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정의례

우리는 예부터 예의를 중히 여기는 민족입니다. 바른 예의는 상부상조하는 미풍양속을 낳았으나, 또 한편으로는 형식으로만 치우쳐 사회적 폐풍을 빚어내기도 했습니다.



바로 그 좋은 예로 여기 예식장을 보십시오. 경건하고 축복으로 가득 차야 할 곳이 시장통과 다를 게 뭐 있습니까? 결혼은 누구나 일생일대의 대하라고 중히 여기면서도 왜들 이렇듯 혼잡한 곳에서 쫓기듯 치루고 마는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수많은 청첩장이 마구 인쇄되어 뿌려지고 식장 접수구에는 꼭 입장권을 내듯 봉투를 내밀어야 했습니다. 이러니 체면이 앞서 무리한 부담을 감수하지 않을 수 없어 납세고지서라는 이름까지 붙게 됐던 것입니다. 아주 답례품과 현금과 맞바꾸는 광경도 볼 수 있으니 이쯤 되면 결혼식장인지 시장통인지 분별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우리는 다 이를 계산하면서도 그대로 지내온 것은 체면치레 외에 또 뭐가 있겠습니까?



회갑잔치, 일가친척과 가까운 친지들의 오붓한 축소의 모임이 가정 아닌 연회장으로 옮겨져 가고 있습니다. 천장이 얕다 하고 쌓아올린 상차림, 검소와 절약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광경입니다. 우리는 아직도 식량을 외국에서 사들이고 있어 한 톨의 식량도 아끼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바로 이웃에서 이런 낭비가 거리낌 없이 이루어지고 있음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러한 병폐를 과감히 수술해야 한다는데 누구라서 부정하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우리는 상갓집에 가보면 안타까움이 앞섭니다. 먹을 양식이야 있건 없건 모하 놓은 돈이야 있건 없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처지를 당한 상주로서 왜 연일 풍성한 술과 음식상을 간단없이 차려 내와야 합니까? 애당초 어려울 때 상부상조하는 우리 전례의 미풍양속은 그 흔적조차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습니다. 가문과 체면을 앞세우다 보면 상주는 빚만 늘어나 패가망신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농촌의 경우 연 수입의 25~30%가 관혼상제의 비용으로 쓰여 한 농가 당 연 40만 원 소득에서 10~12만 원이라는 돈이 이렇게 쓰여 지게 되니 놀라운 사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리의 생활에서 불합리하고 비과학적인 요소를 몰아내고 새 생활의 굳건한 터전을 이룩했으며 이에 따라 관혼상제에 있어서도 허례허식과 낭비로 흐르는 병폐를 도려내는 일대 수술이 불가피함을 우리는 깊이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취지에 맞추어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과 준칙이 마련된 것입니다. 이 준칙은 허세와 낭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럼 여기서 새로운 가정의례법의 내용과 준칙을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새로운 준칙에 의하면 혼례에 있어서는 약혼식을 따로 하지 않고 당사자의 호적등본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한 약혼서 만을 교환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함지기를 보내는 일이 없도록 했으며 신행으로 인한 번거로운 폐해를 없애기 위해 신행은 혼인 당일로 하도록 했습니다. 혼인 식순에 있어서도 개식, 신랑 신부 맞절, 신랑 신부 서약, 성혼선언 그리고 직접 그 자리에서 혼인신고서에 날인을 한 후 신랑 신부가 하객에 대해 인사를 함으로써 끝내게 하는 한편 예물교환이나 주례사 등은 각자의 사정에 맡기도록 했습니다. 이 얼마나 합리적인 식순입니까? 혼례에 앞서 인쇄된 청첩장 그리고 식장에서의 화환, 화분 등 진열을 금하며 답례품이나 가정 외에서의 음식접대는 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러나 전화나 방문으로 결혼을 알릴 수 있으며 식장에서 두 개의 화환이나 꽃바구니는 둘 수 있습니다.

혼례에 있어 법 금지사항으로써는 인쇄물에 의한 청첩장을 내서는 안 되며 화환이나 화분과 같은 장식물을 진열할 수 없으며 답례품을 주어서는 안 되며 음식접대도 금지하는데 가정에서만은 허용한 것입니다. 준칙으로는 약혼식을 금하고 함지기를 보내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다음 장례의 경우를 보면 장례식에서는 신문에 부고를 낼 때는 행정기관, 기업체에서는 직장이나 단체의 이름을 쓰지 못하도록 했으며 노제, 반우제, 삼우제 등의 제식은 하지 않고 발인제와 위령제만을 지내도록 했습니다. 발인제 식순은 개식, 주상 및 상제들의 분향, 고인의 약력소개, 조객분향, 폐식으로 됐습니다. 상복은 따로 마련하지 아니하고 한복일 때 흰색 또는 검은색으로 하되 양복일 때는 검은색으로 하고 왼쪽 가슴에 가로 7센티미터, 세로 3센티미터의 상장 또는 흰 꽃을 탈 상식까지만 달도록 했으며 부득이한 경우 평상복도 좋습니다. 그리고 조객에게 음식이나 술을 접대할 수 없으며 간단한 다과나 음료수로 대신하기로 했습니다. 관 나르기에서는 만장을 못 쓰게 했으며 영구차나 영구수레로 하되 부득이한 경우 지나친 장식이 없는 상여도 쓸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상제 중 신의를 모시는 빈소는 설치하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상례의 경우 법 금지사항으로써는 부고장을 인쇄해서 개별로 보낼 수 없으며 화환, 화분 등을 늘어놓을 수 없으며 다과나 음료수 외에는 접대할 수 없고 붉은 제복을 입지 못하고 만장을 쓸 수 없는 것입니다. 준칙내용은 장일은 3일 이내로 하고 빈소를 설치해서는 안 되며 단체의 이름을 빌려서 부고를 내서는 안 되며 탈상은 부모, 조부모, 배우자는 100일, 기타는 장일까지 하도록 했으며 노제, 반우제, 삼우제를 금지하게 된 것입니다.



기제에서는 종전에는 닭이 울기 전에 지냈으나 새로운 준칙에서는 돌아가신 날 해진 뒤에 지내도록 했으며 2대조까지만 지내도록 했습니다. 제사상은 평상시의 간소한 반상 음식으로 하되 추석 절 같은 절사에는 메 또는 떡을 올려서 아침에 하도록 했으며 정월초하루날 보내는 연시제는 떡국으로 밥 대신할 수 있습니다. 제례 절차는 혼령 모시기, 잔 올리기, 축문 읽기, 물림 절로 끝나기로 했습니다. 신의는 사진으로 하되 사진이 없는 경우 한글로 쓴 지방으로 대신하도록 했으며 성묘는 편의대로 하되 제배 또는 묵념으로 하며 제수는 마련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제례에 있어 준칙내용을 정리해보면 기제는 2대조까지만 모시도록 했습니다.



회갑연의 경우 종래는 가정을 떠나 연회장에서 호화판으로 벌이는 풍조가 있었으나 가정 외에서의 음식접대를 금지했으며 가정에서 친척과 친지끼리 간소하게 하도록 했습니다.



이상의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에서 법 금지사항을 위반하면 50만 원 이하의 벌금 또는 과료에 처하게 되는데 혼례, 회갑연에서는 그 당사자, 상례에 있어서는 주상, 붉은 제복을 입은 사람으로 해당되며 제례에 있어서는 제주가 처벌을 받게 됐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새삼 느끼는 것은 새로운 가정의례가 허영과 낭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떳떳한 입장에 서게 된다는 것입니다. 회갑연의 경우를 보아도 연회장에서 크게 잔치를 벌이기보다 가까운 일가친척들과 단란하게 지내거나 의지할 곳 없이 쓸쓸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는 양로원의 노인들에게 조촐한 잔치를 열어주는 미담도 우리는 가끔 듣는데 얼마나 흐뭇한 회갑연이 되겠습니까? 본인에게도 오히려 값진 회갑연일 수 있겠습니다.



상가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평소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붉은 제복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단정한 평상복으로 영전에 나서니 어떻습니까? 상장은 리본으로 접어서 달거나 흰 꽃을 달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조객에게 음식이나 술상을 차리지 않고 음료수와 간단한 다과로 대신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용히 슬픔을 달래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차분한 분위기를 되찾게 된 셈입니다.



제사는 돌아가신 날의 닭이 울기 전에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어 온 식구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으나 이제는 돌아가신 날 해가 진 후 모시도록 했으며 특히 제사음식은 종래의 번잡한 형식에 따르느니보다 살아계실 때 좋아하시는 음식을 차려 허실이 없게 됐습니다. 그리고 고인의 유품을 놓는다든지 해서 추모의 정이 감돌게 해야겠습니다.



결혼에 있어서도 이제 결혼이 지닌 참뜻을 되찾아 따뜻한 축복만이 흘러 넘쳐야겠습니다. 이 젊은 기사는 상업적인 예식장을 택하지 않고 자기의 일터인 지하철 터미널에서 훌륭한 결혼식을 치렀습니다. 이 젊은이들은 청첩장을 인쇄해서 뿌리지 않고 이렇게 친히 웃어른을 찾아뵙고 혼인을 알리는 정겹고 현명한 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식장도 바로 직장인 전화국 전공대기실을 사용해서 상사와 동료들의 아낌없는 축복으로 새로운 삶의 출발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종교, 직장, 취미에 따라 창의적으로 식장을 마련해서 또한, 거의 비용을 들이지 않고 품위 있는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것입니다.



보십시오. 이 결혼식에는 서툴게 꾸며진 조화의 진열이나 시장통 같은 소란이나 어수선함이 없이 푸른 하늘 아래 행복스러운 경축의 분위기만이 가득합니다. 가정의례법에는 예식장 좌우에 한 개씩의 화환이나 화분 또는 꽃바구니만을 진열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까운 친척과 친지들이 모이는 자리에는 가정의례법나 낭비가 있을 수 없습니다. 돈 받는 접수구가 없어지고 쑥스러운 답례품도 없이 신랑 신부의 뜨거운 감사의 답례가 이들 축하객을 더욱 흐뭇하게 합니다.



이제 우리는 선조로부터 이어받은 미풍양속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허례허식에서 오는 낭비와 허세와는 담을 쌓아야겠습니다. 관혼상제 때문에 패가망신했다는 이야기는 이제 지난날의 옛이야기가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우리는 땀 흘려 일해서 알뜰하게 모은 살림을 낭비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애써 모은 재산을 겉치레에 써버리면 언제 가난에서 벗어나며 누가 알아주고 도와주겠습니까? 가난보다 더 서러운 것은 없습니다. 새로운 가정의례준칙을 지켜 남들처럼 잘살아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