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4289년은 힘찬 도약의 해였습니다. Err_Code(15) 모든 면에서 그 후 재건되어 나온 모습은 잘못 전환한 바가 있었으며 전국방방곡곡에서는 우렁찬 재건노래가 하늘높이 울려 나왔습니다.
호전되는 전기사정
이해에 들어서 전기를 개발한 나라에서 당인리, 마산, 삼청 등지에서 화력발전소를 확장되는 공사를 하는 한편 각지의 수력발전소가 가동되어 드디어 대망의 주야 24시간 정전이 실현되어 서울거리에는 가로등까지 등장했습니다.
대망의 영암선 개통
또한 중요한 3대 산업선인 영암선, 영월선, 강원선이 드디어 완성 또는 실현 되었습니다. 영암선의 완전 개통으로 말미암아 많은 도로의 산책길이 뚫리어서 태백산맥 일대의 지하자원을 개발하여 중앙으로 쉽게 수송할 수 있게 되었으며 또한 이 지역의 산업 문화 경제의 발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동부전선에 폭설
50년 만에 처음 보는 폭설이 왔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동부전선에서는 모든 시설이 눈에 뒤 덮여 교통과 통신이 두절되고 주택이 붕괴되는 불의의 참상을 연출했습니다. 그러나 재빠른 방법의 활약으로 Err_Code(1:48~1:51)
델레스 장관 내방
한편 정치 외교 면에 있어서는 8월17일 미국 국무장관 델레스씨가 내한하여 국내외 활동에 있어서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 주었습니다. 델레스 장관은 대통령 각하를 비롯해서 한국 정계요원들과 회담을 가졌으며 한국 정부에서는 외교, 군사, 경제 등 3개부분에 걸친 작성을 델레스 장관에게 제출했습니다. 이해는 또한 정 부통령 공영 선거의 해였습니다. 일찍이 대통령 이이승만박사께서는 이번에는 나가지 않겠다는 중대한 의사를 표명했었으나 전국방방곡곡에서 몰려오는 민의를 수락하시어서 입후보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통령에는 이승만 박사, 부통령에는 장면 박사를 비롯한 6명의입후보자가 나선 가운데 치열한 선거전이 벌어진 끝에 5월15일 역사적인 선거가 시행되었습니다. 그 결과 제 3대 대통령에는 자유당의 이승만 박사, 제4대 부통령에는 장면 박사가 각각 당선되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과 함께 그 취임식이 성대히 거행되었습니다. 이날 우리 대통령각하께서는 취임사 가운데서 4개년 계획을 발표하셨습니다. 광장에서 취임식이 끝나자 다시금 잔치가 베풀어 졌으며 세종로에서는 군경 합동으로 서열식이 거행되고 발전해 가는 민주 한국의 위력을 다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신임 미 대사 부임
Err_Code(4:8~4:14) 주한 미국 대사를 다우링씨가 신임하고 7월14일 경무대에서 우리 이대통령각하께서 신임장을 수여했습니다. 이날 우리 이 대통령 각하께서는 주한 다우링 대사를 진심으로 환영하시고 우의가 깃들어 있는 한미 양국의 유대를 강조하셨습니다.
스포츠의 개가
올해는 올림픽대회의 참가를 앞두고 동남아시아 각국에 순회중이든 미국 올림픽 축구단이 내한해 서울 운동장에서 우리 한국팀과 친선 축구시합을 개최했습니다. 이날 양국팀은 이 대통령 각하를 비롯한 내외 귀빈들이 관람하는 가운데 우리 한국팀은 결말 3분을 앞두고 1대 0으로 대가를 올렸습니다. 제16회 올림픽 대회가 멜브린에서 열리게 되자 우리나라도 이에 참가하게 되어 50여명의 선수단원들이 11월1일 경무대를 방문하여 이대통령 각하로부터 국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전달식을 가졌습니다.
반공의 횃불드는 아세아의 청년들
아시아에서도 반공결의 영도자인 우리 한국은 이어서 또 다른 커다란 업적을 남기시었습니다. 한국은 아시아의 반공 운동을 참관하고 반공 투쟁에 있어서 아시아청소년의 단결을 확인하기위해 제 1회 아시아 반공 청년학생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이 대회는 10월 15일 Err_Code(6:9~6:15) 중국, 베트남, 홍콩 등 각국 대표가 3일간에 걸친 이번 대회에서는 아시아 청년학생들의 반공 유대를 강화하는 국제적인 결의를 다했습니다.
우리에게도 국제연합 가입을
유엔에 의해서 창설되고 유엔에 의해서 통일된 대한민국 아직도 유엔에 가입하지 못한데 대한 한국군인의 소망은 6.25를 비롯해서 더 한층 고조 되었으며 유엔 대회가 앞으로 다가오면서 한국의 각지에서는 한국을 유엔에 가입시키라는 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우리 민족의 하나의 거국적인 민족운동으로 변해서 유엔가입 전국궐기 대회가 창설되고 거기에서 우리의 굳은 결의가 낭독되었습니다. 그 열망은 고조되어 그 하나로서 서명운동이 전개되었습니다. 거리에서, 마을에서, 강단에서, 학교에서 거리는 삽시간에 참가자가 서명하였습니다.
자유를 위한 헝가리의 투쟁
공산치하에 시달리던 헝가리 시민들은 이곳 11월 23일 새벽 반소 반공의 기틀을 약진으로 무자비 몰살하는 무력 앞에도 지치지 않고 피로 물든 헝가리 시민들의 대대적인 투쟁은 공산 독재에 머지않은 멸망을 예견해 주었습니다.
한미유대는 더욱 굳어지고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굳어만 가는 한국과 미국의 우의는 이해가 저물어 가는 12월28일 또 하나의 이정표를 이루었습니다. 한미사회조약이 내무부장관결의와 다우링 미국대사의 서명으로 표결된 것입니다. 이로서 단기 4287년도 대한민국의 화려한 발전을 두고 저물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