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에 남태평양에도 한민족은 민들레 홀씨의 그것처럼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세계화 시대의 무역 중에는 사랑과 봉사라는 보이지 않는 물건도 있다. 파푸아뉴기니에 우렌다우 마을에서 한국 외방 선교회의 첫 번째 사제 김동기 신부가 했던 무영 일이 그것이다. 축복받은 낙원이란 뜻의 파푸아뉴기니 그 곳의 곱슬머리 원주민들 사이에는 늘 그가 있었다. 자연 그대로의 삶을 유지하며 격식과 자존심을 가지고 있는 원주민들 속에서 환자를 돌봐주고 기도해주는 그는 귀한 손님 그 이상의 존재였다. 손수 지은 교회에서 사랑과 평화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 열심이었던 김 신부. 그는 순박한 원주민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시간 정성스런 기도를 올린다. 때묻지 않은 사람들의 고통을 끌어안기 위해 파견된 한국의 신부들. 10여년이 넘는 그들의 세월 속에 한국 성인의 이름을 가진 어린 소녀가 한국을 사랑의 나라로 부르며 자라고 있다.백호주의를 고수하던 나라. 호주는 지구촌에서 시선을 끈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대륙으로 이민의 역사 역시 짧은 나라지만 최근 들어 적지 않은 수의 한인이 퍼져나간 그리 낯설지 않은 나라로 다가오고 있다. 70년대 초 월남의 패망으로 일할 곳을 잃은 수백 명의 파월 기술자들은 때마침 실시된 호주의 비자 간소화 정책으로 새로운 삶을 그 곳에서 설계할 수 있게 되었다. 80년대 초반까지는 유학생 등이 눌러앉는 형태의 이민이 절반을 차지했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하게 이민이 증가해 시드니, 멜버른 등에 삼만육천 명이 거주하며 상업과 무역업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그 곳에 위치한 그림 같은 집에는 주변을 가꾸고 돌보며 소박하게 살아가는 호주 사람들이 살고 있다. 그 거리 어느 한편에서 우리 동포들은 언어의 차이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평화로운 공간에서 겪는 초기 이민세대들의 갈등은 그래서 잊기도 쉽지만 그 고요함에 더욱 고향생각에 젖기도 한다. 그 호주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한인작가 한명이 살고 있었다. 호주인의 삶과 사고방식을 누구보다 진솔하게 그려내는 그를 사람들은 사랑한다. 작가 김돈호씨의 작품 세계는 그 폭이 넓고 깊어서 이 곳 현지 비평가의 분석은 그의 작품세계를 다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빈부의 차와 인간의 갈등 그리고 현대사회의 모순을 담담히 그려내는 그의 작품이 나올 때마다 호주인 들은 그를 지켜본다. 문화는 달라도 통하는 것은 있기 마련이다. 인간사에 대한 얘기라면 그것에는 분명 국적을 초월한 공감대가 형성된다. 호주문단에서는 낯설기만 한 한국의 시와 시조 판소리를 소개하며 그는 그렇게 한 사회와 다른 사회의 문화를 지구촌의 한켠에서 서로 만나게 하고 있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호주인들에게 존경받는 선배가 된 김돈호. 정부로부터 받은 3만 달러의 창작료와 대학원 석사 교재로 사용되는 작품을 가진 그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인의 정서가 아닐까?환태평양의 화산섬 뉴질랜드, 인구 350만 명의 이 나라에 그 동안 한국인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1991년 뉴질랜드 정부가 새로운 이민 정책을 시행함에 따라 고학력 젊은 층의 일반 이주가 급증하고 있다. 현재는 7천명을 훨씬 넘는 한인사회를 형성하고 있는데 증가속도가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다.

“현재 우리 뉴질랜드 교민들은 근래에 오신 분들이 뉴질랜드 이민 정책상으로 점수이민이 생겼어요. 그래서 그 점수가 상당히 높은 점순데 30점 이상인데요. 그래서 학력수준이 대단히 높고요. 또 그와 비례해서 지식수준도 높고 그래서 우리 뉴질랜드에서도 지금 한국인에 대한 바라는 느낌, 인상 그런 것들에 대해 상당히 얻고 있습니다.”

“컴퓨터 쪽에 뉴질랜드가 전산이 좀 잘 돼있어요. 한국보다 많이 잘 돼 있거든요. 그러니깐 그 쪽을 좀 더 열심히 공부해가지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한국으로 이렇게 와가지고 이렇게 교류 같은 식으로라도요. 한국에서 한국 사람이니깐 도움이 줄 수 있는 걸 해봤으면 싶어요.”

뉴질랜드 이민자 대부분은 정신적 풍요를 누리고 싶어 이곳에 삶의 둥지를 새로 튼 사람들이다. 아직은 이민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현지에서 탄탄한 뿌리를 내리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서로 도우며 성실과 노력으로 연륜을 쌓아갈 때 밝은 미래가 열리게 될 것이다.

새로운 개발과 발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 그래서 지구촌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는 곳에 우리 한국인이 적지 않은 숫자로 자리하고 있다. 험한 일을 마다않는 한민족의 근성으로 아시아 태평양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 한국인들의 삶과 애환은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월남 패망으로 인해 월남에 파견되었던 상사 주재원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