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특별한 소수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학생, 교사, 주부, 여공, 행상 심지어 기생까지 각계각층의 평범한 여성들이었다.
식민지 치하에서 여성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계몽운동과 군자금 모집 등 독립운동의 지원활동을 펼쳤다.
또한 직접 총칼을 들고 일제에 맞서 싸우는 무장운동을 전개하는 등 독립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한국 최초 조선부인회를 조직하고, 근우회 중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였으며 여성 실업장려회와 조선교육학교를 설립하여 청소년 교육에도 헌신하였다.- 독립기념관 소장
2·8 독립선언에 참여하였으며,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과 상해 임시정부에서 황해도 대의원으로 활약하였다. 이후 미국에서 유학 중인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근화회」를 조직하는 등 여성독립운동에 앞장 섰다.- 독립기념관 소장
중국 운남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하여 중국 공군에서 10년간 한국 최초의 여류비 행사로 복무하였다. 평양청년회 여자전도대장으로 비밀공작을 전개하였고 1943년 한국애국부인회를 재조직 하여 여성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권기옥과 동료들 (가운데)- 독립기념관 소장
식민지 농촌 수탈에 저항해 농촌계몽운동을 펼쳤으며, 특히 마을교육사업, 농가부업, 환경개선, 저축장려 등의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였다. 협성신학교 시절 최용신과 친구들 (앞줄 오른쪽) 1929- 독립기념관 소장
정신여학교 졸업 당시 김순애
1909- 독립기념관 소장
김순애와 김규식 (독립운동가)의
결혼사진 1919- 독립기념관 소장
상해에서 국내를 오가며 독립자금 모금 활동을 펼쳤으며 한국부인회 재건 등 임시정부와 독립운동가를 지원해 ‘임시정부의 어머니’로 불렸다.정정화와 아들 자동- 독립기념관 소장
3·1운동 직후 임시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국민대회 소집에 참여하였고 애국부인회를 결성하여 군자금을 모집,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기념관 소장
유관순- 독립기념관 소장
이화학당 시절 유관순과 친구들(뒷줄 맨 오른쪽)- 독립기념관 소장
「근우회」 중앙집행 위원으로 활동하다 중국 북경으로 망명하여 의열단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또한 민족혁명당 남경조선부녀회를 결성하고 조선의용대 부녀복무단장으로 활동하는 등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다.- 독립기념관 소장
조선혁명군, 민족혁명당, 중국 남경의 대한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다. 1940년 9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창립 당시 지복영, 조순옥 등과 함께 참여하여 무장투쟁을 펼쳤다.
3·1만세운동 직후 만주의 서로군정서에 입단하여 항일무장운동을 시작하였다. 1925년 조선총독 암살 기도와 1933년 만주 주재 일본대사 암살 기도 등 무장투쟁과 군자금 조달 등에 큰 공을 세웠다.- 독립기념관 소장
조선총독 암살과 적기관 파괴 등을 위해 결성된 혁신단 단원 이창규와 이혜수- 독립기념관 소장
중국 중경에서 서안으로 이동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따라 이동하는 여성 광복군 (왼쪽부터 조순옥, 오광심, 지복영)- 독립기념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