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치안시설·전매시설

일제강점기의 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

국가기록원이 소장한 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의 신축 및 이후의 운영 상황에 관련된 도면은 모두 296매이다. 각 시설과 도면 수량에 대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의 신축 및 이후의 운영 상황에 관련된 도면
시설유형 본관 부속건물 별관
시설 1개 8개 3개
도면 234매 36매 26매

광화문 신청사 계획에 대한 소장 도면 270매의 내용을 살펴 보면, 일반적인 계획도라 할 수 있는 배치도, 평면도, 입면도 등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반면, 구조상세도(122매), 외부 및 내부입면 상세도(56매) 등은 다수가 남아 있다. 특히, 구조상세도가 소장된 도면의 절반에 가깝게 남아 있으며, 이 밖에도 입면이나 내부의 상세도, 각종의 설비도면도 다수가 남아 있다. 이러한 도면들은 그동안 사진이나 관련 도서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신축 당시의 건축물 상세를 잘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본관 관련 도면 이외에도 기관실, 창고, 정문 등의 각종 부속건물과 이후에 추가로 지어진 별관들에 대한 도면(26매)도 소장되어 있어, 신축 이후의 운영 상황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1910년 강점 직후, 조선총독부는 식민행정 초기에 급격한 변화에 따른 식민정권에 대한 반발을 축소하기 위해 남산의 왜성대(矮星臺)에 있던 기존의 통감부 청사를 증축하여 사용하였다. 하지만, 산재되어 있는 청사들로 인한 업무의 불편과 목조 청사의 노후, 부지의 협소함 등을 이유로 새로운 청사의 신축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신청사 건립은 조선총독부 조직 내에 1912년 신설된 토목국 산하의 영선과가 맡아 진행하였으며, 공사는 1916년 6월 24일 경복궁(景福宮) 내의 부지에서 지진제(地鎭祭)를 거행하면서 시작되었다. 이 청사는 10여 년의 긴 공사기간을 거쳐 1925년 12월 완공되었으며, 1926년 1월 4일의 시무(始務) 시에 왜성대에서 이사를 하여 업무를 개시하였고, 10월 1일 성대한 낙성식(落成式)을 거행하였다. 이로 인해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光化門)은 동쪽으로 이전되었고, 흥례문(興禮門)과 그 회랑 그리고, 금천(禁川)과 영제교(永濟橋)는 철거되었다. 완공된 조선총독부 청사는 한국에 지어진 몇 안 되는 양식(洋式)석조건축의 걸작으로 평가 받았으며, 10년의 세월동안 많은 재력을 소비하여 당대의 최고의 건축기술이 반영된 건축물이었다.

준공 이후 19년간 조선총독부의 청사로 사용된 신청사는 1945년 8월 독립 이후, 미군정청 청사로 전용되었으며, 1948년부터는 대한민국 정부청사로 활용되었으나, 1950년의 한국전쟁으로 내부는 완전 소실되었다. 이후 1961년 복구계획이 수립되어 1962년 11월 22일에는 중앙청복구 개청식이 거행되고 청사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게 되었다. 1981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전용하기 위한 계획이 수립되어 전용을 위한 내부공사가 1983년부터 진행되었고 1986년 6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었다. 1993년 11월 철거가 확정 발표되었고, 1995년 8월 15일 첨탑부터 철거가 시작되어 1996년 12월 완전히 철거되었다.

광화문 청사 건물별 도면
유형 명칭 설치연도 도면수
총 계 296
조선총독부
광화문
청사
조선총독부 광화문 청사 1926~1945 234
기관실 9
자동차고 5
창고 9
정문 9
초사 1
마차격납고 1
무전실 1
사진인쇄실 1
조선총독부 제1별관 1937~1945 17
조선총독부 제2별관 1940~1945 8
조선총독부 제3별관 1940년대 초반~1945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