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아버지 없는 설움보다 더 서러운 것은 없을 것입니다. 내게도 다른 아이들처럼 아버지가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어머니가 나를 엎고 눈 내리던 피난길을 끝없이 걸어 떠날 때 나는 이 세상에 갓 나온 핏덩이였답니다. 부산까지 밀려가서 간신히 판자 집을 꾸려 자리를 잡은 어머니는 거리에 장사하러 나가셨데요. 어머니는 세상에 나서 처음당하는 쓰라린 괴로움에 나를 부둥켜 앉고 울며 밤을 새운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내 나이 세 살 되던 해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으나 내가 태어났다던 옛집은 간곳이 없었답니다. 그길로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간곳은 어느 산언덕 이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그곳에서 한없이 울었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어머니가 우는지 알 리가 없었습니다. 의지할 곳 없는 우리는 어머니가 부산거리장사에서 모은 돈으로 한강 가 판자촌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이른 새벽이면 거리로 장삿길을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온갖 장사를 하시면서 나를 학교에 넣어주셨습니다. 어머니가 꾸준히 모아오는 장사로 끼니를 이어가던 어느 무더운 여름날 밤이었습니다. 장마로 계속되는 비바람이 온 거리를 물바다로 만들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홍수는 가난한 우리 판자 집을 삽시간에 삼켜버렸던 것입니다. 수재민 수용소에 이송된 우리는 응급치료와 먹는 것을 얻고 용암동 수용소로 옮겨 갔습니다. 시내와 너무 떨어진 우리 모자는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서 이촌동 판자 집을 구해서 어머니는 쓰레기 청소하는 집일과 머리에 온갖 물건을 이고 이집 저집 장삿길을 헤맸습니다. 어머니는 장사로 나는 신문팔이로 가난과 역경의 해가 거듭하면 할수록 끝없는 고독 속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원망도 해보았습니다. 그러자 우리의 생활은 지칠 대로 지쳐 마침내 어머니는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간호하면서 밤을 새우는 날이 편찮으신 어머니를 혼자 두고 학교를 가야 했습니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혼수상태에 빠져 혼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을 지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나는 어머니께 상급학교 가는 일을 그만 두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웃으시면서 어떤 일이 있더라고 공부는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우리어머니보다 더한 불쌍한 어머니도 있을까. 이럴 때 아버지라도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이럴 때가 아니다 의사선생님께 말씀드리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실지도 모른다. 나는 용기를 내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의사선생님은 나의 애원도 아랑곳없다는 듯이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나는 약방도 찾아가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