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동정

전두환 대통령은 금년도 제2회 수출 진흥 확대회의를 주재했습니다. 신기술 집약형 기업체의 육성계획을 보고받은 대통령은 지금은 경제전쟁의 시대인 만큼 선진국의 사양산업 기술 도입만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지적하고 정부, 기업, 각종 연구소 등 모든 기관이 총동원 돼서 선진국의 첨단기술을 도입해야 하며 우리의 힘으로 첨단기술을 개발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파푸아뉴기니의 티머시 봉가 국회의장 일행을 접견했습니다.

아시아 경기단체 총연맹 창설 첫 이사회에 참석한 아시아 각국의 체육지도자들을 접견한 전두환 대통령은 우리는 이념과 정치체제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나라와도 스포츠 교류를 개방하고 적극 추진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방송공사 초청으로 우리나라에 온 헤이그 전 미 국부부장관을 접견하고 이임하는 제임스 존슨 전 주한 미 이사단장에게는 보국훈장 천수장을 수여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제35주년 제헌절을 맞아 김상엽 국무총리가 대신 읽은 경축사를 통해 지금 우리가 당면한 가장 중요한 과제의 하나는 국가의 기본법이며 새 시대의 장전인 헌법을 굳건히 지키고 그 기본정신을 실천해 나가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영부인 이순자 여사와 함께 덕유산 민정당 수련대회에 참석 치사를 통해 우리는 최근 이산가족의 재회현장을 보면서 전쟁의 비극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말하고 어떤 이유로도 전쟁은 막아야 하며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또다시 되풀이돼서는 결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나없이 민족의 지상과제인 통일 대업을 하루빨리 성취하는 일에 정열을 바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휴전 30년

6.25의 총성이 멎은 지 30주년 민족의 비극이 휩쓸고 간 지 한 세대가 흘렀어도 우리 겨레가 염원하는 평화는 아직도 이 땅에 정착되지 못한 채 있습니다. 동족상잔의 처참했던 민족 비극의 역사적 현장 휴전선 천리마는 달리고 싶다. 저 안타까운 통일의 염원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은 오늘에 사는 우리 민족 모두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북한 괴뢰군이 남침을 개시한 지 1년 공산 측은 전세가 그들에게 불리해지자 소련이 돌연 휴전을 제의해서 1951년 7월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시작됐고 판문점으로 회담장소가 옮겨지고 2년간의 절충 끝에 휴전협정이 조인됐습니다.

군사정전위원회가 설치 운영되고 있는 판문점 그동안 419차에 걸친 군사정전회담에서 북한 공산당이 휴전협정을 위반한 7만 5천여 건의 도발만행들이 낱낱이 고발됐습니다. 그들은 조업 중에 있는 민간 어선과 여객기를 납북해서 억류하는 만행을 자행했고 끊임없이 무장공비를 남파해서 수많은 동포들을 살해했습니다. 북한 괴뢰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까지 도끼 살인 만행을 저질렀고 남북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뒷전에서 북한 괴뢰는 남침용 땅굴을 파고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서울에서 개최되는 국제행사들을 시샘하고 있으며 이를 방해하기 위한 책동에 혈안이 되어 있는 북한 괴뢰에 대한 우리 국군의 경계태세는 빈틈이 없습니다. 북한 땅이 바로 손끝에 닿을 듯 가까운 서부전선 휴전선을 지키는 국군장병들은 오늘도 쉬지 않고 훈련을 쌓으며 조국의 평화를 지키고 있습니다.

휴전 30년을 맞는 이 시점에도 북한의 공산집단은 아직도 무력적화 망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온 국민은 잠시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피 맺힌 사연들

-자매들의 상봉-

헤어진 혈육을 찾고야 말겠다는 집념은 지칠 줄을 모릅니다. 쓰라린 민족사의 아픔을 되새기는 충격과 감동도 깊어만 갑니다. (맞아요. 언니예요. 저분이 언니고 제가 동생이에요. 남동생이 지금 집에 있어요. 여러분 맞는답니다.)

부모의 손길을 놓친 채 피난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소녀들이 33년 만에 중년 여인이 되어서 서로 만나는 감격입니다. 240만의 피난민과 10만이 넘는 전쟁고아를 낳게 한 6.25 이산가족 찾기 운동은 공산주의가 저지른 이 엄청난 과오를 6.25의 처절했던 참상을 상기하게 합니다.

서울과 부산에서 헤어져 살다 천 번째로 만난 자매들입니다. 이들의 입을 통해서 우리는 공산당의 잔학상을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낄 수가 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학살당하는 장면이 기억이 나세요? 네 영천국민학교 1학년 때. 아버님께서 어디 군수이셨어요? 군의 군수로 3년 계시다가 또 영천 군수로 2년 계시다가. 경상북도에요? 네, 그러다가 밤에 자는데 공산당들이 1시나 돼서 집으로 습격을 쳐들어왔어요. 관사로요. 그래서 아버지를 끌고 나가서 그냥 방망이구 뭐 창, 칼이고 뭐 이런 것 갖고 막 그냥 때리고 찌르고 이래가지고 아버지를 죽여가지고 이틀이 돼도 아버지가 안 돌아오셔서 나가보니까 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해가지고 영천 남부교 다리 있는데 거기 밑에다가 피가 강에 흥건하게 고여 가지고 시체가 옆에 하수구에 갖다 막 짓이겨서 넣어놨었어요.)

북한 공산집단은 차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만행을 자행해서 노인과 어린이, 부녀자들을 가리지 않고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이산가족 찾기 운동은 이제 컴퓨터에 의해 더욱 조직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경찰의 컴퓨터에 의해서도 2천 2백여 이산가족이 재회하는 기쁨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텔레비전 기술발전은 국내뿐만 아니라 널리 미국에까지 그 효과가 단번에 확산돼 재미동포들도 고국에 있는 혈육을 33년 만에 만나는 감격적인 순간들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나는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언니가 살아 있었구나! 세상에 난 언니 이름도 모르고 오빠 이름도 몰라.) 북한 공산집단은 우리 온 국민이 생생하게 체험한 이 엄연한 현실마저도 계획적인 모략극이니 영구분열책동 운운하면서 민족의 아픔을 외면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산가족 찾기 운동을 통해 다져지는 이 민족적 공감대를 평화통일의 의지와 역량으로 승화시켜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이미정 양은 도시에서 학교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의 권고로 이 일을 맡아 고향마을 주민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독서와 사색을 즐기는 앵남역의 이미정 양은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철도 이용객들에게는 고마운 역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