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의 보리 수확기가 다가오면 가을철과 같이 농민들은 바빠지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많은 노력과 공을 들여 가꾼 곡식을 거두어들이기에 온 가족이 여념이 없습니다. 좋은 보리를 보다 많이 수확하기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으로 농사를 지은 농민들은 모두들 즐거움 속에서 보리를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흉작인 보리를 거두어들이는 농민들은 그렇게 행복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이 농부도 다른 농부들과 같은 전답에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습니다만 보리는 끝내 흉작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우리들의 옛 속담에서처럼 도깨비가 보리를 자라지 못하게 훼방을 놓았을 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도깨비의 장난이 아니라 사실은 재래식 농사법으로서는 좋은 보리와 많은 수확량을 올릴 수가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이유는 긴 세월을 두고 여러 가지 농사법으로 많은 땅을 다루어 왔기 때문에 토질에 많은 변화가 생기게 된 까닭입니다. 이 토질의 변화를 막기 위해서 우리들은 여러 가지 비료와 방법을 사용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우리들은 식물성 퇴비를 사용했습니다. 이 퇴비는 토질을 부드럽게 하고 또 약간의 질소를 공급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들은 화학 질소 비료도 써 왔습니다. 한편 왜정 시에는 종합비료도 많이 사용했습니다. 이 비료에는 질소 외에 두 가지의 중요한 다른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요소는 인 또는 인산이며 또 하나는 가리성분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료에는 또 한 가지의 성분이 부족했습니다. 그것은 토질을 부드럽게 하고 토질에 알맞는 화학성분을 갖게 하는 칼슘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또한 토질의 변화를 막기 위해서 나무재도 이용했습니다. 이 재는 약간의 가리와 칼슘성분으로서 토질을 부드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충분하지 못해서 토질은 점점 더 산성화 되었습니다. 8.15이후 6.25에 이르기까지 보리들은 질소, 과석, 가리, 퇴비, 칼슘, 나무재 등을 계속해서 필요로 했습니다. 허나 우리들은 이러한 성분을 공급할 수 있는 종합비료를 갖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칼슘도 부족했으며 우리나라의 살림 형편으로는 나무재를 충분히 공급한다는 것도 곤란한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비료성분의 부족은 땅을 점점 산성화 시켜 마침내 보리가 자라는 데 필요한 성분을 섭취하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6.25이후 미국에서 과석비료가 도입되었으나 토질의 산성화를 충분히 막아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면 토질의 산성화를 방지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석회비료의 사용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석회비료의 원료인 석회석의 매장량이 막대하므로 석회석을 외국으로부터 수입할 필요도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석회석을 땅에서 파서 간단한 제조방법으로 가루로만 만들면 그대로 비료로써 밭에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단양에 있는 이 석회 비료 공장은 막대한 생산력을 가진 공장입니다. 또한 석회비료는 이 외에도 몇 개소에서 많이 생산할 수 있게 되었으므로 우리들은 언제든지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단기 4290년 1월 국회에서는 농민들이 당면하고 있는 심각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농사교도법을 제정했습니다. 농사교도법의 제정으로 농사원의 창설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 농사원에는 농사에 대한 여러 가지 시험 연구를 해서 그 결과를 농민에게 교도 보급함으로서 농민들의 보다 더 나은 생활과 또한 보다나은 앞날의 농촌 부흥을 위해 일하는 곳입니다. 이 원대한 개혁을 돕기 위해서 미국의 대한 원조기관은 새로 발족한 농사원의 여러 사업 활동에 기술적인 원조를 제공하게 되어 여러 가지 시험연구시설을 마련하고 또한 전국 각 시 군에 농사 교도소를 설치하는 한편 농사교도사업에 종사하는 교도원들의 훈련도 돕고 있습니다. 농사원의 첫 사업의 하나는 농민 자신들이 여러 가지 농사법과 토양 개량법의 결과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전국에 각종의 전시포를 설치하는 한편 농사교도사업에 종사할 사람을 훈련하기로 했습니다. 이 경상북도 농사원에서 강습을 받고 있는 교도원들은 각자의 군에 돌아가 전시포를 설치하는 한편 각종 농사법의 시범을 통해서 농민들로 하여금 새로운 농사법을 사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 가를 실지로 볼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지금 어느 부락에서 한 농민의 밭을 선정해서 석회비료의 시험 전시포를 설치할 것에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리해서 우선 전시포를 두 쪽으로 구분해서 한쪽은 이 농부가 과거에 해오던 재래식 농사법 그대로 하기로 하고 다른 한쪽은 석회와 과석비료를 사용하는 새로운 방법을 쓰기로 했습니다. 석회와 과석의 양은 석회는 1단보에 120관이 알맞은 양이며 과석은 7관반이 알맞은 양입니다. 전시포의 구분이 끝난 다음 이 농부는 양쪽 밭에다 퇴비를 많이 가져다 놓고 석회 비료부터 먼저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시포의 한쪽에 석회를 뿌리고 그 위에 과석을 뿌리고 난 후 이 농부는 밭을 갈고 양쪽 밭고랑에 퇴비를 놓고 또 그 위에다 초산 비료를 뿌렸습니다. 이렇게 한 다음 보리씨를 뿌리고 밭고랑을 덮었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이 양편의 보리밭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그 결과는 보리 싹이 트기 시작할 때부터 나타납니다. 그것은 보리 싹이 크기 시작하면 어린 보리 싹이 트기 시작하면 어린 보리 싹이 얼어 죽기 쉬운 겨울철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석회와 과석을 받지 못한 이 보리들은 뿌리의 발육이 좋지 못해 결국은 얼어 죽고 말았습니다. 허나 석회와 과석을 뿌린 보리밭은 보시는 바와 같이 뿌리의 발육이 매우 좋아서 얼어 죽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곳 청주에 있는 전시포도 같은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석회와 과석을 준 밭의 보리는 보시는 바와 같이 아주 잘 자랐습니다. 허나 석회와 과석을 안준 왼편의 보리밭은 뿌리가 그다지 좋지 못합니다. 또한 양편 보리밭의 보리 성장의 차이는 봄철에도 현저하게 나타났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토양의 산성화를 방지하는 석회를 준 보리밭은 그것을 주지 않은 오른편 보리밭 보다 훨씬 고르게 더 잘 자랐습니다. 그러나 석회비료를 준 밭과 그것을 안 준 밭의 차이의 최후의 증거는 보리를 거두어서 그 수확량을 비교해 보면 금방 나타납니다. 지금 한 석회의 전시포에서 석회비료를 준 밭과 안 준 밭을 똑같은 면적으로 구분해서 그 수확량을 비교해 보기로 했습니다. 남자가 베고 있는 이 보리밭은 석회와 과석을 뿌린 곳입니다. 한편 여자가 베고 있는 이 보리밭은 석회와 과석을 뿌리지 않은 재래식 농사법 그대로 한 것입니다. 양쪽 보리밭에 수획량의 차이는 과연 어느 정도나 다를까요? 이와 같이 양쪽 보리밭에서 벤 보리는 한 농가의 마당에서 동시에 똑같이 탈곡을 하기로 했습니다. 탈곡이 끝나 석회와 과석을 안준 밭의 보리부터 먼저 되로써 대어보기로 했습니다. 그 밭은 토질도 좋고 또한 보리도 잘 된 편입니다만 그 결과는 두되하고 이정도 밖에는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석회와 과석을 뿌린 밭의 보리는 보시는 바와 같이 두 되를 대고 난 후에도 이렇게 많이 남았습니다. 이것이 석회와 과석을 주는 것이 안주는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보리를 수확할 수 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이리하여 농부들은 전시포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고 자신을 얻어 앞으로는 더 많은 수확과 더 좋은 보리를 생산하기 위해서 석회와 과석을 사용하는 새로운 농사법으로 보리농사를 짓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