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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부속기관·관측소

조선총독부관측소 및 조선총독부기상대

조선총독부관측소는 1910년 강점 이후 기존의 대한제국관측소가 개편된 시설이며, 조선총독부기상대는 1939년 개칭된 명칭이다.

한국에서 근대기상관측은 러·일전쟁 발발과 함께 1904년 부산, 목포, 인천, 용암포, 원산 등 5개소에 일본중앙기상대 임시관측소가 설치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1907년 3월 칙령 제70호로 <통감부관측소관제(統監府觀測所官制)>가 공포되면서, 인천임시관측소가 통감부관측소로 개편되었고, 나머지는 그 지소가 되었다. 1908년 3월에는 통감부관측소가 폐지되고 모든 관측업무가 대한제국으로 이관되었는데, 1907년 공포된 <농상공부측후소관제(農商工部測候所官制)>에 준하였다.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관제(朝鮮總督府官制)>와 10월 1일 칙령 제360호로 <조선총독부통신관서관제(朝鮮總督府通信官署官制)>가 공포되면서 모든 관측사무는 조선총독부에서 담당하게 되었다. 내무부 학무국 소관으로 이관된 관측사무의 실제는 기존의 인천관측소가 조선총독부관측소로서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 1939년 7월 1일 조선총독부관측소는 조선총독부기상대로 개칭되었다. 중·일 전쟁 발발 이후 기상업무는 전시체제 정책의 하나이기 때문에 전국의 측후소가 정부 관할로 이관되어야 한다고 제안되어, 1938년부터 각 도 관할의 측후소가 중앙 관측소 산하로 개편되었으며, 1939년 6월 27일 칙령 제418호로 중앙기관의 명칭도 조선총독부 기상대로 개칭하기로 한 것이다. 기상대는 1939년 7월 2일 인천에 설치되었으며, 기존의 인천측후소의 시설을 승계하여 운영되었다.

현재 인천광역시 중구 전동 25번지에 있던 조선총독부 기상대는 해방 이후 국립중앙관상대 인천측후소로 개편되었고, 1982년 신청사를 준공하였으며, 1992년 인천기상대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가기록원에는 인천의 조선총독부관측소 관련도면 53매와 조선총독부기상대 관련도면 8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표> 조선총독부관측소 및 조선총독부기상대 소장 목록
명칭 연도 도면수
조선총독부관측소 1910-1939 53
조선총독부기상대 1939-1945 8

조선총독부관측소는 1910년부터 운영되었으나, 1910년대 초중반의 현황에 대한 도면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1918-20년에 작성된 8장, 1923년의 1장, 1928년의 26장, 1929년의 1장, 1938년의 8장, 기상대로 개칭 이후의 1939-40년경의 8장이 소장되어 있다.

조선총독부관측소의 전체 현황을 보여주는 가장 이른 시기의 도면은 1918년에 청사 증축 시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판1]이다. 관측소는 언덕의 정상에 자리하고 있는데, 기존의 관측소 청사를 증축하고 기계수선실(機械修繕室)과 자오의실(子午儀室)을 신축하는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이 공사가 예정대로 진행되었음은 1919년의 [도판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청사 부분의 모양으로 볼 때, 청사 증축이 완료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도면은 자오의실의 동쪽에 자침요소관측실(磁針要素觀測室)을 건립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청사 증축 이후 관측소 중심부의 배치는 [도판3]에 첨부된 배치도에서 확인된다. 증축된 청사 전면으로 교통로가 계획되어 있고, 청사의 서쪽과 후면으로 창고들이 배치되어 있다. 부지의 서쪽에는 원형의 단(壇)이 마련되어 있는데, 옥외관측을 위한 시설로 보인다.

이후의 1928년의 관측소 현황을 [도판4]에서 볼 수 있다. 이 도면은 관측실(觀測室)을 현대적으로 다시 신축하기 위해 작성된 도면으로, 기존의 증축된 청사와 부속가(附屬家), 창고, 기존의 관측실의 위치가 모두 확인된다. 새로운 관측실은 청사와 같은 부지의 서쪽에 계획되었다. 이와 함께, 관측소로 진입하는 도로가 정비되었고, 청사 서쪽의 부속가 전면부도 증축되었다. 초기에는 관측소 부지의 남동쪽으로 도로를 건설하는 계획이었으나,([도판5]) 곧바로 도로의 만곡을 줄이고 폭원을 넓혀 새로운 도로를 건설하고 관측소 서쪽 진입부에 광장을 형성하는 계획이 진행되었다. ([도판6])

이후, 1938년까지 10년 동안 새로운 시설의 건설 없이 관측소가 운영되었다가, 1938년 다시 관측실의 증축이 계획되었다. [도판7]은 관측소의 서쪽으로 ㄱ자 형태의 건물을 증축하는 공사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그와 함께, 10년 전 완료된 관측소의 모든 건물이 그대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도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39년 기상대로 개칭된 이후의 배치 현황은 [도판8]에 기재되어 있다. 이 도면은 기상대로 개편된 이후 1939-40년경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기존 시설의 서쪽에 방공실(防空室)을 건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38년 이후 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관측업무를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계획으로 보인다. 방공실 외에도 남쪽에 급수탑(給水塔)이 새로 계획되었으며, 1938년 계획된 관측실의 증축 부분이 서쪽으로 더 확장되어 있음도 확인된다.

1910년대 관측소의 청사로 운영되었던 건물의 상세는 191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증축공사도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도판9]는 청사의 동쪽 일부를 증축하기 위해 작성되었는데, 기존의 청사가 양식목조 2층 건물로 영국식비늘판벽으로 마감되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기존 청사는 장방형 평면으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전면 중앙에 현관을 두고 그 안쪽에 계단실과 ┫자 형태의 복도를 배치하였다. 좌우대칭 입면의 중앙에 있는 현관에는 포치가 계획되었는데, 포치의 상부는 감시탑의 용도로 사용하여 본채의 지붕보다 더 높이 계획되어 있음을 볼 수 있으며, 탑의 3층 부분에는 다양한 장식 요소가 부가되어 있었다. 증축 부분의 상세는 [도판10]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청사의 동쪽 부분 증축 이후에 서쪽도 동일한 형태로 증축되어 다시 좌우대칭 형태의 청사가 형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1920년에 계획된 자침요소관측실 역시 양식 목조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벽체는 모르타르바름으로 마감되었다.([도판11] 참조) 건물은 이층의 층고를 갖는 단층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외벽에는 건물을 안정시키기 위해 사선의 구조가 일정 간격으로 부가되었으며, 내부는 기둥과 벽체가 없는 단일 공간으로 계획되었다.

[도판12]는 1928년에 계획된 신축 관측실이다. 이 관측실은 매우 현대적으로 계획되었으며, 그에 걸맞게 철근콘크리트조 2층 건물로 설계되었다. 관측실은 사분원 형태로 계획되었으며, 원호 부분에 현관이 계획되었다. 내부의 원형벽체 안쪽은 응접실로 계획되었으며, 그 외곽으로 무선실, 관측실, 숙직실, 지진계사실(地震計査室), 지진계실이 배치되었다. 청사 방향의 회랑이 이어지는 쪽에는 돌출된 건물이 계획되었는데, 이 부분에 작업실, 변소, 세면소가 배치되었다. 중앙의 원형 벽체 부분만 2층으로 계획되었는데, 2층에는 관측을 위한 기계실이 배치되었고, 계단실 부분을 제외한 팔방으로 각각 창호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그 옥상에는 각종 관측 장비가 배치되었으며, 옥상으로의 출입은 원형 벽체 외부에 설치된 옥외계단을 통해 이루어졌다. ([도판13] 참조) 건물의 구조 상세는 [도판14]에서 볼 수 있다. 철근콘크리트 기둥과 보, 바닥판의 구조를 바탕으로 벽돌을 쌓아 벽체를 계획하였으며, 외부 벽체는 모르타르(モルタル)를 발라 마감하였다. 전체적으로 원형과 사분원, 정방형이 조합된 매우 현대적인 조형 요소를 가진 계획으로 평가된다.

이외에 1928년에는 적도의실(赤道儀室)도 신축되었는데, 그 상세는 [도판15]와 같다. 벽돌을 쌓아 원형의 외벽을 만들고, 철제구조물로 돔을 계획하였으며, 돔의 외부는 판재로 마감하였다. 내부에는 대형 정밀 망원경과 돔의 관측창을 개폐하기 위한 설비가 설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38년에는 관측실의 서쪽부가 증축되었는데, 그 계획은 [도판16]과 같다. 증축 부분은 단층으로 계획되었으며, 내부에는 무선수신실, 숙직실, 예보계실이 배치되었다. 증축 부분과의 통행로는 후면에 외부 회랑을 만들고, 기존의 숙직실 부분을 홀로 바꾸어 연결하였다. 증축 부분의 외부 벽체가 기존 건물과 통일되지 않게 계획되어 있는 점이 흥미롭다.

기상대로의 개편 이후에 계획된 방공실의 상세는 [도판17], [도판18]에서 확인된다. 방공실은 땅 속에 철근콘크리트 구조물로 계획되었으며, 폭격에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상부는 아치 형태로 계획되었다. 지하로 연결되는 계단실 및 단일 공간으로 계획된 대피공간과 송전실(送電室), 전지실(電池室) 등 부대공간이 ㄱ자 형태로 배치되었다.

[참고도판]

  • 도판1. 인천관측소청사증축기타공사배치도 / 1 / 측(로)11, 1918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2. 인천관측소자침요소관측실신축토공공사평면도 / 20-1, 1919 상세보기
  • 도판3. 인천관측소창고신축기타공사설계도 / 측(로)16, 1918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4. 인천관측소관측실신축신축기타공사배치도 / 배치도 / 1, 1928 상세보기
  • 도판5. 인천관측소신설도로기타공사설계도 / 22, 1928 상세보기
  • 도판6. 인천관측소신설도로공사설계평면도 / 18, 1928 상세보기
  • 도판7. 조선총독부인천관측소증축공사배치도 / 1, 1938 상세보기
  • 도판8. 조선총독부기상대방공실기타신축공사설계변경도,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9. 인천관측소증축설계도 / (로)2, 1918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0. 인천관측소청사증축기타공사설계도 / 2 / 측(로)12, 1918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1. 인천관측소자침요소관측실신축공사설계도, 192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2. 인천관측소관측실신축기타공사설계도 / 정면평면지형복기타도 / 2, 1928 상세보기
  • 도판13. 인천관측소관측실신축기타공사설계도 / 기구관측실상세도 / 6, 1928 상세보기
  • 도판14. 인천관측소관측실신축기타공사설계도 / 각부상세도 / 3, 1928 상세보기
  • 도판15. 인천관측소적도의실신축기타공사설계도 / 적도의실옥근신축설계도 / 2, 1928 상세보기
  • 도판16. 조선총독부인천관측소증축공사설계도 / 평면급건도 / 2, 1938 상세보기
  • 도판17. 조선총독부기상대방공실기타신축공사,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
  • 도판18. 조선총독부기상대방공실기타신축공사, 1939-40년 추정 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