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전기통신사업은 1898년 궁중통신으로 시도됐으나 현대적 통신은 1902년에 한성과 제물포 즉 서울과 인천 간의 공중통화업무가 시작되면서부터 첫발을 디뎠습니다. 그 후 조국광복과 더불어 한미 간의 국제무선전화가 개통됐고 6.25 한국동란을 치룬 후 전기 통신 사업은 비로소 국민의 편익을 위한 공익사업으로써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2차례에 걸친 경제개발을 실시하면서 통신사업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을 하게 된 것입니다. 사회 신경기관인 이 전기통신은 고도의 경제성장과 함께 더욱 발전 개선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전기통신의 규모 확장으로 시내전화도 크게 늘어났습니다. 1961년 12만 3천 회선이던 시내전화가 1974년 말에는 96만 7천 회선으로 약 8배가 늘어났고 그 가운데 약 75%가 자동화됐습니다. 이제 전화의 다이얼을 따라 전기통신의 발전된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곳은 114번 전화번호 안내대입니다. 현재 전국에 114 안내대에는 총 600여명의 안내양이 안내 업무를 보고 있는데 하루에 약 30만 통의 번호 문의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곳은 동양 정밀 공업 주식회사에 자동교환기 생산 공장입니다. 1953년에 창립된 이 회사는 총 18만 회선의 스트로자 식 자동교환기를 체신부 산하에 설치했고 일반기업체에도 총 2만3천 회선을 설치했습니다. 한편 이 곳 금성통신주식회사에서도 자동교환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서독, 이태리 등 20여 개 국의 수출시장을 확보하고 있는 금성통신은 연간 12만 회선의 EMD 자동 교환기를 생산해서 우리나라 총 시설의 70% 이상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이 EMD 자동교환기는 만5천여 개 부품으로 구성되는 초정밀 구성시설재입니다. 그밖에 EMD형 사설 자동 전화교환기도 생산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미줄같이 많은 시내전화회선을 전주에 시설하면 도시 미관을 해치게 되므로 지하로 시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케이블도 완전 국산화됐고 수출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대한전선주식회사의 전선생산공장입니다. 동을 재료로 생산되는 통신케이블은 먼저 가늘게 선을 만들어 종이를 입히고 여러 가락을 한데 모아 그 굵기를 조정해나갑니다. 연간 만7천 톤의 각종 케이블을 생산하고 있는 이 공장은 스탈페스 케이블 생산 공장으로 유명합니다. 일본을 비롯해서 동남아 일대 및 구주지역까지 약 11개국에 연간 5백만 불 어치의 각종 케이블을 수출해 왔는데 75년에는 천만 불 어치를 수출할 계획입니다. 시외전화는 여러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이곳은 시외전화 교환국의 대시대 시외지명과 번호를 교환양에게 신청하면 교환양은 상대편 교환양을 부르고 다시 상대방 가입자를 대주는 시외 통화 방식이 즉 대시방식입니다. 그리고 시외전화의 수동즉시 방식이 있습니다. 여기는 시외전화 수동즉시대. 즉 반자동교환대입니다. 시외지명과 번호를 교환양에게 신청하면 교환양이 직접 상대방 가입자를 연결시켜주는 시외통화 방식입니다. 시외전화에 유선시설에 이와 같은 반송시설을 설치하면은 실선 1회선으로 12사람이 동시에 통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반송시설도 국산화됐는데 이곳은 금성전기주식회사의 반송장치 생산 공장입니다. 이 반송 장치는 장거리통신시설의 부품으로써 이 공장에서는 나선 반송 장치, 케이블 반송 장치, 동축 반송 장치, 다중 무선 장치 등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시외전화의 최신방식으로 완전 자동방식이 있습니다. 이 방식은 교환을 거치지 않고 다른 도시에 있는 상대방을 직접 부르는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