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적으로 한국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일본, 2차 세계 대전의 폐허를 딛고 그들은 오늘 경제 대국으로 세계 정상에 우뚝 서있다. 이곳 일본에는 대략 70만의 재일동포들이 살아가고 있다. 악조건 속에서도 꿋꿋하게 오늘을 살아가는 재일 동포들, 그들은 왜 이곳에 왔으며 어떤 모습으로 그들의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이곳은 일본 동경에 있는 한국인 학교. 재일동포 자녀들과 한국으로부터 온 상사 주재원 자녀들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 곳이다. 이곳에 다니고 있는 많은 학생들은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선조들로부터 대를 이어오던 정든 고향땅을 떠나 어떻게 이곳 일본 땅에 정착하게 됐는지 알고 있을까? 1910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의해 강제합병이 되던 해 한반도는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이 되었다. 불행했던 그날의 역사를 기점으로 일본을 왕래할 수 있게 되면서 한국인은 노동자로 유학생으로 그리고 강제 징집되어 일본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1931년 만주사변이 발발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국인들은 일본군국주의의 희생물이 되어 각종 노역과 군사훈련에 강제 동원되었다. 일부 한국인들은 정든 고국을 등진 채 낯선 땅으로 징용과 징병으로 학도병으로 정신대로 남녀를 막론하고 끌려가 일본의 전쟁도구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군수산업을 중심으로 공업에 치중하게 되고 이에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하게 되자 한국인들을 동원하기에 이른다. 그 정책의 이면에는 힘들고 위험한 노동은 일본인 대신 한국인이 하도록 하는 교활한 음모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한국인들은 강제적으로 그리고 거간꾼들에 의해 유인되어 일본으로 건너가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이렇게 일본을 건너간 한국인들은 대개 제철소나 도로공사, 탄광 등 중노동을 요하는 힘들고 고달픈 작업장에서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당해야만 했던 것이다. 1945년 8월 6일 일본의 운명을 바꿀 비행기 한 대가 히로시마 상공에 나타났다. 이 비행기로 인해 2차 세계대전은 그 막을 내리게 되고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광복이 되던 해인 1945년 8월 당시 일본에는 236만5천여 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이들은 1876년 2월 26일 일본에 의해 강제 체결된 강화수호조약 이후 특히 1910년 한일합병 이래 대부분 정치적 강제력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은 광복과 함께 귀국했지만 그러나 60만 명이나 되는 한국인들이 일본에 남아 있게 되었다. 이들은 분단과 광복으로 이어진 조국의 혼미한 상황 탓도 있었지만 일본 내에서의 경제적인 조건 등으로 어쩔 수 없이 귀국하지 못하고 오늘날의 재일동포 사회를 태동시켰다.현재 70만에 이르는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 어느 지방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인구분포도에 나타난 특색은 대부분의 재일한국인들은 대도시에 집중해 살아가고 있으며 특히 오사카 중심의 관서지방에 많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모국과 같은 하늘 및 다른 땅에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재일동포들, 그들의 삶은 이곳 일본 땅에서 어떻게 펼쳐지고 있을까? 일본에 강제로 끌려갔던 한국인들은 해방이 되고 50여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온갖 역경 속에서도 꿋꿋하게 생활해 왔다. 이주 초기 노동이 주류를 이루던 동포들의 직업도 세월이 지나면서 자유업뿐만이 아니라 운전사와 같은 기술직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재일동포들이 운영하고 있는 약국이나 병원들도 볼 수가 있는데 이렇게 전문지식을 요하는 약사나 의사 그리고 교수 같은 전문직들도 많이 늘어가고 있다. 또한 중소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재일동포들도 이제는 많이 볼 수가 있게 됐다. 이와 함께 재일 동포 중에서는 악조건을 딛고 일어서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기업인으로 성공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 대표적인 예가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이다. 21세에 일본에 건너간 그는 신문배달, 우유배달 등 안 해본 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겪은 끝에 오늘날 한일 양국에 우뚝 솟은 롯데 그룹을 일으켰다. 또 일본의 운수업계에서 신화적 인물이 돼버린 MK택시회사의 유봉식회장이 있다. 그는 불과 10대의 택시로 교토에서 택시사업을 시작해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친절하고 깨끗한 택시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곳 오사카는 일본 제2의 도시로서 제철과 섬유공장 및 관련 중소기업들이 가득 들어찬 공업도시다. 이러한 오사카의 발전은 한국인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오사카가 공업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재일교포 초기 이주자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이다. 이곳 오사카에 거주해 살던 재일동포들은 일본인들이 기피하는 갖가지 가내 수공업 분야에 뛰어들었다. 일본사람들조차도 힘들어서 선뜻 하려고 하지 않았던 일들을 재일동포들은 열심히 해냈던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