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이 번영할 수 있고 우리의 체제가 북한보다 우위에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근대화가 필요하다는 지도자의 이념에 따라 우리는 지난 15년 하나가 되어 건설에 힘써왔다.



그 결과 우리의 전자제품이 국제시장에서 판을 치게 됐고 섬유공업은 그 규모가 국제수준에 이르고 비료의 자급자족, 연간 1천만 톤의 시멘트 생산, 자동차의 완전 국산화를 눈앞에 두고 있으며 정유공장과 국제규모의 석유화학공장들이 수많이 들어섰고 아산과 남양만의 방조제를 비롯한 농업용수 개발과 4대강 유역 종합개발로 농촌이 근대화되고 전력생산이 해방 당시의 24배로 늘어나 북괴보다 100만 킬로와트나 더 생산하게 되었다.



또한,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산업의 근대화를 촉진시켰다. 거대한 종합제철소를 건설하여 철강공업을 궤도에 올려놓았다. 중화학공업을 이룩하겠다는 지도자의 집념으로 건설된 이 종합제철은 공업입국의 상징이다. 우리의 기술로 철강을 생산하고 우리 손으로 26만 톤짜리 배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광복 30년 그 15년을 우리는 허송했으나 60년대 이후의 15년 우리는 땀 흘려 일했고 그래서 이토록 자랑스럽게 성장한 것이다. 15년 전 불과 3천만 불 정도의 수출이 그 200배가 되는 60억 불이 되고 국민소득은 늘어났다. 그리고 농산품이 고작이던 수출품의 거의가 공산품으로 바뀌었다. 태극무늬의 점보기가 세계를 향해 나래를 폈다. 우리의 원양어선단은 오대양을 누비며 세계의 이름난 어장을 개척해 갔다.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희망봉에 휘날리는 태극기, 잡은 고기는 인근 항구에서 직접 수출된다.



우리의 젊은 기술자들이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 진출해서 정유공장, 비행장, 발전소 등 건설공사에 참여했다. 또한, 남방의 원시림을 개척해 자원을 확보해 왔다. 동남아시아와 중동지역 여러 곳에서 고속도로와 도시건설에 참여했다. 아프가니스탄 등지에 방직공장과 방직기를 모두 우리의 것으로 설치해 주기도 했다. 일찍이 서독에 진출했던 광부, 조선소에서 일하는 젊은 기사들 그리고 우리의 간호원들.



세계 어디를 가나 우리의 핏줄 우리의 상품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어린 천사들이 뛰어난 재질로 세계를 누비고 우리의 젊은이들이 체육 한국을 빛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