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지상군의 활약과 더불어 우리 공군은 적의 생산 공장, 보급로, 군사시설에 맹폭격을 가해 적의 전력을 마비시키고 적 지상군에 대한 공격으로 우리의 지상군을 엄호하는데 전력을 다하였다. 유엔의 중대형 폭격기들은 교통로, 교량 등의 폭격과 함께 평양, 진남포, 함흥, 성진, 청진, 나남지구의 군수공장을 공격해서 거의 전부를 파괴하고 재빠른 제트기와 무스탕 전투기 미영 함대기대는 Err_Code(끊김0:41)

공산 괴뢰는 전 세계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서 이역만리 한국 땅에서 싸우다가 포로가 된 유엔군 병사들을 강제 데모에 동원시키는 한편 가지가지의 국제 도의에 이탈된 학대와 만행 Err_Code(잡음0:56~1:10)

어찌 그 뿐이랴 전투에서 많은 병력을 상실한 괴뢰들은 노소 부녀자에 이르기까지 강제 동원해서 가지가지의 노역에 종사케 하고 의용군이라는 미명하에 우리의 젊은 청소년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사지로 몰아넣었다.



무제한 총공격

그러나 정의는 살아있었다.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진두지휘 밑에 드디어 4283년 9월 15일 육해공군 합동으로 무제한 총공격은 개시되었다. 이 작전에는 7개국 군함으로 편성 된 260척의 함정이 참가했고 기함에는 맥아더 원수가 탑승하여 친히 지휘를 하고 유엔군 2개 사단과 미 해병 1개 사단 부대를 선두로 하여 대공군의 맹렬한 포격 엄호밑에 후방군이 인천에 상륙을 감행했다. 적을 섬멸하면서 총 북진을 개시한 것이다.

인천에 상륙한 해병대의 일부는 곧 서울을 향해서 맹렬한 진격을 가하고 일부는 남으로 향해서 중간 지대의 적군을 소탕하면서 북상하는 지상군과 합류했다.

아 감격의 9월 28일 반격이 개시 된지 2주일 만에 수도 서울을 탈환해서 보무도 당당 아군의 입성식은 그간 잠시나마 적 치하에서 온갖 고초를 다 겪은 수많은 시민들의 눈물어린 환호 밑에 거행되고 중앙청 하늘높이

감격의 이날 Err_Code(끊김 3:59)

서울을 탈환한 국군과 유엔군은 계속해서 갈팡질팡 북으로 북으로 패주하는 적을 추격하고 기타 동부, 중부 전선의 북상부대도 도처에서 적의 패잔병을 쳐부수면서 쾌속도로 진격해서 10월 초에는 민족의 원한이 사무친 38선에 이르렀다. 이때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방송을 통해서 괴뢰군 총사령관에게 적대행위를 정지하라고 항복을 권고했으나 침략의 야욕에 불타는 적이 이에 불응하자 유엔군은 38선을 돌파하는 총 진격을 개시하고 북진의 북진을 계속했다. 정의의 진격이 있는 곳에 동포의 환호성은 드높아 가는 곳마다 연도에 늘어선 환영의 군중이 그칠 줄을 몰랐다.

이리하여 수도 사단은 3사단과 병행해서 인제를 거쳐 10월 10일 감격적인 시민들의 환영 위에 원산에 진주했다.

또한 계속적인 아군의 진격은 괴뢰정권의 아성 평양을 목전에 두고 용기백배했다. 드디어 10월 19일 용맹한 우리 국군은 숙망의 평양 진주를 하고 오랫동안 신음하던 북한의 도시와 농촌을 공산치하에서 구출했다. 전란을 피해서 각처에 흩어졌던 북한 동포들은 아군의 진주와 더불어 자유가 깃들인 평양으로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