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7월 18일에 최초 국산 자동전화기 ‘금성 1호(체신 자동 1호)’가 첫 선을 보였다. 당시 국내 전화기 시장은 선진국 전화기를 수입하여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이 전화기는 시판 전 체신부 시험결과, 독일의 지멘스사 제품보다 성능이 우수하고 미국 500형 전화기에 버금가는 통화품질로 당시 언론 매체에 대서특필 되었다.
국산 전화기 생산은 가능해졌지만, 경제개발5개년 계획과 통신근대화 사업을 추진하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전화회선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지 못했다. 더욱이 전화 가입권 매매를 허용한 후 이를 둘러싼 부조리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정부에서는 전화 매매를 금지시키기에 이른다. 하지만 공급이 모자란 상황에서 매매까지 금지시켜 실수요자들의 피해가 커짐에 따라 정부차원에서 1970년 8월 31일 이후부터 허가된 전화는 매매가 불가능한 청색전화로, 그 이전의 전화가입권은 매매가 가능한 백색전화로 분류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졌다.
백색전화의 시세는 1970년대 중반에 절정에 이르러, 당시 서울 변두리 주택 가격과 맞먹는 재산 가치를 지니기도 하였다. 전화 값 거품은 1978년 첨단 전자식 교환기가 개발되면서 꺼지기 시작하여, 1986년 디지털식 전전자교환기(TDX)를 독자기술로 개발하면서 전화는 특권층의 전유물에서 서민의 통신수단으로 거듭났다.
기록물 철 제목 | 곽의영체신부장관 서울중앙전화국 제8국 개통식 참석(CET0038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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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곽의영체신부장관 서울중앙전화국 제8국 개통식 참석시찰3(1960) |
기록물 철 제목 | 곽의영체신부장관 서울중앙전화국 제8국 개통식 참석(CET00386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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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곽의영체신부장관 서울중앙전화국 제8국 개통식 참석연설1(1960) |
기록물 철 제목 | 김병삼체신부장관 인천전신전화국 자동전화 개통식 참석(CET00386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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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김병삼체신부장관 인천전신전화국 자동전화개통식 참석 시찰1(19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