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어.” “딸 : 아빠, 일찍 오셨네요.” “아버지 : 넌 만날 어딜 그렇게 쏘다니니?” “딸 :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어요.” “아버지 : 결혼식?” “딸 : 아휴. 굉장했어요. 손님도 굉장히 많고 선물도 굉장했어요. 그리고 신랑도 참 근사했고요.” “아버지 : 허, 참.” “딸 : 아빠, 나 시집가면은요. 걔보다 더 화려하게 할래요.” “아버지 : 어? 너 갑자기 왜 그러니?” “딸 : 평생에 한번뿐인데 추억에 남도록 화려하게 식을 올려야 되잖아요?” “아버지 : 아니, 식이 꼭 화려해야만 추억에 남나? 떠들고 야단스러운 식보다 차분하고 실속 있는 식이 오히려 추억에 남는 거야.” “딸 : 그래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래요?” “아버지 : 그렇지 않은 그 마음 때문에 평생 고생하기 쉬운 거다. 의례란 정신이 중요한 게지 그 형식적인 절차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딸 : 아이, 아빠는. 젊은 사람들 마음을 몰라서 하시는 거예요.” “아버지 : 그런 면에 대해서야 젊은 사람들 보다야 어른이 낫지.” “딸 : 그럼 냉수 떠놓고 절만 한번 하면 된다는 말씀이에요?” “아버지 : 어허, 그렇게까지 하지 않더라도 간소화할 수 있잖아. 가정의례 준칙에 대해서 넌 듣지도 못했니? 자, 봐라. 여기마침 기사가 실려 있구나. 좀 읽어보지 그래.” 허례허식과 낭비는 국가건설을 좀먹는 암적 존재입니다. 시대적인 요청에 따라 정부에서는 우리 생활과 현실에 알맞은 가정의례준칙을 새로 재정·공포해서 이를 실천에 옮기도록 권장하고 있습니다. 혼인예식은 인간대사의 하나입니다. 그러기에 정중하고 엄숙하면서도 뜻 깊고 명랑하게 두어야 할 것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결혼식은 어땠습니까? 850년 전의 예법인 육례를 갖춰야 한답시고 육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그 예를 갖추기 위해 고심했으며 또 하고 많은 낭비를 일삼아 온 것입니다. 자녀 혼사에 대들보 무너졌다는 말은 우리가 흔히 들어온 말이 아닙니까. 850년 전의 낡은 인습이 우리 후손들에게까지 아무런 비판 없이 물려진다면은 오늘에 사는 우리들의 더없는 수치인 것입니다. 이제 준칙에 의해 혼례식을 살펴보겠습니다. 혼례식의 장소는 양가의 가정이나 공회당 등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청첩장은 보내지 아니하며 식에는 친척과 가까운 친지에 한해서 초청합니다. 꽃은 신랑신부와 주례, 그리고 양가 부모만 걸도록 하며 혼례복장은 새로 마련하지 않고 단정하고 정결한 옷차림으로 합니다. 신랑신부가 입장해서 맞절을 한 후 신랑신부 서약이 있습니다. “주례: 신랑 이영규 군과 신부 강숙희 양은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사랑하고 존경하며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신랑” “신랑: 예.” “주례: 신부.” “신부: 네.” 혼인 서약이 끝나면 신랑신부는 미리 준비한 혼인신고서에 서명 날인하고 혼인 신고는 당일 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혼례식에는 화환 등을 보내지 않으며 축사나 축전의 낭독과 테이프, 딱총, 꽃가루 등도 사용하지 않으며 혼례의 답례품이나 피로연도 하지 않습니다. 예물증정이 끝나면 성혼선언문이 낭독됩니다. “주례: 성혼선언문. 신랑 이영규 군과 신부 강숙희 양은 그 일가친척과 친지를 모신 자리에서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주례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포합니다.” 그리고 주례사 인사, 양가대표 인사, 신랑신부 인사가 있고 신랑 신부가 퇴장하면 식이 끝나는데 신행은 혼일 당일로 하고 폐백과 예물은 간소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슬프다 해서 상제는 붉은 제복을 해야 하고 만 2년 동안 바깥출입은 못하며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세수를 해서도 안 되고 새 옷을 못 입으며 손톱도 깍지 못하였습니다. 거기다 무덤 옆에 여막을 짓고 살아야 효자로 대우 받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생활에 맞을 리 있겠습니까? 새로 제정된 상례는 이렇습니다. 먼저 영좌에는 고인의 사진을 모신 다음 촛불을 밝히고 향불을 피우며 영좌의 오른쪽에 홍포에 흰 한글로 쓴 길이 약 2M의 명정을 세웁니다. 조객에 대한 음식 접대는 하지 않으며 조객은 조화를 보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풀거나 곡을 하지 않습니다. 가족은 붉은 제복을 하지 않고 평상복으로 하되 한복 일 때는 흰옷, 흰 양말을 신으며 두건을 쓰거나 흰 마포상장을 가슴에 답니다. 그리고 양복일 경우에는 양말, 신발까지 검은색으로 하며 마포상장을 다는데 단, 복인은 8촌 이내로 해서 복인은 검은 상장을 달도록 합니다. 장례는 5일 이내로 상복은 장일까지 상제의 상장은 탈상 때 까지만 달도록 하고 부모, 조부모, 배우자의 상기는 백일, 기타는 장일까지만 합니다. 다음 제례는 기제, 절사, 연시제 세 가지로 한정합니다. 신위는 고인의 사진으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에는 지방으로 하는데 지방은 한글로 쉽게 씁니다. 기제의 대상은 부모와 조부모, 배우자를 원칙으로 하며 양친모두 별세했을 경우에는 합사합니다. 술을 올리는 헌작은 한번만 올리는 단일을 원칙으로 합니다. 제수는 간소한 반상음식으로 하고, 조사에는 내온 떡으로, 연시제에는 내온 떡국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아들 준식은 아버님 신위전에 삼가 고하나이다. 아버님께서 별세하시던 날을 다시 당하오니 추모의 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에 간소한 제수를 드리오니 강림하시와 음양 하시옵소서.” 다만 연시제에는 축문을 읽지 않습니다. 독축 후 제주는 재배하고, 삽시 후에는 묵념, 그리고 숭늉을 국과 바꿔놓고, 밀을 물에 만 다음 잠시 부복하고 사신한 다음, 재배하고 신위를 봉헌하면 시례는 끝이 나는 것입니다. 성묘는 별세하신 부모와 조상의 육신을 모신 장소인 선영을 참배하고 묘역에 풍수해로 인한 이상의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성묘식에는 후손 각자가 편리한대로 할 것이며, 성묘의 방법에는 재배, 또는 묵념으로 하고 제수는 마련하지 않습니다. 무릇 위로란 그 정성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적인 절차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 : 이제는 너도 알겠지. 가정의례를 어떻게 간소화하자는 건지.” “딸 : 그렇지만 아빠, 그게 하루아침에 간소화가 되요?” “아버지 : 그래서 지금 하고있는거지. 그러니, 너부터라도 그런 허황된 생각을 안해야할게 아니냐. 응?” “딸 : 아빠, 이제 알았으니까요, 이 케이크나 잡수세요.” “아버지 : 싫다. 너나 실컷 먹어라.” “딸 : 아빠도 참. 앞으로 이런 케이크도 구경 못할지 누가 알아요? 그러니까 한 개라도 드세요.” “아버지 : 좋아. 그럼 하나만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