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은 세조의 큰 손자인 월산대군의 개인 저택이었으나, 임진왜란때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와 행궁(行宮)으로 정하였고, 광해군 때에 '경운궁(慶運宮)'으로 불렸다.
경운궁은 아관파천이후인 1897년에 고종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궁궐로서의 모습을 갖추었다. 이때를 전후하여 궁내에 많은 건물들이 지어졌으며 일부는 서양식으로 지어지기도 하였다. 고종은 선원전, 함녕전 등을 지어 왕궁의 면모를 갖추고 궁궐의 영역도 넓혔다.
덕수궁이란 궁명은 고종이 황제 자리에서 물러나 경운궁에 머물 때 물러난 왕에게 ‘오래 사시라’는 뜻으로 붙여졌다고 한다.
광복 이후, 덕수궁은 산업박람회, 경제개발5개년 전시관, 국전, 추모전 등 각종 전시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정전반대데모 및 남북 당국간 대회촉진 천만인 서명운동 등 시민운동의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또한 예술제, 어머니날 행사, 연주회, 사생대회, 소풍 등의 공간으로 활용되었다.
1961년에 시청 쪽 담장을 철거하고 철책으로 대체하였다가, 1968년에 다시 담장으로 바꾸었다. 같은 해 7월에 담장 이전공사로 대한문은 담장에서 떨어져 홀로 세워졌다. 도로상에 고립된 대한문은 1971년에 이설되었다.
석조전 서관은 1973년부터 198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사용되었으며, 1998년 8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으로 개관되었다.
기록물 철 제목 |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제9회 어머니날 기념 모범 어머니 표창식 참석(CET0061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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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제9회 어머니 날 기념 모범 어머니 표창식 전경(1959) |
기록물 철 제목 | 3·15 부정선거공판(CET0037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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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물 건 제목 | 3·15 부정선거공판이 열리는 날 덕수궁 대한문 앞 광경(196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