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부속기관·관측소

광화문통 행정시설

일제강점기의 광화문통(光化門通)은 조선시대의 육조거리, 현재의 세종로를 지칭하며, 조선시대 이래 국가의 최고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들이 도열한 장소였다. 의정부(議政府)와 육조 관서가 자리를 잡은 조선시대 이후 대한제국기,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많은 청사가 변경되고 증축되고 신축되었다. 이는 지속적인 관제(官制)의 변화 및 각 기관의 신설, 통합, 폐지 및 변경에 기인한 것이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광화문통 관아시설과 관련된 도면 2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 광화문통 행정시설 소장 목록
명칭 연도 도면수
광화문통 행정시설 1907-1945 2

[도판1]은 대한제국기의 광화문 앞 행정시설 배치를 실측한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光化門外諸官衙實測平面圖)'이다. 중앙의 도로를 중심으로 광화문 앞부터 서쪽에는 근위대대(近衛大隊), 경시청(警視廳), 군부(軍部), 법부(法部), 통신관리국(通信管理局)이 자리잡고 있으며, 동쪽에는 내부(內部), 법무원(法務院), 학부(學部), 탁지부(度支部), 법관양성소(法官養成所)가 자리잡고 있다. 상기 기관의 개략적인 연혁은 다음과 같다.

근위대대는 일본에 의하여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면서 최소한의 황실 경호부대로 남겨둔 '근위보병대대'와 '근위기병대'로 구성된 군대이다. <근위보병대편제(近衛步兵隊編制)>는 1907년 8월 26일의 칙령 제16호로, <근위기병대편제(近衛騎兵隊編制)>는 같은 해 12월 20일의 칙령 제58호로 공표되었다. 그러나 1909년 7월 30일에는 칙령 제68호 및 제69호에 의거하여 근위보병대와 근위기병대가 폐지되었다. 경시청은 경찰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다. 1894년 갑오개혁 때에 경무청(警務廳)이 개청되었고, 1907년 7월 27일 칙령 제1호에 의거하여 경시청으로 개칭되었다. 내부, 학부, 법부 및 탁지부는 1894년 갑오개혁에 의하여 구성된 의정부의 8개 아문(衙門)의 후신(後身)으로서, 1895년의 을미개혁 때에 부(部)로 개편된 행정기관이다. 그러나 1910년의 일제강점에 의하여 조선총독부가 행정 각 부서를 모두 재편하였다. 다만, 법부의 경우는 1909년 10월 28일 칙령 제85호에 의하여 <법부관제>가 미리 폐지되었다. 법무원은 1906년 칙령 제164호로 개원하였으며, 1909년 10월 칙령 제236호로 폐지되었다. 법관양성소는 1895년 칙령 제49호로 개설되었고, 1911년 10월 16일에 경성전수학교로 개편되었다. 통신관리국은 1905년 12월의 일본 칙령 제268호 <통감부통신관서관제(統監府通信官署官制)>로 1906년 1월 10일에 개국한 대한제국기 통신사업 기관의 하나이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보면,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는 경시청과 근위대대가 만들어지는 1907년에서 근위대대, 법부 및 법무원이 폐지되는 1909년 사이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도판1]의 기재내용을 살펴보면, 1:600의 축척과 정북 방향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건물은 육조거리에 인접한 행정시설만을 작도하였는데, 추가로 위쪽에 경복궁 광화문 앞 월대와 동쪽의 개천이 기재되어 있다. 행정시설의 필지는 두꺼운 선으로 표현하였고, 건물은 사선의 칠로 표기하였다. 도면은 대한제국기의 광화문통 소재 관청들의 정확한 크기와 위치가 표시된 실측도면이라는 점에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하여 조선시대 육조거리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도판2]는 일제강점기의 광화문통(光化門通) 실측도로 '경성광화문통관유지일람도(京城光化門通官有地一覽圖)'라는 제목의 도면이다. 전차 노선이 설치된 도로를 중심으로 서쪽에는 북쪽부터 조선보병대(朝鮮步兵隊), 헌병대관사(憲兵隊官舍), 조선군사령부(朝鮮軍司令部) 부속청사, 체신국(遞信局)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의 가장 북쪽에는 경기도청이 자리잡고 있으며, 바로 인접하여 조선군사령부 마구간(朝鮮軍司令部廐) 및 탁지부 분실로서의 승정원·사헌부가 있다. 경기도청 아래로는 2개소의 경관훈련소(警官訓練所), 토목과분실(土木課分室), 그리고 전수학교(專修學校) 및 체신국 관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상의 시설 중에서 주요한 연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광화문통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전차는 광화문선(光化門線)으로서, 광화문통과 경복궁 내 조선총독부 신청사 공사현장을 왕복하는 공사용 노선으로 1917년에 신설되었다. 이듬해인 1918년부터는 경복궁 주변에 직장 및 사택을 둔 일본인들의 편의를 위하여 여객수송용으로 운행되었다. 이후 1923년에는 경복궁 조선부업품공진회의 방문객 수송을 위하여 경복궁 광화문 앞에서 서십자각을 거쳐 영추문까지 운행하도록 노선이 변경되었다. 전수학교는 법관양성소의 후신으로 1911년 10월 칙령 제251호 <경성전수학교관제(京城專修學校官制)>에 의거하여 개편되었다. 1922년에는 <제2차 조선교육령> 개정의 영향으로 4월 1일 칙령 제151호 <조선총독부제학교관제>가 제정되면서 전수학교는 경성법학전문학교로 다시 개칭되었다. 체신국은 한일제강점으로 개청된 조선총독부 통신국의 후신으로서, 1912년 4월 1일에 칙령 제30호에 의거하여 개칭되었다. 경관훈련소는 경무총감부(警務總監部)의 소속부서로서 일제강점 이후 개소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이 도면은 전차가 개설되는 1917년 이후부터 전수학교가 경성법학전문학교로 개칭되는 1922년 사이의 기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도판2][도판1]과 비교해 보면, 전반적인 필지 구성은 [도판1]과 유사하지만 개별 시설들은 대폭 교체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광화문통의 서쪽에 자리잡았던 근위대대는 조선보병대로, 경시청은 헌병대관사, 군부는 조선군사령부 부속청사로 변경되었다. 이상의 시설들은 대한제국기의 건물들을 그대로 전용하고 있으며, 단지 헌병대 관사에 세 동의 건물이 신축된 것이 변화된 모습의 전부이다. 그 아래의 법부와 통신관리국 부지는 체신국으로 통합되면서 대대적으로 시설이 변경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통신관리국 부지 하단에는 큰 규모의 ㅁ자형의 서양식 건물이 신축되었다. 광화문통 동쪽에서 가장 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던 내부(內部)는 경기도청으로 변경되었다. 기존 건물들은 유지한 채로 중앙의 행랑을 철거하고 신식의 경기도청 건물이 들어선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경기도청사 건물 위쪽과 아래쪽에는 기존 시설을 그대로 활용한 조선군사령부 마구간과 승정원·사헌부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아래쪽으로 있던 법무원과 학부는 경관연습소와 토목과분실로 변경되었는데, 내부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기존 시설들은 유지하면서 전면 마당에 건물이 추가되었다. 마지막으로 기존의 탁지부 부지는 위쪽 절반이 경관연습소로 변경되었고, 아래쪽 절반은 법관양성소와 통합되어 전수학교로 변경되었다. 이 경우에는 기존의 시설들이 다수 철거되고 넓은 마당이 조성되는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 외에도 광화문통 시설들 주변으로 소규모의 필지와 지번, 개천과 인접 동명(洞名)이 기재되어 있어 당시의 광화문통 주변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도판]

  • 도판1.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 1907-1909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2. 경성광화문통관유지일람도, 1917-1922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