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 출범후의 2번째인 올해 국정감사는 감사 주체인 국회의원들과 감사를 받는 정부기관 책임자들이 모두 새로운 정치 문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예년에 비해서 높은 출석률을 보인 가운데 전문분야의 연구와 조사를 토대로 국정을 추궁하고 정부측에서도 문제를 당당하게 밝힘으로써 국정감사가 정책론의 장 논리대결의 장으로 탈바꿈 한것입니다. 그동안 국정감사가 행정부 감시와 견제에 목적을 두고 비리와 실정을 폭로하는데만 열중하는등 한탕주의식 질의와 백화점 나열식의 질의가 주종을 이루는데 대해 본연의 목적을 상실한 것이라는 지적이 많이 제기 됐습니다. 그러나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여야의원 모두가 여론조사나 백서등의 철저한 준비등과 함께 진지한 태도를 보였으며 감사받는 기관도 소극적이고 모면주의적인 태도를 버리고 정정당당하게 평가받는다는 입장으로 감사에 임했습니다. 정부의 중앙부처 뿐만 아니라 전국의 343개 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국정감사는 상대편에 대한 약점만을 물고 늘어지기 보다는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함께 풀어나가는 형태로 발전한 모습이었고 또 특별한 사안에 대해서는 종합적인 평가와 반성이 이루어 질수 있는 기회가 된것 또한 사실입니다.

말과 글은 그 민족의 얼을 지탱시켜주는데 큰 몫을 합니다. 우리 겨레가 예로부터 문화민족이라고 불려온 것은 이미 548년전에 세종대왕께서 독창적이며 과학적인 우리 고유의 글인 한글을 창제해서 이를 사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우리글을 널리 보급 하자는 뜻으로 1967년에 발족한 연세대학교 국어운동 학생 동아리인 한글 물결은 82년 부터는 2년에 한번씩 거리의 간판을 조사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한편 신세대들에게 높은 관심을 모으고있는 한글 이름짓기 큰잔치는 1990년부터 시작돼 해마다 열리고 있습니다. 한글 이름을 창조적으로 짓도록 이끌어 주고 그방향을 제시해온 이 국어운동 학생 동아리는 한글 이름이 늘어나는것은 좋지만 부르기 쉽고 뜻이 좋은 몇몇 이름에만 편중되는 경향이 있어 타인과 구별되는 이름 본연의 목적이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한글 이름 짓기에 도움이 될만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한글 이름을 온누리에 라는 책을 펴냈고 올 한글날에는 한글학회로부터 국어운동 공로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우편물을 빠른 우편과 보통우편으로 구분하는 새로운 우편물 종별 체제가 10월 1일부터 실시되고 있습니다. 체신부는 이 빠른우편용 우표 2종을 새로 발행했으며 개편에 따른 우편요금 조정안을 확정했습니다. 보통우편 요금은 현행우편 요금과 같고 우편물이 접수된 다음날에 배달되는 빠른 우편 요금은 1종 규격 우편물은 390원 규격외 우편물은 50g 까지 540원 소포는 2kg까지 3000원입니다. 신속한 우편 송달을 원하는 이용자의 욕구를 수용하기 위해 마련한 이 빠른 우편 제도는 전국 어디서나 이용할수 있습니다. 서울과 인천 경기지역으로 보내는 우편물은 오후 6시 까지 그 외에 다른 지역에는 오후 3시까지 우체통에 넣기만 하면 다음날에 배달되는 편리한 제도입니다.

경상남도 거창에 사는 이영구씨는 우리 고유의 소리를 지키면서 징과 더불어 한평생을 살아온 징 제작이 최고 권위자입니다. 지금은 아들 4형제와 더불어 오부자가 섭씨 1600도의 뜨거운 불앞에서 겨레의 소리 그 명맥을 잇는 작업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대장의 이용구씨는 고향인 함양군 안위면에서 이어내려온 안위징 제작기술 보유자였던 오덕수씨 밑에서 징만드는 기술을 익혀 42년간 이일에 종사해 왔습니다. 청동과 주석을 4:1의 비율로 섞은 쇠는 뜨거운 불과 세찬 매질로 단련시킨후 담금질과 비틀어진 쇠를 바로 잡는 터잡기를 끝낸후 비로서 생명을 지닌 징으로 완성되갑니다. 오랜 경륜이 묻은 손끝의 감각과 귀의 트임만이 쇳속의 소리들중 징의 소리를 찾을수 있습니다. 여럿이 같이 참여하는 작업이므로 아들 4형제가 모두 아버지를 도와 징을 제작하는데 4형제 가운데 가장먼저 아버지를 도운 둘째 정수씨는 올해 전승 공예 대전에서 장려상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징 제작의 최고 장인인 대장의가 되기까지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담은 바람의 소리 하늘의 소리 징 이라는 자서전을 발간하기도 한 4형제는 일상 생활속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화합함으로써 더 좋은 징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1970년대 한때는 산업화에 밀려 일손을 놓아야 했던 이용구씨는 험하고 고된 징일을 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던 때 각지에 흩어져살던 네아들들을 불러모아 다시 이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지금 징 제작 뿐만 아니라 소리를 전승하는 일에도 남다른 정열을 쏟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