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서울 부산간 고속도로가 개통된지 만 3년만인 1973년7월7일에 박정희대통령의 지시로 정부평가 기획단이 5개월에 걸쳐 조사한 고속도로의 교과분석 자료를 토대로 제작한 영화입니다. 1968년 12월 서울 인천간 고속도로와 서울 부산간 고속도로가 처음으로 개통됨으로서 우리나라에 고속도로가 생긴 지 이제 6년이란 세월이 흘렸습니다. 지난 6년간 정부는 서울 인천간, 서울 부산간, 서울 새말간, 대전 전주간, 전주 부산간 등 5개 노선의 고속도로를 건설하여 1973년말 현재로 총 1,013킬로미터 즉2,500리가 넘는 고속도로를 완공했습니다. 이렇게 전국토를 주명으로 끌들른 거대 기간 고속도로망을 완성 하므로서 전국토의 하나를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어 놓아 80년대의 100억불수출과 천불소득 달성을 크게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세계 16개 고속도로 보유국가운데 고속도로 연장으로 8위를 차지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속도로는 이제 명실상부한 산업도로로서 그 구실을 다하고 있습니다. 서울 부산간 고속도로의 경우 이용차량의 구성 비율을 보면은 개통 첫해인 1970년에는 승용차가 53퍼센트로 과반을 차지하고 화물차가 36퍼센트 버스가 11퍼센트 였으나 1971년 부터는 승용차와 화물차의 이용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어 1973년에는 승용차가 35퍼센트 화물차가 51퍼센트 버스가 14퍼센트로 화물차가 제일 많이 이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속도로를 많이 이용하는 이유로는 주민시간이 단축되고 주민비가 적게 들며 교통사고가 적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것 때문에 고통사고를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지만은 고속도로는 안전주행을 감안해서 설계 됐을뿐만아니라 교통표지와 안전시설에 보강으로 기존도로보다 사고율이 휠씬 적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70년에서 72년 사이에 있었던 교통사고율을 비교해 보면 사망의 경우 기존도로는 168명 고속도로는 23명으로 그 7분의 1밖에 되지 않으며 부상의 경우가 기존도로가 2,550명 고속도로가 202명으로 11분의 1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4개 인터체인지 주변에 많은 공장이 들어서므로서 고속도로는 공업개발 부문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터체인지에 반경 4키로미터 이내에 있는 제조업체의 경우 서울 부산간 고속도로가 완전히 개통되기 전해인 69년 말에 비해서 72년말 현재 고용이 5배로 2만6천명 소득은 12배인 138억원으로 늘어났습니다. 또 이고속도로는 새로이 144개 공장을 도시 근교나 인터체인지 주변으로 분산시켜놓았습니다. 특히 규모가 클수록 지방 분산이 급격하게 이루어져 500명이상의 종업원을 가진 경우 개통 전에 비해 약 7배로 늘어났습니다. 고속도로변 375개 일반 공산품 제조기업 중 93.4퍼센트가 고속도로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 1,373개 공산품 수출업체 중 76.8퍼센트인 1.054개가 고속도로의 좌우 20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수출신장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1972년만 하더라도 이들 기업체가 담당한 수출액은 총 수출액에 81.8퍼센트를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수산물의 경우도 싱싱한 그대로 신속히 전국으로 운반되고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 있어서 6톤 냉동트럭의 경우 고속도로 개통 전에는 12시간 걸리던 것이 지금은 6시간 반으로 단축되어 수송비도 종전에 5만원에서 3만원으로 2만원이 절약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육지와 바다로 일관 수송을 할 수 있는 컨테이너 이용의 경우에도 큰 이점이 있습니다. 8개월간의 통계에 의하면 수송비는 철도에 비해서 약 2배가 들지만 총비용량의 83.5퍼센트에 이르는 5만5천6백여대가 이 고속도로를 이용했습니다. 또한 이 고속도로는 새마을 건설에 지름길이 되고 있습니다. 한가지 예로 72년도에 새마을 사업에 쓰여진 시멘트 1,050만 토대중 약 45퍼센트가 이 고속도로로 운반 됐습니다. 특히 고속도로변 농가 중 과반수가 새로운 작물들을 재배하므로서 농가소득이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고등소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농 형태상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소작의 격감현상을 들수 있습니다. 이렇게 고속도로가 생기므로써 농촌은 자급 형에서 이윤추구 형에 기업용으로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각종 농산물의 신속한 수송으로 가격안정에도 고속도로는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많은 새마을 공장이 고속도로 주변에 들어서므로서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얻고 있습니다. 또한 이 고속도로는 관광객 유치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특히 페리어로 입국하는 일본관광객이나 항공편을 이용하는 관광객의 대부분이 이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있어 72년 한 해 동안에 537만불의 외화를 벌어들였습니다. 이밖에도 72년도에 부산 및 인천으로 들어온 관광객수는 9만9천명이었는데 이들도 대부분 고속도로를 이용하고 있으므로 이를 합하면은 고속도로가 갖는 관광객 유치효과는 훨씬 크다고 하겠습니다. 70년에서 72년 사이 3년간 고속도로를 이용하므로서 얻게된 사회적 편익은 총 305억원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생활에 일대혁신을 가져온 이 고속도로는 앞을 내다본 박대통령의 예지로 이룩된 것 입니다. 박대통령은 1967년부터 틈틈이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많은 연구를 거듭하여 우리의 자본과 우리의 기술로서 이 고속도로를 완성하게 됐던 것 입니다. 그토록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일부사람들도 이제는 오히려 이 고속도로의 고마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조국 근대화의 원동력이 되고 있는 고속도로의 노선이 또 하나 착공됐습니다. 우리나라 광업자원의 절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태백지구에 고속도로가 뚫리게 된 것 입니다. 우리나라 석탄생산량의 90퍼센트 그리고 중속에 91퍼센트 시멘트의 94퍼센트가 이곳 영동 동해지구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 입니다. 이고장의 측량이 완료되므르서 1974년3월28일 강원도 강릉에서 영동 동해고속도로의 기공식이 성대히 거행됐습니다. 새말에서 강릉에 이르는 영동고속도로 97킬로미터와 강릉 묵호를 잊는 32킬로미터의 동해고속도로가 75년9월에 준공되게 될 것 입니다. 태백지구 일원의 지하자원과 동해의 수산자원 그리고 관광자원 개발을 촉진해줄 이 고속도로가 준공되면 거면한 태백산맥에 막혀 제대로 빛을 못 보던 충원자원의 촉진되어 지역사회 발전과 주민들의 소득증대에도 획기적인 전기를 가져오게 될 것 입니다. 안 된다는 것을 훌륭하게 해낸 고속도로의 건설 그 놀라운 보람속에 우리 조국의 번영은 날로 더해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