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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 부속기관·관측소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의 관측소 설치와 운영

우리나라에서 근대 기상업무는 1884년 인천세관과 원산세관 구내에 기상관측기기를 설치하여 관측한 것을 시발점으로 볼 수 있다. 이후 1887년 부산세관에서도 관측을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인천, 원산, 부산에서 기상관측소 업무를 1903년까지 수행하였다.

이와 함께 당시 우리나라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던 러시아와 일본에서도 군사작전상에 매우 중요한 자료인 기상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기상업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일본은 1884년부터 관측을 시작하여 일본 기상예보에 활용하였으며, 러시아에서는 1887년부터 경성 러시아 공관 구내에서 관측을 시작하였다. 이후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1904년 3월부터 부산, 목포, 인천, 용암포, 원산 등 5곳에 임시관측소를 설치하고, 그 후 성진과 진남포에도 임시관측소를 설치하여 모두 7곳에서 기상관측을 시작하였다.

한편, 1906년 1월 1일부터는 한국주둔 일본군 소속 육군병원과 그 분원이 있는 회령, 수성, 갑산, 북청, 장진, 함흥, 초산, 안주, 금화, 경성, 해주, 춘천, 충주, 전주, 대구 등지에서도 기상관측이 시작되었다.

<표1> 1904년 이후 일본이 우리나라에 설치한 임시관측소 내역
관측소명 위도(N) 경도(E) 기압계의 높이(m) 관측개시일 소재지
목 포 제2관측소 34° 47′ 126° 23′ 28.2 1904.03.25 전라남도 무안부 목포
부 산 제1관측소 35° 06′ 129° 02′ 14.9 1904.03.26 경상남도 동래부 부산
인 천 제3관측소 37° 29′ 126° 08′ 70.0 1904.04.10 경기도 인천부 인천
원 산 제5관측소 39° 09′ 127° 26′ 2.7 1904.04.10 함경남도 덕원부 원산
용암포 제4관측소 39° 56′ 124° 22′ 6.4 1904.05.01 평안북도 용천부 용암포
성 진 제9관측소 40° 40′ 129° 11′ 4.0 1905.05.13 함경북도 성진부 성진
진남포 관측소 38° 44′ 125° 18′ - 1906.08.01 평안남도 진남포

1907년 2월 1일, 대한제국은 칙령 제54호로 <농상공부소관측후소관제(農商工部所管測候所官制)>를 공포하고, 평양, 대구, 경성에 측후지소(測候支所)를 설치하였으며, 그 감독은 통감부관측소에 위탁하였다. 그리하여, 1907년 3월 칙령 제70호로 <통감부관측소관제(統監府觀測所管制)>가 공포되었고, 같은 해 4월 1일 인천임시관측소가 통감부관측소로 개칭되었으며 나머지 관측소는 그 지소(支所)가 되었다.

<표2> 1907년 대한제국이 신설한 관측소
측후소 위도(N) 경도(E) 기압계의 해발고도(m) 우량계 지상높이(m) 관측개시일 소재지
평 양 39° 01′ 125° 41′ 30.0 0.2 1907.01.01 평안남도 평안군 평양
대 구 35° 50′ 128° 36′ 39.4 0.2 1907.01.07 경상북도 대구군 대구
경 성 37° 34′ 126° 58′ 39.0 0.3 1907.10.01 경기도 한성부 동부

하지만, 1년 뒤인 1908년 3월 31일 통감부관측소가 폐지되면서 기상업무는 다시 대한제국 정부에 인계되었고, 같은 해 4월 1일에 칙령 제18호로 새로운 <농상공부측후소관제(農商工部測候所官制)>가 공포됨에 따라 인천관측소 산하에 경성, 평양, 용암포, 대구, 부산, 목포, 원산, 성진 등 8개 측후소가 운영되게 되었다. 즉, 1904년 일본 중앙기상대 산하의 임시관측소 설치로 시작된 근대식 기상업무는 1908년에서야 비로소 대한제국 관할의 기상업무로 통합된 것이다.

1907년 이후, 대한제국의 기상관측 업무는 점차 규모가 확대되어 중앙기관인 인천관측소 산하에 목포, 부산, 대구, 경성, 평양, 원산, 용암포, 성진 등 8개의 측후소와 20곳의 위탁관측장(委託觀測場)이 운영되었다. 관측소와 측후소에서는 1일 6회(02, 06, 10, 14, 18, 24시)관측을 시행하였고, 위탁관측장에서는 1일 3회(06, 14, 22시) 관측을 실시하였다. 관측한 기후자료는 기후개황(氣候槪況), 기온(평균, 최고, 최저, 교차), 강수량(총량, 일 최다량, 1시간 최다량, 강수일수, 적설 및 그 일수), 바람(평균풍속, 평균풍향, 폭풍일수), 구름(평균운량, 맑음 일수, 흐림 일수), 일조(일조시간, 백분율), 현상관측인 서리, 눈, 이슬, 햇무리, 달무리, 지진, 황사 등 특수 현상 등이며, 기압관측은 관측소 및 측후소에서만 관측하였다.

<표3> 1908년 당시 관측소, 부속측후소, 위탁관측장
구분 명칭 및 위치
관측소 인천관측소 경기도 인천부 응봉현 매봉재 산정(山頂)
측후소 경성측후소 경기도 한성부 동부 평양측후소 평안남도 평안군 평양
용암포측후소 평안북도 용천부 용암포 대구측후소 경상북도 대구군 대구
부산측후소 경상남도 동래부 부산 목포측후소 전라남도 무안부 목포
원산측후소 함경남도 덕원부 원산 성진측후소 함경북도 성진부 성진
위탁관측장 수원, 주안(이상 경기도), 춘천, 금화(이상 강원도), 대전, 충주(이상 충청도), 전주, 임파(이상 전라도), 용호(이상 경상도), 진남포, 안주, 초산, 강계(이상 평안도), 함흥, 북청, 혜산진, 경성, 무산, 회령(이상 함경도), 용정촌(이상 만주간도)

이상의 관측시설과 관측사무는 일본의 강점 이후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관제(朝鮮總督府官制)>와 같은 해 10월 1일 칙령 제360호로 <조선총독부통신관서관제(朝鮮總督府通信官署官制)>가 공포되면서 조선총독부에서 담당하게 되어 조선총독부관측소 및 측후소에서 승계하게 되었다. 내무부 학무국 소관으로 이관된 관측사무의 총괄은 기존의 인천관측소가 조선총독부관측소로 개편되어 담당하게 되었다. 또, 1912년 3월 28일 조선총독부령 제56호로 <조선총독부관측소 및 부속 측후소의 명칭과 위치>를 <표5>과 같이 정하고 같은 해 4월 1일부터 시행하였다.

<표4> 1910년 당시 강점 이후의 관측소와 측후소 현황
관 측 소 측 후 소
명 칭 위 치 명 칭 위 치 명 칭 위 치
조선총독부 경기도 인천 경성측후소 경기도 경성 성진측후소 함경북도 성진
관측소 대구측후소 경상북도 대구 용암포측후소 평안북도 용암포
목포측후소 전라남도 목포 원산측후소 함경남도 원산
부산측후소 경상남도 부산 평양측후소 평양남도 평양
<표5> 1912년 개편된 조선총독부관측소 및 측후소의 명칭과 위치
관 측 소 측 후 소
명 칭 위 치 명 칭 위 치 명 칭 위 치
조선총독부 경기도 인천 경성측후소 경기도 경성 성진측후소 함경북도 성진
관측소 대구측후소 경상북도 대구 용암포측후소 평안북도 용암포
목포측후소 전라남도 목포 원산측후소 함경남도 원산
부산측후소 경상남도 부산 평양측후소 평양남도 평양
강릉측후소 강원도 강릉

이후 지속적으로 관측시설들을 신설하며 시설을 확충해 가다가 1925년 4월 조선총독부령 제37호에 의해 조선총독부관측소를 제외한 13개 모든 측후소가 각 소재지 관할의 도(道)로 이관되고, 같은 해 5월 16일 <측후소규정(測候所規程)>이 제정되어 도립(道立)의 운영이 시작되게 되었다. 이는 1920년대 세계대공황으로 인한 일본 본국과 조선총독부의 재정정리 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며, 따라서 중앙정부 예산으로 운영되던 측후소가 도지방비(道地方費) 예산으로 운영하게 되게 된 것이다.

1925년 이후 도립(道立)으로 운영되던 각 지방의 측후소는 중·일 전쟁 발발 이후 기상업무는 전시체제 정책의 하나이기 때문에 전국의 측후소가 정부 관할로 이관되어야 한다고 제안되어, 1938년 10월 중강진, 신의주, 해주, 경성, 강릉, 제주 등 6개 측후소가, 1939년 7월에는 평양, 대구, 부산 등 3개 측후소가 관할 조정이 되는 등 1938년에서 1940년에 걸쳐 모든 측후소가 다시 중앙의 조선총독부관측소 산하로 개편되었다. 이와 함께 조선총독부관측소는 1939년 6월 27일 칙령 제418호에 의해 조선총독부기상대로 명칭이 개칭되었고 <조선총독부기상대관제(朝鮮總督府氣象臺管制)>를 제정하여 같은 해 7월 1일부터 시행하여 해방되기까지 유지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의 기상업무를 위한 시설로는 전술한 관측소와 측후소 이외에도 관측지소, 출장소, 특수기상관측을 위한 시설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1930년대 말에 신설되었는데, 관측지소는 측후소가 도립으로 운영되는 시기에 추가로 지방에 설치된 관립의 관측시설이었고, 출장소는 1930년대 이후의 당시 전시상황과 경제상황 등과 맞물려 본격적인 측후소 대신에 규모가 작은 관측시설로 운영하였던 시설이다. 특수기상관측을 위한 시설은 상층기류나 고층기상 등 일반적인 기상 현황 관측 외의 특수한 관측을 위한 설치된 것으로 대부분 1930년대 중반 이후에 주요 지역과 각 비행장에 신설되어 운영되었다.

이외에도 각종 관립 운영 시설에서도 보조기상관측이 이루어졌다. 전국의 부·군·도청을 비롯하여 경찰관 주재소, 각 도 종묘장, 농장 등에서 관측이 이루어졌는데, 1915년 73곳에서 운영되던 보조기상관측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1938년에 이르러서는 431곳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