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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형

기타 분감 및 형무지소

이미 살펴본 18개의 형무소 이외에도, 일제 강점기에는 각지에 많은 분감 또는 형무지소가 설치되어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다룬 시설에 비하여 각 시설별 도면의 수량이 적게 남아 있어, 각 시설의 주요 도면을 위주로 개략적인 소개를 하기로 한다. 본 절에서 다루는 시설은 총 12개 시설에 대한 국가기록원 소장 도면 275매이며, 구체적인 내역은 다음의 표와 같다.

번호 지역 명칭 연도 도면수
[합 계] 275
1 진주 진주감옥 1908.07 - 1909.10
7 33
부산감옥 진주분감
1909.11 - 1923.04
24
부산형무소 진주지소
1923.05 - 1945.08
2
2 원산 함흥감옥 원산분감
1908.11 - 1923.04
- 7
함흥감옥 원산분감
1923.05 - 1945.08
7
3 청주 공주감옥 청주분감
1908.11 - 1923.04
29 42
공주형무소 청주지소
1923.05 - 1936.04
9
대전형무소 청주지소
1936.03 - 1945.08
4
4 춘천 경성감옥 춘천분감
1908.11 - 1912.08
6 27
서대문감옥 춘천분감
1912.09 - 1923.04
18
서대문형무소 춘천지소
1923.05 - 1945.08
3
5 인천 경성감옥 인천분감
1909.02 - 1912.08
7 7
서대문감옥 인천분감
1912.09 - 1923.03
-
6 군산 광주감옥 군산분감
1910.06 - 1920.09
12 32
전주감옥 군산분감
1920.10 - 1923.04
17
전주형무소 군산지소
1923.05 - 1945.08
3
7 마산 부산감옥 마산분감
1910.06 - 1923.04
13 16
부산형무소 마산지소
1923.05 - 1945.08
3
8 진남포 평양감옥 진남포분감
1910.10 - 1923.04
21 21
평양형무소 진남포지소
1923.05 - 1945.08
-
9 안동 대구감옥 안동분감
1921.03 - 1923.04
30 35
대구형무소 안동지소
1923.05 - 1943.02
5
김천소년형무소 안동지소
1943.03 - 1945.08
-
10 서흥 해주감옥 서흥분감
1921.03 - 1923.04
21 26
해주형무소 서흥지소
1923.05 - 1943.02
5
개성소년형무소 서흥지소
1943.03 - 1945.08
-
11 강릉 함흥감옥 강릉분감
1921.03 - 1923.04
8 10
함흥형무소 강릉지소
1923.05 - 1924.12
2
12 제주 목포감옥 제주분감
1921.03 - 1923.04
15 19
목포형무소 제주지소
1923.05 - 1924.12
4

*부산형무소 진주지소
진주감옥은 1908년 7월 진주관아의 감옥을 인수받아 운영되기 시작하였으나, 1909년 11월 부산분감이 본감(本監)으로 승격되면서, 진주감옥은 부산감옥 진주분감으로 개편되었으며, 1923년 5월 부산형무소 진주지소로 개칭되었다. 진주분감은 1914년(大正 3) 신축하여 이전하였는데, 구내의 면적은 2,460여 평, 청사는 목조 단층 건물로 33여 평이었다.

[도판1]은 진주감옥 개설 직후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면이며, [도판2]는 부지를 확장하고 다시 각 건물을 수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도면이다. [도판1]은 1908년 7월 개청을 전후한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래 재판소로 쓰이던 건물과 부지를 인수하여 감옥으로 수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건물은 원래 진주관아로 쓰였던 조선식 건물들이었으며, 문간채 영역의 두 건물을 수선하여 감방으로 사용하였고, 안채 부분의 건물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곧이어, 부지를 확장하고 건물의 대대적인 수선 공사가 시행되었는데, [도판2]에 기재된 현재도(現在圖)와 수선도(模樣替圖)를 비교하면 수선의 내용을 잘 볼 수 있다. 우선 확장된 부지에는 공장과 취사장이 신축되었으며, [도판1]에서 수선된 감방 이외에 또 다른 2동을 감방으로 수선하였다. 사무실로 사용한 건물은 전면 7칸의 건물로 1칸의 간수휴게소, 1칸의 숙직실, 3칸의 사무실, 2칸의 전옥실(典獄室) 및 응접실로 개수되었다. 이 도면은 전통의 조선식 건물은 어떻게 근대적 행형 시설에 맞추어 수선하여 사용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도판3]은 1914년 신축 이전한 부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면이다. 남쪽을 전면으로 장방형의 부지를 마련하였으며, 경사진 입구도로의 안쪽으로 정방형의 목조 담장을 설치하여 감옥을 신축하였다. 신축 부지에 건립된 분감의 모습은 1919년의 [도판4]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도면은 부지를 북쪽으로 확장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전면에 사무실이 위치하였으며, 그 좌우에 구치감(拘置監)과 여감방이 배치되었고, 여감방의 후면으로 취사장, 창고, 우물, 변소 등이 있었다. 후면에는 감방 한 동과 공장 한 동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 감방은 1915년 이전 부지에서 이축해 온 것이다.([도판5] 참조)

이후 지속적으로 건물이 신축되었는데, 1920년의 [도판6]과 1922년의 [도판7]을 보면, 우선 1920년 이전에 기설공장(旣設工場)이라 표시된 공장이 신축되었으며, 1920년에 감방 한 동이 더 신축되었다. 1922년에는 청사가 증축되었으며, 청사의 좌우에 창고가 신축되었다. 또한, 기존 공장 전면의 창고가 대형으로 증축되었고, 1920년에서 22년 사이에 감방 2동의 사이에 중앙간수소가 건립되었음도 확인할 수 있다. [도판8]은 당시 증축된 청사의 설계도이다. 청사는 목조 단층 건물이었으며, 一자의 본채 측면에 직교하여 부속채가 붙어 있었다. 벽면은 영국식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어 있었다. 이 시기 사무실의 서쪽으로 분감장실(分監長室)이 증축되었으며, 2칸이었던 부속채도 4칸으로 확장되었다.

1923년 진주형무지소로 개칭된 이후의 상황은 1928년의 [도판9]에서 볼 수 있다. 1920년대 초의 [도판6], [도판7]과 비교해 보면, 추가로 신축된 건물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 정문과 담장이 벽돌조로 개축되었다.

*함흥형무소 원산지소
함흥감옥 원산분감은 1908년 11월 설치령이 공포되었으며, 다음 해인 1909년 2월부터 사무가 시작되었다. 이후, 1914년(大正 3) 11월에 원산부 와우리로 신축 이전하였다. 1923년 5월에는 함흥형무소 원산지소로 개칭되었다.

원산분감 시기의 도면은 남아 있지 않아 그 모습을 알 수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도면인 1925년의 [도판10]과 1927년의 [도판11]을 통해 당시 원산형무지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도판10]은 강릉형무지소에서 회랑과 건물을 이축해 오는 공사에 관련된 도면으로 부속된 배치도를 보면, 전면에 청사가 있고, 그 후면으로 T자형의 감방이 있다. 감방과 청사 사이에는 사무실, 창고 등이 자리하였으며, 감방의 주위에는 공장 2동이 배치되어 있다. 2년 뒤의 [도판11]을 보면, 2년 사이에 많은 건물이 신축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우선 이 도면은 형무지소 주변의 담장을 벽돌조로 개축하는 공사에 관한 도면이다. 도면의 내용을 보면, 우선 부지의 후면이 확장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건물 신축에 관련해서는 청사 후면의 사무실이 신축되었으며, 세 동의 감방 중앙 부분도 개축되어 중앙간수소가 마련되었음을 볼 수 있다. 청사의 좌우에는 구치감이나 여감(女監) 혹은 병감(病監)으로 쓰였을 건물들이 별도의 구획으로 건립되어 있다. 감방의 좌우에도 공장이 한 동 더 신축되어 있으며, 그 외에 창고 등 다수의 건물이 신축되어 있다.

*대전형무소 청주지소
공주감옥 청주분감 역시 1908년 11월 설치령이 공포되어, 1909년 3월에 개청하였다. 개정 당시에는 설비가 불충분하여 청주 진아대(鎭衙隊)의 영사(營舍)와 경찰서의 순사휴게소를 빌려 감방과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1910년(明治 43) 1월에 청주읍 탑동으로 신축 이전하였으며, 1920년(大正 9)부터 대규모 개축공사가 시작되었다. (청사, 감방, 공장, 담장 등) 1923년 5월에는 공주형무소 청주지소로 개칭되었으며, 1936년 3월에는 대전형무소로 이관되어 대전형무소 청주지소로 개칭되었다. 1943년 10월에는 서대문형무소에 설치되어 있던 보호교도소가 청주지소로 이전되었다.

1910년 탑동으로 신축 이전한 부지의 모습을 [도판1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도면은 준공도(竣工圖)로 초기 청주분감의 운영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쪽으로 도로를 면한 정방형의 부지에 북쪽을 비우고 장방형으로 목조담장을 설치하였으며, 구역의 전면에 사무실, 창고, 공장이 배치되었고, 후면으로 취사장과 공장 2동이 배치되었다. 함께 기재된 평면도를 보면, 각 건물들은 목조 단층으로 매우 간이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이후, 부지를 남쪽으로 확장하고 건물을 신축하는데, 이를 [도판13]에서 볼 수 있다. 이 도면은 확장된 부지에 공장을 증축하고, 여감을 신설하는 계획에 관한 도면이다. 이러한 확장으로 기존에 중앙에 있었던 정문과 청사가 북편으로 치우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도판14]는 신축된 여감으로 감방 4실을 갖는 목조 단층 건물로 매우 간소하게 지어졌다.

1919년의 [도판15]는 이후 1910년대에 더 이상의 건물 신축이나 증축 없이 분감이 운영되었음을 보여주고, 1919년에 와서야 감방을 증축하는 공사가 진행되었다. 곧이어 1920년에는 부지를 다시 동쪽으로 확장하여 정방형의 부지를 마련하였고,([도판16] 참조) 1919년 증축된 감방과 열을 맞추어 감방을 더 신축하여, T자 형태로 배치하였으며, 그 사이에는 중앙간수소를 건립하였다.([도판17], [도판18] 참조)

[도판19]에서는 이렇게 감방이 정비된 이후에 청사의 이전과 수선이 진행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부지가 2번에 걸쳐 확장되면서, 부지의 모서리에 치우치게 된 청사를 부지의 전면 중앙으로 옮기고, 대대적인 수선을 하였다. 또한, 감방과 공장도 증축되어 이 당시 총 3동의 감방과 3동의 공장, 여감과 여공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전 청사의 구체적인 계획은 [도판20]에서 볼 수 있다. 이전된 청사는 재래 청사의 평면을 일부 수선하고, 날개채의 배치를 바꾸어 이루어졌다. 중앙에 사무실과 회의실의 본채에 있었으며, 북쪽으로 창고로 사용하는 부속채가, 남쪽으로 응접실, 접견실, 교무소, 의무소 등으로 사용하는 부속채가 달라붙는 형태로 설계되었다. 건물은 목조 단층이었으며, 평면형이 복잡하게 구성됨에 따라 입면 또한 좌우비대칭의 다채로운 형태로 구성되었음을 볼 수 있다.

[도판21]은 1923년 청주형무지소로 개칭된 이후의 모습을 보여준다. 청사의 이전이 완료되고 원래 자리에는 청사와 신축된 취사장이 배치되어 있다. 공장 또한 이전과 개축을 통해서 부지의 가장 후면에 일렬로 가지런히 배치하였다. 신축된 취사장의 계획도가 [도판22]이다. 취사장은 벽돌조로 계획되었으며, 지붕 위에는 채광을 위한 채광창과 별도의 지붕을 덧붙였다. [도판23]은 1938년 대전형무소 청주지소로 개편된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는 도면이다. [도판21]과 비교하여, 공장 건물이 2동 더 건립되어 있으며, 이 도면은 1938년 중앙간수소 남쪽의 독거감방을 증축하는 계획이 기재되어 있다.

*서대문형무소 춘천지소
경성감옥 춘천분감 역시 1908년 11월 설치령이 공포되어, 1909년 2월 개청하였으며, 춘천경찰서의 옥사를 인계받아 사무를 시작하였다. 이후, 재감자의 증가로 동년 9월 공비 13,800円을 들여 옥사를 추가로 신축하였다. 1912년 9월 마포에 경성감옥이 신설되고 기존의 경성감옥이 서대문감옥으로 개칭되면서, 춘천분감 역시 서대문감옥 춘천분감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원 위치에서 10여 정(町) 떨어진 곳(현 춘천시 약사동)에 부지를 마련하여 1919년(大正 7) 기공하였고, 1923년(大正 12) 준공하여 3월에 이청식을 거행하였고, 부지는 약 3,000평이었다. 동년 5월에는 서대문형무소 춘천지소로 개칭되었다. 신축 부지에서 약 8 정 떨어진 곳에는 춘천분감 소속의 벽돌공장(煉瓦工場)이 있어 이곳에서 소성한 벽돌을 신축 건물의 재료로 사용하였다.

1923년 이전하기 이전의 춘천분감의 모습은 관련된 배치도가 남아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지만, [도판24], [도판25], [도판26]를 통해 어떤 건물들이 건립되어 운영되고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있다. 이 도면들은 모두 경성감옥 춘천분감 설립 초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도면들이다. [도판24]는 청사의 신축도면이다. 목조 단층 건물로 본채와 부속채가 ㄱ자 형태로 연결되어 있었다. 입면은 영국식 비늘판벽으로 마감하였으며, 본채의 중앙의 현관을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구성되었다. [도판25]는 취사장과 공장의 신축설계도이다. 이들역시 목조 단층으로 매우 간이하게 설계되었다. [도판26]은 추가된 감방과 공장의 설계도로, 이 역시 간이한 목조 단층 건물이었으며, 감방 중앙 복도의 상부에는 채광창이 설계되었다. 감방은 영국식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었으며, 공장은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었다.

1921년 마련된 부지에 신축된 건물들의 전체적인 모습은 [도판27][도판28]을 통해 볼 수 있다. 장방형으로 마련된 신축 부지의 전면 중앙에 정문과 청사가 배치되었으며, 청사의 좌우에는 구치감(拘置監)과 여감(女監)이 별도의 구획으로 시설되었다. 청사의 후면에서는 회랑으로 중앙간수소가 이어지며, 중앙간수소에서 2동의 감방이 연결되었다. 구치감의 후면쪽에는 취사장과 창고 등이 배치되었다. 감방의 후면에는 공장이 배치되었다. [도판29][도판30]은 신축된 청사와 감방의 설계도이다. 두 건물 모두 벽돌조 단층 건물로 설계되었다. 청사는 좌우대칭의 평면과 입면 계획을 기본으로 한쪽 측면에 부속채가 덧붙여진 형태로 설계되었다. 내부에는 十자형의 복도를 두고, 전면부에 사무실, 응접실, 회의실이, 후면부에 의무 및 교무실, 휴게실 등이 배치되었다. 감방은 중복도의 전형적인 계획으로 설계되었으며, 복도 상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채광창이 시설되었다.

춘천형무지소로 개칭된 이후의 상황은 1928년의 [도판31]에서 볼 수 있다. 1919년부터 1923년에 걸쳐 완공된 건물들의 모습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으며, 이 도면은 공장 한 동을 더 신축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서대문감옥 인천분감
경성감옥 인천분감은 1909년 2월 한국정부의 감리청(監理廳) 건물을 인계받아 개청하였다. 1912년 9월 기존의 경성감옥이 서대문감옥으로 개칭되면서, 인천분감 역시 서대문감옥 인천분감으로 개칭되었으며, 1923년(大正 12) 3월 폐지되었다.
[도판32]는 개청 당시 인천분감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도면이다. 도면에 부속된 배치도에는 인천 부윤(府尹) 관아가 그려져 있어, 초기 인천분감이 인천부 관아 내 설치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장방형으로 담장을 둘러 분감 부지를 마련하고, ㄱ자 형태의 조선식 7칸 건물을 개수하여 사무실로 활용하였으며, 재래 감방을 수선하여 이전하고, 간수힐소(看守詰所) 등으로 사용할 건물 한 동을 더 신축하였다. 수선된 감방에는 총 4실이 있었다. [도판33]은 이후 추가로 신축된 감방의 설계도이다. 추가된 감방은 총 6실이 있는 건물로 중복도식으로 계획되었다.

*전주형무소 군산지소
광주감옥 군산분감은 1910년(明治 43) 6월 통감부령 제24호에 의해 개설되어, 7월 1일 군산경찰서로부터 수인(囚人) 11명과 건물을 인계받았으며, 1년 뒤인 1911년 4월 개축 공사가 이루어졌다. 당시 사무실, 감방 3동, 취사장, 공장 등이 있었다. 1920년 10월 전주분감이 본감으로 승격되면서 전주감옥 군산분감으로 개칭되었으며, 이후 지속적인 재감자의 증가로 1918년부터 확장공사에 착수하여 부지를 넓히고 담장을 벽돌담으로 개축하였으며, 내부의 건물에 대해서도 이축, 수선, 신축 등의 공사가 시행되었다. 1923년 5월에는 전주형무소 군산지소로 개칭되었다.

1910년 개설 당시와, 1911년 개축 및 이전 시기의 군산분감의 모습을 [도판34]를 통해 볼 수 있다. 도면에 포함된 ‘현재건물배치도’를 보면, 십자형 도로의 한편에 당시의 군산분감이 있었는데, ㄱ자형 건물 1동과 부속 건물 4동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건너편에는 우편국이 있었다. 건물의 대부분은 재활용하여 이축하였으며, 사무소와 취사장 등은 신축되었다. 이축된 부지는 정방형으로, 전면에 사무실과 창고가 배치되었고, 후면에 감방 3동과 공장, 취사장이 배치되었다. 신축된 사무소는 [도판35]에서 확인된다. 누름대 비늘판벽으로 마감된 간소한 목조 단층 건물로, 내부에 사무실, 응접실, 의무실, 진단소, 휴게소, 숙직실 등이 계획되었다. 이후, [도판36]에서처럼 부지를 서쪽으로 일부 확장하면서, 공장을 철거하고 새롭게 공장을 신설하였으며, 공장이 철거된 공간을 활용하여 두 감방을 각각 2배 정도로 증축하였다.

이후, 1918년부터 대규모 확장 계획이 시작되었다. 1918년의 [도판37]은 부지 정비 공사를 위한 도면으로 기존 영역을 3배 가까이 확장할 계획이었음을 볼 수 있다. 우선 1919년에 담장을 벽돌담으로 정비하였는데, 이를 위한 계획이 1918년 6월에 작성된 [도판38]이다. [도판39]는 1918년 11월에 작성된 도면으로 부지의 가장 안쪽인 북쪽에 공장 2동을 더 신축할 계획을 보여주고 있다. 공장 앞쪽으로는 중앙간수소와 감방 3동을 T자형으로 배치할 계획 -‘예정(豫定)’이라 표기- 이 있었음 또한 확인할 수 있다.

1920년 10월 전주감옥의 신설로 전주감옥 군산분감으로 개편되는 와중에도 공사는 꾸준히 진행되었는데, 1921년에 작성된 [도판40]을 보면, 1919년에 신축된 공장 2동에 이어서 1920년에 감방 2동, 창고, 취사장이 신축되었으며, 1921년에는 중앙간수소와 청사를 신축하고, 재래의 사무소, 감방 2동, 창고, 공장을 각각 수선하여 이전할 계획을 세웠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재래 공장은 부지 서쪽으로 이전되었으며, 재래의 감방 2동은 수선하여 하나는 창고로, 나머지는 구치감으로 이전하였다. 사무소 역시 수선하여 구치감의 창고로 계획하였다. 이렇게 1919년부터 3년의 공사를 통하여, 군산분감의 모습은 완전히 새롭게 변하였는데, 이를 1922년의 [도판4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문 안쪽에 청사가 배치되었으며, 청사의 우측에 구치감이 위치하였다. 청사의 후면에서 중앙간수소로 연결되며, 중앙간수소에는 2동의 감방이 연결되었다. 부지의 외곽에는 공장 3동과 창고, 취사장이 위치하였다.

1921년 신축된 청사의 계획도가 [도판42]이다. 청사는 조적조 단층 건물로, 중앙 현관 상부에 박공이 설치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좌우대칭으로 계획되었다. 현관에서 연결되는 十자형 복도를 중심으로 전면에는 사무실과 분감장실(分監長室)이 있었고, 후면에는 접견실, 휴게실, 회의실이 있었다. 좌측 일부는 별도로 구획하여, 세면소, 욕실, 탕비소 등의 공간을 일괄로 배치하였다.
1923년 5월 군산형무지소로 개칭된 이후, 초기에 중앙간수소를 중심으로 T자형으로 계획했던 마지막 한 동의 감방이 신축되었다.([도판43] 참조) 그리고, 1935년에는 다시 부지가 서쪽으로 확장되었으며, 확장된 공간에는 공장이 추가로 신축되었다.([도판44] 참조)

*부산형무소 마산지소
부산감옥 마산분감 역시 1910년(明治 43) 6월 통감부령 제24호에 의해 개설되어, 마산경찰서의 유치장을 빌려 감방으로 사용하다가, 1913년(大正 2)에 부지를 마련하여 신축 이전하였다. 청사, 중앙간수소, 감방 2동, 공장, 구치감, 여감 등이 있었으며, 구내 면적은 2,000여 평이었다. 1920년 3월에 부지를 확장하여 증축 공사를 시행하였으며, 1922년부터 부산 및 진주 감옥의 여자수형자를 수용하였다. 1923년 5월 부산형무소 마산지소로 개칭하였으며, 1937년부터는 전국형무소의 불구 및 노쇠 수형자를 수용하였다.

1910년 개청 당시 마산분감의 모습은 [도판45]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재래 조선식 가옥 3동을 임시로 수선하여 사용하였는데, 하나는 사무실로, 하나는 6실이 있는 감방으로, 나머지 하나는 취사장 및 창고로 사용하였다. 사무실은 一자 5칸 건물로 전퇴가 있는 가옥이었다. 1913년 이전한 분감의 배치도가 [도판46]으로, 장방형의 부지의 서쪽으로 전면으로 하여 청사를 배치하고, 후면에 감방 2동과 공장 2동, 취사장을 배치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도면에는 그려져 있지 않지만, 이후의 도면을 참조할 때, 청사의 좌우에는 여감과 구치감이 배치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도판51] 참조)

이후, 1918년부터 대대적인 확장 및 증축 공사가 계획되어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도판47]은 1918년의 도면으로 기존 감방을 증축하기 위한 도면이다. 1919년 12월에 작성된 [도판48]은 증축된 감방 북쪽의 소형 공장을 중앙간수소로 수선하고, 서쪽 방향으로 감방 하나를 더 신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동월에 작성된 [도판49]에서는 북, 남, 서쪽으로 부지를 확장하고, 확장된 북쪽의 부지에 공장을 신축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부지의 확장은 실제로 1920년에 시행되었으며, 공장의 신축 또한 1920년에 시행되었을 것이다.([도판50] 참조) 1923년 마산형무지소로 개칭된 이후에도 감옥은 꾸준히 신축 또는 개축되었다. 1925년의 [도판51]을 보면, 1925년 당시 청사를 증축하고, 여감힐소(女監詰所) 등을 신축하는 계획이 기재되어 있다.

*평양형무소 진남포지소
평양감옥 진남포분감은 1910년 10월 설치가 공포되어, 1912년 4월부터 12월(大正 元)에 걸쳐 목조 단층 기와집(木造平家瓦葺)의 청사, 감방 등을 신축하였다. 1920년(大正 9)에 확장 공사가 시행되어 부지가 확장되고 감방, 공장의 증축이 이루어졌으며, 총 구내면적은 1,385평80작에 달하게 되었다. 당시 구내에는 청사, 창고 2동, 인민공소, 의무실, 교무계 및 형호계 사무실, 간수휴게소, 취사장, 감방 4동, 공장 5동 등이 있었다. 1923년 5월 평양형무소 진남포지소로 개칭되었다.

현재 국가기록원에는 1920년경 부지를 확장할 당시의 도면만이 소장되어 있어, 그 이전의 상황이나 1923년 진남포지소로의 개칭 이후의 상황은 알 수가 없다. 1920년의 [도판52]는 부지를 확장할 당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지는 동남에서 서북으로 긴 장방형이었으며, 동남쪽에 진입도로와 정문을 신설하고, 그 안쪽에 청사를 신축하였다. 청사 후면으로 병감(病監)과 취사장이 있었으며, 그 뒤쪽의 미결감(未決監) 즉 구치감은 이전할 예정임이 기재되어 있다. 그 후면에 공장과 감방이 있었으며, 가장 뒤쪽의 공지에는 공장을 더 증축할 예정임이 흐릿하게 기재되어 있다. 이후 구치감이 약간 서쪽으로 자리를 옮겨 이전 개축되었으며, 공장이 앞쪽으로 증축되었다.([도판53] 참조) 개축된 구치감은 [도판54]에서 볼 수 있는데, 세로목판을 거칠게 붙인 아주 간이한 재래의 건물을 수선한 것이며, 기초를 높여 쌓아 전체적인 건물의 높이를 높이고, 입면도 영국식 비늘판벽으로 다시 마감하였다. [도판55]에는 구치감의 이전과 공장 증축 이후, 부지 후면에 감방 한 동과 공장 한 동을 더 증설하는 계획이 그려져 있다. 또한, 공장 하나를 더 건설할 것을 예정하고 있다. 이후로도 감방과 공장은 더 신축된 것으로 보이나, 관련 도면이 남아 있지 않아 그 상세는 살피기 힘들다.
[도판56]은 1920년 당시 신축된 청사의 설계도이다. 청사는 목조 단층 건물이었으며, 전면 36척의 본채에 좌우로 각각 25척, 30척의 채가 붙어 있는 형상으로 계획되었다. 입면에 특별한 장식이 부가되지는 않았으며, 벽체는 영국식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었다.

*대구형무소 안동지소
대구감옥 안동분감은 1919년 경 재감자의 급증에 대처하기 위한 일환으로 1921년 3월 총독부령 제41호에 의해 설치되어 동년 7월 11일 개소하였다. 1923년 5월 대구형무소 안동지소로 개칭되었으며, 1943년에는 김천소년형무소 안동지소로 소속이 바뀌었다.

1919년경 안동분감의 신설이 준비될 당시의 부지 공사도가 [도판57]이다. 부지는 서쪽을 전면으로 정방형에 가깝게 준비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부지는 약 3배 크기로 확장되었으며, [도판58]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분감 내부의 배치는 [도판59]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921년 경에 감방과 공장 2동, 취사장을 신축하기 위해 작성된 도면이다. 서쪽의 정문 가까이에 남향으로 배치된 청사가 있으며, 청사의 남쪽으로 여감(女監)과 구치감(拘置監)이 별도의 구획으로 위치하였다. 청사의 동쪽으로 창고 2동과 취사장을 격하고, 중앙간수소에서 3동의 감방이 방사형으로 배치되었으며, 부지의 가장 안쪽에는 공장 2동이 계획되었다. 안동분감의 청사가 정문과 축을 같이 하지 않고, 남향으로 입지한 것은 다른 감옥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계획이라 할 수 있다. 이는 1922년 3월에 작성된 [도판60]에서도 확인되며, 이 도면은 주요 건물의 신축이 끝난 이후, 세면욕실, 소방기구치장(消防器具置場), 소독실 등의 부속건물을 신축하기 위한 도면이다.

[도판61]은 신축된 청사의 설계도이다. 청사는 목조 단층 건물로, 입면은 단순하게 영국식 비늘판벽으로 마감되었다. 건물은 크게 3등분으로 계획되었고, 사무실이 위치한 중앙부가 전면으로 돌출되어, 중앙에 현관과 포치가 계획되었다. [도판62]는 감방의 설계도이다. 역시 단층 목조 건물로 계획된 감방은 중앙 복도의 좌우로 각 개실이 배치되었고, 상부에는 일정 간격으로 채광창이 배치되었다.
이후, 1934년부터 1936년 사이에 담장과 감시탑을 철근콘크리트조로 신축하고, 정문은 벽돌조로 신축하는 공사가 시행되었다. 1936년의 [도판63]은 당시 벽돌조로 신축된 정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정문 옆의 문위소의 상부 바닥판은 철근콘크리트로 계획되었음을 볼 수 있다.

*해주형무소 서흥지소
해주감옥 서흥분감은 1921년(大正 10) 3월 총독부령 제41호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동년 8월 기공하여 1922년(大正 11) 5월 11일 개청식을 거행하였다. 구내 면적은 2,983여 평이었다. 이후, 1923년 5월 해주형무소 서흥지소로 개칭되었으며, 1943년 3월 개성소년형무소 서흥지소로 변경되었다.

신축된 서흥분감의 배치를 [도판64]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장방형의 부지 전면에 정문과 청사가 배치되었으며, 청사의 좌우로 여감(女監)과 구치감(拘置監)이 별도의 구획으로 배치되었다. 청사의 후면은 중앙간수소로 이어지며, 방사형으로 감방 2동이 위치하였다. 감방의 후면으로는 공장이 연결되었으며, 중앙간수소의 좌측으로는 감방 1동을 더 증설할 계획이 있었음이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중앙간수소의 우측에는 취사장과 창고가 위치하였다. 당시 신축된 청사의 계획도가 [도판65][도판66]이다. 청사는 목조 단층 건물로 계획되었으며, 내부에는 十자형의 복도를 중심으로 전면에는 회의실, 응접실, 숙직실, 사무실, 차인실(差人室), 일반인대기실(人民控室)이 배치되었고, 후면에는 탕비소(湯沸所), 감정실(監丁室), 휴게실, 교무실, 의무실, 조사실(調所), 접견실이 배치되었다. 이외에 세면실, 욕실, 변소 등은 별도의 부속채로 덧붙여졌다. 청사의 입면은 좌우대칭으로 계획되었으며, 중앙 현관의 상부는 벽돌조의 아치 장식과 작은 박공을 두어 중심성을 강조하였다. 벽면은 모르타르반죽으로 평활하게 마무리하였다. 단면도인 [도판66]을 보면, 지붕 구조는 서양식 트러스 구조보다는 일본 전통의 하네기(桔木)와 비슷한 부재로 들보를 구성하고, 아래쪽으로 천정판을 매달고, 위쪽으로 지붕틀을 형성하는 방식으로 계획되었음을 볼 수 있는데, 1920년대를 전후하여 지어진 건물임을 감안하면 매우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함흥형무소 강릉지소
함흥감옥 강릉분감은 1921년(大正 10) 3월 총독부령 제41호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1922년 신축공사가 종결되어 7월 1일 개청하였다가, 1923년 5월 함흥형무소 강릉지소로 개칭되었다. 1924년 12월 15일 폐지되었다.강릉분감 및 지소에 관련한 도면은 현재 총 10매 밖에 남아 있지 않아, 그 건물의 구체적인 모습은 알기 어려우나, 배치도를 통해서 대략적인 현황을 확인할 수 있다. [도판67]은 1922년 개청 전의 배치를 보여준다. 각 면 36間(약 65m)의 정방형 부지의 전면에 사무실과 창고를 배치하였으며, 그 후면으로 중앙간수소의 두 면에 직교하여 연결된 감방 2동과 취사장이 배치되었고, 가장 후면에는 공장이 위치하였다. 도면의 명칭은 ‘강릉감옥출장소신축배치도’로 강릉분감이 설치되기 이전에 감옥출장소로 설계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배치의 형태는 1920년에 설계된 제주도감옥출장소와 동일하여, 이 시기에 표준화된 설계를 각지에 적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강릉분감(지소)는 2년 5개월 남짓 운영되다가 바로 폐지되었고, 각 건물은 다른 형무소로 옮겨 재활용하였는데, 구체적인 정황을 [도판68]에서 볼 수 있다. 감방 한 동과 창고는 원산지소로 이축하였으며, 중앙간수소와 회랑은 자재로 원산지소로 운반하였다. 나머지 감방과 공장은 함흥형무소로 이축하였으며, 사무실과, 취사장, 소형 창고는 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함흥형무소로 운반하였다.

*목포형무소 제주지소
목포감옥 제주분감은 1921년(大正 10) 3월 총독부령 제41호에 의해 설치되었으며, 1922년 7월 개청식이 거행되었다. 구내 면적은 1,680 평이었으며, 내부에는 청사, 형호계사무실, 감방 2동, 취사장, 여감 등이 있었다. 이후 1923년 5월 목포형무소 제주지소로 개칭되었다가 1924년 12월 15일 폐지되었다.

제주분감 및 지소에 관련한 도면은 모두 19매가 소장되어 있으며, 이중 15매는 제주분감 시기의 공사에 관련된 도면이고, 4매는 제주지소의 폐소 이후, 각 건물을 이축하기 위한 도면이다.
몇 장의 배치도를 통해 대략적인 운영 현황을 살펴볼 수 있다. [도판69]는 1920년 3월에 작성된 ‘제주도감옥출장소부지설계평면도’이다. 도면의 명칭에서 볼 때, 제주분감의 설치가 공포되기 1년 전에 이미 제주도에 감옥출장소를 설치하려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남쪽의 도로에 접속하여 신설 도로를 내고 정방형으로 부지를 계획하였다. 내부의 상세한 배치는 [도판70]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면에 사무소와 창고를 배치하고, 별도로 구획된 여감과 공장을 배치하였으며, 후면으로 중앙간수소와 감방, 취사장, 공장을 배치하였다. 이러한 배치 형태는 동 시기 설계된 강릉의 분감(감옥출장소)과 동일하여, 표준화된 설계가 사용되었음을 알려준다.
[도판71]은 제주지소의 폐소 이후, 건물을 다른 지방의 형무소로 이전하기 위해 계획한 도면이다. 공장은 광주형무소로, 감방 2동과 중앙간수소는 목포형무소로, 여감과 청사의 부속채도 다른 관청으로 이축할 계획이 기재되어 있다.

[참고도판]
  • 도판1. 진주감옥서모양체수선급부속물증축공사지도/4, 1907-08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 진주감옥청사기타수선공사평면도/3, 1908-09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 진주분감부지토공공사설계평면도/11, 1913-14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 진주분감확장지균공사평면도/25, 1919상세보기
  • 도판5. 부산감옥진주분감감방이축공사설계도/22, 1915상세보기
  • 도판6. 진주분감감방신축공사배치도/27, 1920상세보기
  • 도판7. 진주분감변소증축기타공사설계도/2, 1922상세보기
  • 도판8. 진주분감청사증축모양체공사설계도/1, 1922상세보기
  • 도판9. 부산형무소진주지소표문기타신축배치도/표문배치도/3, 1928상세보기
  • 도판10. 함흥형무소원산지소(원강릉지소분)/도랑하이축기타설계도/2, 1925상세보기
  • 도판11. 원산지소표문기타신축공사배치도/표문기타배치도/4, 1927상세보기
  • 도판12. 청주분감기타신축공사준공도/6, 1910년대 초반상세보기
  • 도판13. 청주분감증축모양체공사배치도/21, 1911-18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4. 청주분감여감신축공사설계도/12, 1911-18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5. 청주분감감방증축공사상세도/3, 1919상세보기
  • 도판16. 청주분감확장지균공사평면도/횡단면/7, 1920상세보기
  • 도판17. 청주분감감방증축배치도/1, 1920-2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8. 청주분감중앙감시소배치도/13, 1920-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19. 청주분감배치도/14, 1921-2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0. 청주분감청사이전모양체급증축기타설계도/5, 1921-2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1. 공주형무소청주지소배치도 / 4, 1923-38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2. 청주형무지소취장급욕실신축설계도/기1/2, 1923-38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3. 대전형무소청주지소독거감방증축공사설계도, 1938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4. 춘천분감신축공사설계도/1, 190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5. 춘천분감신축공사설계도/3, 190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6. 춘천감옥감방증축/7, 190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7. 춘천분감창고기타설계도/12, 1923상세보기
  • 도판28. 춘천분감공장이축설계도/9, 1921-2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29. 춘천분감청사신축설계도/1, 192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0. 춘천분감감방신축공사설계도/4, 192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1. 서대문형무소춘천지소공장신축공사배치도/1/공장배치도, 1928상세보기
  • 도판32. 인천분감증축급모양체지도/7, 190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3. 인천분감신축공사설계도, 1909-1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4. 광주감옥서군산분감이축공사설계도/5, 1910-1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5. 군산분감사무소신축공사설계도/1, 1910-1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6. 군간분감증축배치도 / 10, 1912-17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37. 군산분감부지지균평면도/11, 1918상세보기
  • 도판38. 군산분감연와병신설설계도/12, 1919상세보기
  • 도판39. 군산분감공장신축배치도/13, 1919상세보기
  • 도판40. 군산분감배치도/12, 192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1. 군산분감내병배치도/14, 1922상세보기
  • 도판42. 군산감옥청사신축설계도 / 1, 1922상세보기
  • 도판43. 전주형무소/군산지소감방기타이축공사설계도/15, 1923-34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4. 전주형무소군산지소공장신축기타공사설계도/배치급연와병상세도/1, 1935상세보기
  • 도판45. 마산분감가건물수선급이축모양체공사상세도/1, 1910-1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6. 마산분감신축공사배치도/4, 1912-13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47. 마산분감감방급도랑하증축설계도/9, 1918상세보기
  • 도판48. 마산분감감방신축기타공사설계도/13, 1919상세보기
  • 도판49. 마산분감판병취확급공장신축설계도/14, 1919상세보기
  • 도판50. 마산분감확장지균공사평면도/17, 1920상세보기
  • 도판51. 마산형무지소청사증축급기타공사배치도/2, 192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2. 진남포분감배치도/8, 192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3. 진남포분감증축급이축공사건물배치도/12, 192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4. 구치감이축설계도/16, 192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5. 진남포분감감방신축급판병취확기타설계배치도/18, 1920상세보기
  • 도판56. 진남포분감청사신축설계도/기1/6, 192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7. 안동감옥분감부지토공공사설계평면도/1, 1919-20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8. 안동분감부지확장지균설계도/4, 1920-2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59. 안동분감신축공사배치도/6, 192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0. 안동분감세면욕실기타증축공사배치도/7, 1922상세보기
  • 도판61. 안동분감청사신축설계도/1, 1920-2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2. 안동분감감방신축설계도/6, 192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3. 안동형무지소외위표문신축기타공사설계도/5, 1936상세보기
  • 도판64. 서흥분감배치도/1, 192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5. 서흥분감사무소신축공사설계지도/2, 192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6. 서흥분감사무소신축공사설계지도/3, 1921-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7. 강릉감옥출장소신축배치도 / 4, 1920-22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8. 함흥형무소 / 원강릉지소 / 배치도, 1925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69. 제주도감옥출장소부지설계평면도/7, 1920상세보기
  • 도판70. 제주도출장소배치도, 1920-21년 추정상세보기
  • 도판71. 목포형무소원제주지소분/이축건물기타배치도/1, 1925년 추정상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