特別生放送 55時間

슬픔의 행렬 기쁨의 물결



윤성해 : 기분이 말로 못하죠. 제가 어렸을 때 나오지만 보니까 눈물밖에 안 나와요.



여자 : 오빠. 엄마 이름 누군지 알아? 엄마 이름 누군지 아느냐고? 김은여 맞아. 어. 엄마 돌아가셨어. 10년 전에 10년 됐어. 나 하나밖에 없어. 지금.



남자 : 충재야. 삼촌이다. 삼촌이 이렇게 죄가 많다.



진영민 : 화면 보고 나서 과연 6.25가 어떻고 우리 민족이 겪은 시련이 어떻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김은숙 : 앞으로 더욱더 확대 돼서 북한에도 우리 동포들이 있는데 그 동포들에게도 그런 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 그런 것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석윤 : 저는 평안북도 용천군 양시 양아면에서 나왔어요. 해방 전 48년도에 나와서 지금 이런 것을 보니까 이북에 간 언니도 보고 싶고요. 식구들이 많아요. 만주에도 한 분 언니가 있고 그래요. 그래서 울면서 계속 보고 있는 거예요.



김미진 : 우리는 전후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6.25를 겪으신 부모님과 6.25를 겪지는 않았지만 6.25의 아픔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는 이런 6.25의 비극이 없어야겠고 또 이런 6.25를 막기 위해서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방력의 강화라든지 경제건설이라든지 이런 방면으로 계속 추진을 해야겠고 또 이번 이산가족을 계기로 해서 남북대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통일까지 밀고 나가는 그런 방향이 됐으면 하고 바라고 있습니다.



김동건 : 네. 안녕하십니까. 특별생방송 55시간 슬픔의 행렬, 기쁨의 물결을 보내드리겠습니다. KBS 연속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가 지난달 30일부터 오늘 밤 8시 20분까지 장장 6일간 방송이 계속됐습니다. 지금 이 시각까지 총 1,110여 가족이 혈육의 정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동안 TV를 시청한 모든 국민 여러분들이 울고 그리고 감동하시고 말문이 막혔고 같이 목이 멨었습니다.



신은경 : 네. 엿새 동안 텔레비전을 지켜보면서 우리 민족만큼 이 지구상에서 이렇게 슬픔과 애환과 또 아픔을 지니고 살아가는 민족이 또 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 시간에는 KBS 연속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오늘의 우리 현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그런 시간 마련하겠습니다.



아나운서 : 아버님께서 그렇게 학살당하시는 장면이 생각이 나세요?

이정순 : 네. 영천초등학교 1학년 때에요.

아나운서 : 아버님이 어디 군수이셨어요? 군의 군수로 3년 계시다고 또 영천군수로 오셔서 영천군수로 2년 정도 계시다가 밤에 자는데 공산당들이 1시나 돼서 집으로 쳐들어왔어요. 군수 관사로요. 그래서 아버지를 끌고 나가서 방망이고 창, 칼이고 이런 것 가지고 때리고 찌르고 해서 아버지를 죽여서...

아나운서 : 그걸 다 보셨어요?

이정순 : 보지는 않았고 엄마가 따라나가려고 하니까 우리 가족들 죽인다고 모두 지키고 있어서 가족들을 밧줄로 묶어서. 나가면 죽인다고 그래서 못 나가고 벌벌 떨고 엄마는 자식 죽일까 봐 우리를 지키고 이렇게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틀이 되도 아버지가 안 돌아오셔서 나가보니까 아버지를 무참히 살해해서 영천 남부교 다리 있는 곳에다 피가 강에 흥건하게 고여서 시체가 옆에 하수구에 막 짓이겨서 넣어 놨었어요. 그래서 아버지 시체를 찾았어요.

아나운서 : 그래서 아버님은 잘 묘소에 모셨나요?

이정순 : 네. 그래서 장례식도 군에서 다 지내주고 도에서 다 지내주고 했어요.

아나운서 : 동생 되시는 분! 그때 기억이 다 하나하나 생생히 떠오르세요?

이송자 : 기억이 아주 다 중요한 것만 머리에 떠오르고 있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된 것, 아버지가 군수였다고 하는 것하고 식구들이 안 죽으려고 우리가 담 넘어 피난 나온 것하고 그런 기억은 다 있어요.

아나운서 : 아버님 산소에 가셨던 것도 기억이 나세요?

이송자 : 그런 기억은 없어요. 너무 오래돼서.

아나운서 : 언니하고 헤어지시게 된 이유가 뭡니까? 어떻게 해서 헤어지시게 된 건가요?

이정순 : 6.25 때 피난을 내려오다가...

아나운서 : 어디서에 어디로 내려오시는데요?

이정순 : 서울에서 대구로 와서 대구서 헤어졌어요.

아나운서 : 대구에서요?

이정순 : 네.

아나운서 : 아니 어떻게 하다가 헤어지셨어요?

이정순 : 형제가 5형제에요. 오빠 둘이고 동생 둘이고 제가 가운데고요.

아나운서 : 오빠 두 분. 또 우리 아주머님하고 송자 씨 동생 되시는 분하고 또 밑에는 남동생이셨어요?

이정순 : 아뇨. 바로 밑에 여동생이고 쟤가 막내죠.

아나운서 : 위로 형제하고 밑으로 세 자매. 그럼 모두 생존해 계세요?

이정순 : 네. 오빠 둘, 동생 하나, 나하고 이렇게 넷이 있지요.

아나운서 : 아. 그러니까 지금 저 동생까지 4남매가 되는 거죠. 정말 다시 한 번 축하의 박수를 쳐주세요. 여러분. 언니, 오빠 다 만나시게 됐네요.

아나운서 : 부산의 송자 씨는 다 찾았네요. 위에 언니, 오빠.

이정순 : 네. 다 찾았어요. 엄마, 아버지만 돌아가시고요.

아나운서 : 축하합니다. 축하합니다.



지난날의 아픈 기억들도 다시 만난 기쁨들이 이분만의 기쁨이 아닐 것 같습니다. 천 가족이 넘게 많은 분들이 재회의 기쁨을 맛봤는데 그 극적인 장면들 잠깐 모아서 보기로 하죠.



유원섭 : 이게 정말이여?

유원국 : 정말이지.

아나운서 : 네. 축하합니다. 두 분 어떤 사이십니까?

유원국 : 형제간이에요.

아나운서 : 언제 헤어지셨어요?

유원섭 : 50년도 대구 밑에 경산에서 연령별로 갈라서라고 하는 바람에 어디가 어디인지 모르고 우리는 그때 월남해서 모르니까 갈렸단 말이야. 그래서 지금까지 못 찾은 거야.



남동생 : 순실이 누님 되세요?

누나 : 어? 어!

남동생 : 그리고 순열이도 있고?

누나 : 그래 순열이 누나 여기 있어.

남동생 : 그리고 순녀?

누나 : 순녀!

남동생 : 순녀도 있잖아요. 지금 어디 계세요?



언니 : 맞아. 유복자 맞아. 오빠 이름 알아?

동생 : 오빠 이름은 성환이.

언니 : 맞아. 양순아! 50년 만인가. 40년 만인가. 나 양애다. 양순아! 어디 갔다 왔니.

동생 : 여보세요. 언니. 옛날에 옛날에 언니가 나한테 편지 한 번 한일이 있지?

언니 : 어. 받았어. 봉천서 받았다.

동생 : 어. 맞아. 봉천에서 받았어.



이옥자 : 엄마! 엄마! 엄마 보고 싶어요.

아나운서 : 서울에 지금 이옥자 씨가 나와 계시는데요. 말씀 나눠보세요. 조금 전에 전화로 통화를 했어요.

이옥자 : 조금 전에 전화로 통화를 했는데 저는 엄마 얼굴을 봐도 모르죠. 그러니까 제가 엄마를 많이 닮았다고 그래요.

아나운서 : 닮으셨어요.

이옥자 : 제 얼굴 아시겠어요? 

엄마 : 옥자야!

이옥자 : 제 얼굴 아시겠어요? 저희 아버님 이름 좀 말씀해 보세요.

엄마 : 이기준. 맞지? 

이옥자 : 네?

엄마 : 이기준.

이옥자 : 이기행이죠. 아버지 이름이.

엄마 : 그래. 기행. 기행이 맞아! 큰아버지 이용길. 큰아버지 돌아가셨지?

이옥자 : 네. 큰아버지 돌아가셨어요.



아나운서 : 네. 오늘 누구 만나신 거에요?

남동생 : 저는 저희 누나를 만난 것 같습니다.

누나 : 아무도 몰랐어요. 여태까지.

남동생 : 저는 저희 부모?형제 아무도 모르는데 저희 668호 부대 부대장님께서 꼭 가보라고 해서 어제부터 나와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동건 : 지구상의 어떤 그 천재작가가 써도 이렇게 감동적인 드라마를 쓸 수 없지 않을까. 저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분을 제가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YMCA 명예총무이신 전태구 선생께서 나와주셨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 분이 평통자문회의 부의장으로 계시는 선우정원 선생이십니다. 바로 그 천만 이산가족 재회추진위원회 위원장으로 계시는 조영식 박사께서 나오셨습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분단된 나라의 슬픔을 가장 이해하기가 아마 빠르실 겁니다. 독일 출신의 외국어대학교 교사이신 하이디 강 선생님께서 나와 주셨습니다.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 옆에 계신 분이 대한적십자사의 사무총장으로 계시는 주철화 선생님이시고요. 그 옆에 소개를 드리지 않아도 잘 아시겠습니다마는 전 이화여고 교장선생님이신 정이경 선생님께서 나와 주셨습니다.



신은경 : 그리고 이 밖에도 전쟁을 겪지는 못했지만, 이 아픔을 다 지켜보신 대학생들 나와 주셨고요. 고향을 북에 둔 실향민들 그리고 텔레비전을 쭉 지켜봐 주신 주부님들 나오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동건 : 아직도 KBS 중앙홀에는 이산가족을 찾기 위한 기다림과 애탐과 그리고 비탄이 설여 있습니다.



신은경 : 지금까지 만난 가족이 1,110여 가족이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가족들이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중앙홀을 연결해서 그곳을 알아볼까요? 중앙홀 나와 주십시오.



기자 : 네. 중앙홀입니다. 지금 이곳은 오늘 가족찾기 방송이 2시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500명이 넘는 많은 이산가족들이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있고 그리고 지금 방송국 밖에는 이보다 훨씬 많은 2천 명이 넘는, 어쩌면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종이를 손 높이 든 채 방송국 안팎을 맴돌면서 어쩌면 찾아올지도 모르는 내 부모, 내 형제 그리고 내 각시를 무작정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멀리 벽보가 보이고 있습니다마는 더 이상 들어설 자리가 없는 벽보, 이 벽보 가운데 혹시 나를 찾아주는 사람은 없는가. 내 이름 석 자는 없는가. 하면서 방송국 안팎을 맴돌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지금 계속 방송국 앞을 맴돌고 있습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혈육을 찾는 정이 이렇게 애절하고 처절할 줄 그 누가 알았겠습니까?



기자 : 선생님은 지금 어느 분을 찾고 계십니까?

남자 : 형님하고 누님을 찾고 있습니다.

기자 : 이 방송국에 나온 지 며칠이나 되셨습니까? 지금 이렇게 며칠째 기다리고 있습니까?

남자 : 6일 됐습니다.

기자 : 직장은 안 다니십니까?

남자 : 직장 다니고 있습니다.

기자 : 직장은 다니지만, 부모?형제를 꼭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계속 6일째 기다리고 있는 겁니까?

남자 : 그렇습니다.

기자 : 찾으시는 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남자 : 여태까지 친척들은 찾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앞으로 찾을 분은 이름 모를 형님하고 누나만 찾으면 되겠습니다.

기자 : 이름 모를 형님하고 누님하고 그렇게 찾으시면 됩니까?

남자 : 네. 그렇습니다.

기자 : 간단히 소개를 좀 해주시죠.

남자 : 네. 제 고향은 평안남도 평양인데요. 거기서 8남매가 있다가 아버님하고 어머니하고 막내 누나하고 저하고 넷이 나오다가 아버지는 황해도에서 돌아가시고 막내 누나는 화성군에서 죽고 어머니하고 단둘이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13년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이제 혼자 남아서 외롭고 쓸쓸해서 KBS에서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에 혹시나 하고 형님하고 누나가 있지 않겠는가. 하고 여기 와서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기자 : 지금 아주머님께서는 따님을 찾고 계신 모양인데 따님하고는 언제 어디서 헤어지셨습니까?

여자 : 1.4 후퇴 때 피난 나오며 아빠는 중간에서 잃어버리고 9남매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나와서 서울에서 수용하다가 수용소에서 헤어져서 평택군 수용소로 갔습니다. 거기 가서 수용소가 해제되어 서울로 들어가라고 해서 들어오니 갈 곳이 없어 남의 집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런 도중 어린아이 둘을 데리고 갈 수 없어서 딸을 남의 수양딸로 줬습니다.

기자 : 지금 찾고 계시는 따님을 수양딸로 보냈다는 거죠? 그 딸 이름이 김화자 씨입니까? 37세라는 거죠? 네. 아마 꼭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기자 : 아주머님께서는 아버님을 찾고 계십니까? 

여자 : 네. 아버지와 동생을 찾고 있습니다.

기자 : 아버님하고는 언제 어디에서 헤어지셨습니까?

여자 : 아버지가 8.15 때 이남에 나오셔서 자리를 잡고 저희를 데리고 오시다가 100미터도 못 남겨두고 도로 붙들려 들어가서 저희는 피난 나왔습니다.

기자 : 아버님 성함이 전태옥 씨입니까? 지금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여자 : 66세입니다.

기자 : 아버님 연세가 66세. 알겠습니다.



기자 : 할머니께서는 어느 분을 찾고 계십니까?

여자 : 저희는 강원도에서 살았습니다. 거기에 빨갱이가 오자 저희는 산으로 넘어왔어요. 저하고 아버지, 어머니는 넘어왔는데 제 위로 오빠 네 분, 언니 두 분, 이렇게 육남매가 다 없어지고 저 하나만 남았습니다.

기자 : 그래서 지금 오빠 이병준 씨하고 언니 이병옥 씨를 찾는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이 방송을 보시면 꼭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여자 :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좀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자 : 아버님 85살 이칠옥 씨를 찾는다는 이용호 씨가 나와 있고요. 그리고 할머님은 아드님을 찾으시는 모양이죠?

여자 : 네. 아들, 시누이, 손자, 시아주버니 아들. 다 여기 이름을 썼어요.

기자 : 목에 흉터가 있는 윤숙제 씨 아들. 누가 이분을 모르십니까? 목에 흉터가 있는 윤숙제 씨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십니까? 여기 나와 있는 많은 사람들은 바로 한마디 하라면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실까?”입니다.



신은경 : 며칠 밤 며칠 낮을 그렇게 보내시면서 할머님, 할아버님도 고생 많게 기다리시는데 오랫동안 기다리신 것을 생각하시고 초조하시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가족을 만나실 때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