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로서 휴전협정이 조인된 지 37돌 휴전선 155마일을 중심으로 남북이 각각 2킬로미터씩의 비무장지대는 인적이 끊긴 채 노루와 다람쥐 등 70여종의 동물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있는가하면 희귀종 야생화와 갖가지 식물들이 피고지면서 강산이 4번씩이나 바뀔만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이곳 비무장지대는 생태계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지역으로 이곳에 대한 대규모 학술조사가 문화재 관리국에 의해서 6.25이후 두 번째로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6.25 3년 전쟁은 38선 대신 휴전선을 그어놓은 채, 아직껏 분단의 비극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7천만 우리겨레의 소원인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1990년대가 되었으면 합니다.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남북 자유왕래 제의를 뒷받침하면서 남북에 대해 남북의 안보 관계 법률과 정치범 문제를 논의할 남북의 법무 당국자 회담을 열자고 제의했습니다. 7월23일 홍성철 통일원장관과 이종남 법무부장관, 이성훈 국방부장관 등 3부 장관은 합동기자회견에서 북한측이 주장하는 콘크리트 장벽을 확인조사 할 것과 북한측이 계획하는 판문점 범민족대회에 참가할 우리측 단체를 허용하겠다고 제의했습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이 7월18일 서울 안국동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세기 말 왕조시대에 태어나 영국 등지에서 교육을 받고, 일제치하 때는 상해 임시의정원 의원을 지냈고, 광복 이후에는 우리나라 40년 헌정사에 직접, 간접으로 관여하면서 최후의 구 정치인 1세대의 보루를 지킨 분입니다. 고인은 1960년 4.19이후 내각 책임제하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기자회견을 갖고 이어서 안국동 자택에서 당시 경무대로 옮겨갔으나 이듬해 5.16으로 대통령 직에서 물러났습니다. 고인은 1963년과 1967년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에 야당후보로 나섰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야의 지도자로서 오랫동안 민주화 운동을 벌였습니다. 고인의 유해는 충청남도 아산 가족묘지에 안장되었습니다.



종업원 97명이 기계생산에 임하는 서울 원효로의 한국 정밀기계제작소는 지난해 매출액 18억원 규모로 탄탄한 기반을 닦았으며 지난 10년 동안 모두 18종의 첨단기계를 개발해 냈습니다. 특히 이 업체를 창업한 송철수 사장은 초등학교마저 중퇴하고 맨주먹으로 사회에 뛰어 들어 기능인으로서 경영주가 된 인간승리의 주인공입니다. 기술투자를 위해서 사장이 사글세방에 살면서 종업원들의 견문을 넓히기 위해 해마다 30여 명씩 해외 연수까지 시키고 있습니다.



힘은 들지만 여름방학을 이용해서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노동의 정직한 의미를 터득하는 가운데 내 힘으로 학비를 벌고 있는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주차장 안내 일을 맡고 있거나 주차질서 확립에 한몫을 하는 남녀대학생들, 공사장에 막노동을 하면서 하루에 3만원정도 벌고 있는 학생, 일하는 모양이 서툴러 보이지만 그 정신만은 놀랍습니다. 땀 흘려서 얻은 보람이야 말로 참으로 값진 것입니다. 공장에서 제품의 마무리 단계의 한 과정을 맡아 자기 몫을 다하는 이들 젊은이는 부업을 통해 학비를 버는 직접 소득 외에 인간수업까지 곁들이는 또 하나의 소득을 얻고 있습니다. 방범보조원을 포함해서 대학생들의 방학생활 수업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을 통해서 사회를 폭넓게 아는 소중한 기회로 활용하는 젊은이들에게서 우리는 보다 밝은 내일의 청사진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길고도 지루한 장마가 그치면서 산과 들 그리고 바다를 찾는 피서 인파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해수욕장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이런 무질서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리되 물기가 있으면 없앤 다음에 처리하고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쓰레기는 따로 처리해야 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지혜가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