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과와 과제 > 월드컵과 한국 사회 > 교민들의 자부심

교민들의 자부심

우리 속에 내재돼 있던 역동성이 분출된 빅뱅이자, 개방 사회로의 진입이었다고 평가된 이번 2002 FIFA 월드컵™은 한국의 560만 해외 교민들에게도 역시 가슴 벅찬 잔치였다.

대회 초반 한국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보도 태도를 보였던 외국의 언론들이 새로운 한국의 모습에 대한 재평가를 시작했고, 연일 이어지는 승전보에 교민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민 1세대들은 조국의 자랑스러운 변화에 눈물을 흘렸고, 민족적 정체성을 모르던 2, 3세대들은 ‘대~한민국’을 연호하며 또 다른 곳에서의 거리 응원전을 펼쳤다.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재외동포 월드컵 후원회구성(1999), DA0141281

2002년월드컵축구대회조직위원회,
재외동포 월드컵 후원회구성(1999),
DA0141281

한국에 대한 사전 정보가 없었거나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현지인들은 이번 2002 FIFA 월드컵™을 통해서 세계적인 대회를 치를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한국과 선진 시민으로서의 질서 의식과 열정을 지닌 한국인들의 진면목을 확인하게 되었고, 그런 인식의 변화를 가장 빨리 접하게 된 것은 바로 교민들이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인들이 세계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면, 세계 속에서 어렵게 버텨내고 있던 교민들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만끽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국에 대한 견인차로 인해 교민 사회에서 빚어진 세대 간의 갈등의 골 역시 이번 대회가 치유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공동 개최국이자 가장 많은 한국 교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일본의 국민들에게 이번 월드컵은 한국을 새롭게 인식할 계기를 제공하였다.

준준결승전 진출에 실패한 후 한국의 준결승전 진출을 지켜본 일본인들에게 김치와 비빔밥에 머물고 있던 한국의 이미지는 그 외연이 확장된 것이다.

한편 미국의 주요 신문과 방송들은 월드컵 개막이래 한 달 내내 ‘South Korea’ 와 ‘Red Devils’이란 단어를 빠지지 않고 보도하였다. 한국팀과 같은 예선 D조에 속했던 미국이 포르투갈을 이긴 한국 때문에 16강에 진출하게 되자 언론들은 “한국은 미국의 영원한 가장 좋은 동맹” 이라며 고마움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의 한국 열풍은 거셌다. 베트남과 태국을 비롯해 전통적으로 축구 열기가 뜨거운 국가에서는 “한국이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워줬다.”며 연일 한국팀의 선전을 대서특필하였고, 그 곳에 거주하는 교민들과 상사 주재원들은 한층 격상된 한국에 대한 위상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달라진 한국의 위상을 더 깊이 실감한 것은 유럽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이었다. 유럽에서 축구는 단순히 하나의 스포츠 종목에 머물지 않는다. 그들에게 축구는 생활의 일부에 속하는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점에서 잘 알지 못했던 아시아의 작은 나라 한국이 FIFA 월드컵을 개최하고, 유럽의 강호들을 물리치며 준결승전에 오르자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며 열광하였다. 특히 한국 교민들의 열정적이면서 절도 있는 응원 태도에 대해 유럽의 축구팬들도 배워야 할 문화라고 지적하였다.

그러한 유럽인들의 인식의 변화는 교민들에 대한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태도로 연결되었다.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나라인 한국을 축구라는 매개체로 새삼 알게 된 유럽인들은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한국인들에게 친밀감을 표시하기를 꺼리지 않았고, 교민들은 그들과의 동질감을 느끼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민족성과 문화를 달리 하는 이국에서 그들과의 동질성을 모색하기 위해 노력하던 해외 동포들에게 이번 2002 FIFA 월드컵™은 일차적으로는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준 대회였다. 또한 조국을 바라보던 이민 세대들 간의 시각차를 좁혀주면서 동시에 현지인들과 어깨를 견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안겨준 귀중한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