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총독부 부속기관·관측소

조선총독부 개척민지원자훈련소

조선총독부 개척민지원자훈련소는 1932년 만주국 건립 이후 만주개척을 활성화하기 위해 1940년 4월 설립된 관립시설로, 1938년 선만척식주식회사(鮮滿拓植株式會社)가 세운 척식훈련소(拓植訓練所)의 일체를 계승하여 조선총독부 직할로 만든 훈련소이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당시 운영된 조선총독부 개척민지원자훈련소와 관련된 도면 50매가 소장되어 있다. 이 도면들은 모두 화지나 트레이싱지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표> 조선총독부 개척민지원자훈련소 소장 목록
명칭 연도 도면수
조선총독부 개척민지원자훈련소 1940-1945 50

만주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개척민 중 중견인물을 양성하기 위해 강원도 평강(平康)군 고삽(高揷)면 세포(洗浦)리에 설치된 이 훈련소는 1938년부터 정부보조 하에 운영이 이루어졌으나, 1940년 6월 20일 조선총독부만주개척민지원자훈련소관제(朝鮮總督府滿洲開拓民志願者訓練所官制)(勅令 第386號)가 공포되면서 조선총독부 직할로 개편되어 운영되었으며, 같은 해 7월 17일 개소식을 거행하고 본격적으로 운영이 시작되었다. 전체 면적은 부지 9,000평, 경지(耕地) 83,000평, 미경지(未耕地) 21,000평, 유지(遺地) 14,000평, 방목지(放牧地) 135,687평, 산림 1,170,000평으로 모두 1,432,687평에 달하였으며, 훈련소 내 건물로는 사무실, 기숙사, 직원숙사, 농산가공실(農産加工室), 작업실, 농구사(農具舍), 물치 및 창고, 우사(牛舍), 계사(鷄舍), 돈사(豚舍), 면양사(緬羊舍), 퇴비사(堆肥舍), 농부사(農夫舍) 등 1,488.5평이 건립되어 있었다. 다만,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훈련소에 대한 도면은 모두 부분 시설에 대한 것들로, 전체 훈련소의 부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이는 시기적으로 전쟁의 혼란기였던 점과 농축산업에 대한 기술 훈련이 목적이었던 시설이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먼저, [도판1], [도판2], [도판3]은 당시 훈련소 중심지의 개략적인 배치를 볼 수 있는 도면이며, 각 도면에 기재된 내용은 조금씩 모두 달라 점진적인 신축 과정에서 작성된 배치도들로 생각된다. 이 도면들에서 보이는 훈련소의 특징적인 점은 집단 이주를 목적으로 했던 당시의 정책에 따라 여러 건물들이 각각의 독자적인 구역 내에 집합적으로 계획되어 있다는 것이다. 도면들의 오른쪽에 있는 본부(本部) 건물 구역에는 청사 외에 관사, 숙사 등이 주로 배치되었으며, 나머지 각 훈련생 구역에는 모두 비슷하게 기숙사 한 동과 우사, 돈사, 계사 등 축산시설, 그리고 농업관련 시설들이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다. 본부와 가까운 쪽부터 '제1부락(第一部落)'부터 '제5부락(第五部落)'까지 순차적으로 건설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도판2]에는 기재되지 않았던 '제5부락'이 '제2부락' 북쪽에 마지막으로 계획되었음을 [도판3]에서 확인할 수 있다.

훈련소 내 모든 건물은 목조구법으로 간이하게 계획되었다. 시설의 중심인 본관의 계획은 [도판4]에서 볼 수 있는데, 이 도면은 기존에 있었던 본관을 수선하기 위해 작성된 도면이다. 본관은 목조 단층 일자형 건물로 후면에 변소, 화장실 등의 부속건물이 복도로 연결된 형태였다. 본관의 내부에는 큰 강당과 교관실, 사무실, 소장실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이 도면은 강당의 일부를 교관실로 바꾸고, 소장실과 사무실의 위치를 바꾸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는 1940년 조선총독부 직할로 훈련소가 개편된 이후 교관의 수가 확충되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도판5]는 각 훈련생 부락의 중심 건물인 기숙사에 대한 설계도이다. 기숙사는 모두 거의 유사한 형태로 계획되었기 때문에, 이 도면이 어느 부락의 기숙사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숙사는 목조 단층의 ㄱ자형 건물로 계획되었다. 전면의 一자 부분에는 9X12척(약 2.7X3.6m) 크기의 온돌방이 규칙적으로 배열되었으며, 방과 방 사이에는 벽장(押入)이 계획되었다. 온돌(溫突) 난방을 위한 분구(焚口)가 실내에 계획되었으며, 전면 벽체에 연이어 연도가 배열되었다. 후면의 날개채에는 식당과 취사장, 욕실이 계획되었으며, 변소는 건물 중앙 후면에 별도의 부속채로 계획되었다.

[도판6], [도판7], [도판8]은 각각 우사(牛舍), 계사(鷄舍), 돈사(豚舍)의 설계도이다. 모두 간이목조의 단층 건물로 계획되었다. 우사의 내부는 네 구역으로 나뉘어 두 개의 우방(牛房)과 사료조리실, 분만실로 계획되었으며, 사료조리실에는 화덕과 연도가 설치되었다. 중앙 복도의 상부에는 환기를 위한 들어올림 지붕이 계획되었다. 계사는 우사보다 훨씬 단순하게 계획되었는데, 건물의 전면에 닭의 활동을 위한 운동장이 목책으로 함께 계획되었다. 돈사는 일방향 경사지붕 건물로 각 사육실이 연이어 배열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고, 계사와 마찬가지로 전면에 운동장이 같이 계획되었다.

한편, 조선총독부 개척민지원자훈련소 도면 중에서는 이러한 부락 체계 속의 기숙사와 다른 별도의 기숙사 시설에 대한 도면도 확인되는데, 초기 운영 이후 개척민을 대규모로 모집하게 됨에 따라 대규모의 기숙사를 증축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도판9]는 그 초기 계획도이다. [도판3]에서 계획된 '제5부락(第五部落)'이 실제로 건설되지 않고, 그 위치부터 북쪽으로 대규모의 기숙사군이 계획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사면의 부지를 계단형으로 정비하고 가장 남쪽에 취사장이 계획되었고, 그 북쪽으로 '제1중대 숙사', '제2중대 숙사', '제3중대 숙사'가 차례로 계획되었다. 즉, 훈련생을 대규모로 수용하기 위해서 기존의 부락체계의 배치를 포기하고 보다 집단화된 시설을 계획한 것이며, 그 명칭 또한 기존의 '부락(部落)'에서 '중대(中隊)'로 바뀌어 군사적인 측면이 강해졌음을 알려준다. [도판10]은 그 이후의 배치를 보여주는 도면으로, 제1, 2중대 숙사가 건설된 이후, 그 북쪽에 '제3중대 숙사'가 신축 계획되었음을 보여준다. 또 기존의 제1, 2부락 사이의 공지에도 추가 숙사가 계획되어 있다.

계획된 숙사의 상세는 [도판11][도판12]에서 확인 가능하다. 목조 단층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기존의 기숙사([도판5] 참조)와 달리 복도를 가운데 두고 양쪽에 모두 방을 배열하였다. 방 하나의 크기는 9X15척(약 2.7X3.9m)로 계획되었는데, 내부에 5개의 다다미(疊)가 깔리고 벽장도 5칸으로 계획된 것을 볼 때, 기존의 기숙사보다 많은 훈련생을 수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규모 변소가 외부복도로 연결되었으며 반대쪽에는 식당, 교관실, 면회실 등이 배치되었다. 또, 기존 기숙사의 개량온돌 난방방식이 페치카(ペーチカ) 방식으로 바뀌었음도 특징적이다.

[참고도판]

  • 도판1.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소기숙사기타신축공사건물위치변경도, 1940년경 상세보기
  • 도판2. 세포만주개척민훈련소배치도, 1940년경 상세보기
  • 도판3.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소관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1/배치도, 1940년경 상세보기
  • 도판4. 만주개척민지원자훈련소건물본관일부모양체급수선공사 / 구평면급모양체후평면, 1940년경 상세보기
  • 도판5.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소기숙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2, 1940 상세보기
  • 도판6.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소관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우사 / 5, 1940년경 상세보기
  • 도판7.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소관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계사 / 7, 1940년경 상세보기
  • 도판8.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소부지지균공사내돈사신축설계도, 1940년경 상세보기
  • 도판9. 조선총독부개척민지원자훈련소훈련생숙사증축기타공사배치도, 1940-44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0.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생숙사증축기타공사설계도, 1940-44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1.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생숙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숙사 평면 자도 소옥복 기타, 1940-44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2. 조선총독부개척민훈련생숙사기타신축공사설계도 / 숙사상세도, 1940-44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