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딸: 워매 저게 어쩐 버스여?” “첫째 사위: 뭐 버스?” “첫째 딸: 아따, 우리 아버지 돈 벌어서 버스 사셨네잉.” “첫째 사위: 아, 옆집에서 전세 낸 차여.” “첫째 딸: 어쩌코롬 그리 잘 안다요? 분명히 우리 집 앞에 서 있는디. 사셨어잉.” “첫째 사위: 들어가 물어보장께 얼릉.” “첫째 딸: 아버지, 엄니, 왔서라.” “아유 뭐하느라 늦었어.” “첫째 사위 : 아 저 사람이 어찌 걸음이 늦은지 참나” “ 첫째 딸: 그게 왜 나 때문인가요.” “첫째 사위 : 또, 또, 또, 또.” “황정순: 그래. 하여간에 오느라고 참 애썼다. 너 그러고 보니 이제 너도 서울말을 다 잊어버렸구나.” “첫째 딸: 그렇게 돼버렸네요, 엄니.” “둘째 아들(신성일): 지금 매부네 기다리느라고 세배도 못 하고 있습니다.” “첫째 사위: 무슨 소리? 영균이 형님네도 지금 안 왔잖아.” “황정순: 응, 아범은 회사일 때문에 못 온다고 전보가 왔지 뭔가.” “그 대신 저희들이 왔잖아요.” “김희갑: 자 그대로 앉아라. 시간 낭비할 필요 없어요. 자 앉아라, 앉어.” “첫째 사위: 그랑께 우리가 제일 꼴찌가 돼부렸구만. 아부지 미안합니다요. 자 이왕 다 모였응께 쭉 스라고. 쭉 서. 세배를 드려야지, 세배를. 일렬로 잉? 아부지 세배 받으십쇼.” “김희갑: 자 그대로 앉아라. 내 세배는 받은 배나 진배없으니깐 그냥 앉으라고.” “둘째 사위(허장강): 아부지 왜 이러십니까? 1년에 한 번밖에 없는 설날 아닙니까?” “둘째 며느리(윤정희): 아버지, 세배는 받으셔야지요.” “황정순: 얘들아, 어서들 앉으려무나. 중대발표를 하시겠다고 일주일째 지금 벼르고 계셨지 뭔가. 앉어, 어서들.” “김희갑: 어서 앉어.” “둘째 사위: 그럼 그냥들 앉겠습니다.” “김희갑: 내 오늘은 너희들에게 세 가지만 얘기할 테니까 명심해야 되겠다. 그 첫째는 세배를 다니면서 낭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 그것도 허례허식에 진배없지가 않으냐. 박 대통령께서도 금년부터 신년하례를 받지 않기로 했어요. 나도 그 분의 뜻을 따라서 금년부터는 세배를 받지 않기로 했어요. 둘째는 올핸 황소 해에요. 황소는 어떠한 고난이 와도 맡은 바 소임을 다하기 위해서 묵묵히 일을 한다는 거지. 안 그렇소, 여보?” “황정순: 아, 그럼요.” “김희갑: 그러니까 우리도 올해는 황소처럼 묵묵히 일을 하자는 거야.” “첫째 사위: 의장! 의장!” “김희갑: 귀청 떨어진다, 귀청 떨어져.” “첫째 딸: 이이는 원래부터 이렇당께요.” “첫째 사위: 조용, 조용, 조용하랑께. 저 그랑께 저 밖에 있는 마이크로 버스라는 것은.” “김희갑: 그 사람, 성질, 성질 참. 그게 궁금했다 그거지?” “첫째 사위: 네, 그게 바로 궁금했습니다.” “김희갑: 다들 들어보라구. 셋째는 연초에 연 3일 공휴일이 있지 않으냐. 올해는 유신헌법이 공포된 첫 번째 해기도 하거니와 제4공화국이 첫발을 내딛는 의미에서 연 3일의 공휴일을 좀 더 보람 있게 보내야 되겠기에 조그마한 계획을 마련했어요. 알았냐? 허니까 모두들 밖에 있는 그 마이크로버스를 타도록 해라.” “둘째 아들: 저, 전 집사람과 사장님 댁에 세배를 가기로 했습니다.” “둘째 며느리: 네, 그래요, 아버님.” “김희갑: 내 미리 알려주지만은 오늘만은 배가 아파도 할 수 없고 머리가 아파도 할 수가 없어요. 자, 여보, 우리 나가 갑시다. 가자구.” “황정순: 네, 가십시다.” “김희갑: 솔선수범이란 게 있지 않소. 자, 가자구.” “황정순: 얘들아, 아버님 말씀 들어. 어서 나오너라.” “지영(박지영): 할아버지, 저희들은 안 가도 되지요?” “영일(신영일): 저, 집 볼 사람이 없는데 집이나 보지요.” “김희갑: 뭐, 뭐라구?” “황정순: 집은 벌써 할아버지가 옆집 아주머니한테다 부탁을 해놨어요, 다. 어서 나와.” “김희갑: 여보, 어서 가자구.” “영일: 아, 친구들하고 약속 있는데, 이거.” “둘째 아들: 자, 우리 나가보죠. 설마하니 아버님이 하시는 일인데 별 일이야 있을라구요.” “둘째 며느리: 그래요. 괜히 엄포만 놓으시지 실상은 파티가 있을런지도 모르잖아요.” “둘째 아들: 자, 가시죠.” “김용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김희갑: 이리들 오너라. 가나안농군학교 김용기 교장선생님이시다.” “김용기: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부디 뜻 깊은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황정순: 감사합니다.” “김희갑: 교장선생님. 우리는 가나안농군학교를 구경하러 온 것이 아니라 저, 신년 연초에 사흘이나마 우리 정식으로 입교를 해서 새마을 지도자들과 동거동락을 같이 하려고 온 것이니까 그렇게 아시고 허락해주세요.” “첫째 사위: 우리 여 공부하러 왔네잉.” “김용기: 아, 그렇다면은 뭐 더욱 더 큰 영광이겠습니다. 그럼 우선 우리 학교 환경부터 돌아보시죠. 자, 안내해드려요. 자, 그럼.” “김희갑: 고맙습니다.” “김희갑: 애비가 말한 조그마한 계획이란 바로 이것이니깐 착오 없길 바란다.” “차렷! 좌우양 좌! 뛰어! 갓!” “개척 정신, 개척 정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