 마리의 가격이 목면(木綿) 수십 필(疋)에 이른다. 가난한 백성이 말 값을 내지 못하는 경우 자신이 낸 후 민결(民結, 백성 소유의 땅)에서 받으니, 고을의 백성들이 견디지 못해 도망치고 있다. 서울로 온 백성들이 도로에서 울부짖으니 보는 이들이 놀라지 않은 자가 없었다.”

이처럼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관원이었지만, 12년 후 어질고 멋진 원님으로 화려하게 부활한다. 물론, 『어우야담』을 통해서 이지만, 어떻게 가능했을까. 실제 있었거나 본인 또는 친지들이 지어냈을 수 있고, 대부분의 야사(野史)나 설화가 그렇듯 과장되고 각색되어 전해 졌을 수 있다. 또 하나의 가능성이 있다면, 유몽인과의 관계이다.

그러나 유몽인이 미화했을 가능성은 미약하다. 출생지역을 보면 유몽인은 서울 태생이었고, 김담령은 친족이나 처가가 호남에 많은 것으로 보아 이 지역 출신일 가능성이 높다. 연령차도 컸을 것으로 보인다. 김담령이 종6품인 함경도 은률현감에 제수되었을 때 유몽인은 이미 정3품 당상관인 승정원 우부승지를 지냈다. 관직도 담령은 종5품 흡곡현감으로 파직된 반면, 유몽인은 중국사신을 세 번이나 다녀올 만큼 요직을 두루 거쳤고, 당대 최고의 문장가였다. 이로 보아 친분이 있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우야담』이 완성되어갈 즈음인 1621년 8월 21일자 실록 기사는 비변사의 보고로 유몽인이 얼마나 훌륭한 문장가였는지를 보여 준다. “국가의 사명(辭命)을 작성하고 다듬는 일은 문장 솜씨가 있어야 하는데, 유몽인이 언제 출사할지 기약도 없고 이 일을 어찌해야 하나.” 당대 최고의 문인 유몽인은 그의 아들 약(瀹)이 인조반정으로 밀려난 광해군의 복권을 기도하다 발각되어, 그의 나이 64세인 1623년 아들과 함께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올해도 저물어 간다. 극중에서는 인어의 키스를 받으면, 모든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한다. 판타지 드라마의 설정만큼 허망한 바람도 없겠지만, 그래도 아픈 기억이 너무도 많은 올해는 잊고, 다가 올 새해에는 노력한 만큼 이룰 수 있는 상식이 통하는 사회, 예측이 가능한 사회, 그래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