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죽지세로 38선에 진출한 국군은 10월 1일 강릉에서 가장먼저 38선을 돌파 북진을 개시했다. 아군이 가는곳마다 북한 주민들의 환영은 뜨거웠다. 마주잡은 손과 손에는 동포의 뜨거운 피가 흘렀고 눈에는 감격의 눈물이 치솟았다. 38선을 돌파한지 불과 열흘만에 한국군 3사단과 수도사단이 원산에 입성했다. 그러나 자유를 찾은 대가는 엄청나게 컸고, 자유를 누린 기간은 너무나 순간적이었다. 시체 시체더미들 대체 누가 누구를 마음대로 죽일수 있단 말이던가

10월 20일 한국군과 유엔군이 평양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그리고 30일에는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평양에 도착한 가운데 시민환영대회가 평양시청앞에서 펼쳐졌다. 이제는 남북의 동포가 다함게 자유롭게 살수있겠거니 여기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평양북방의 숙천과 순천일대에 낙하산 투하작전을 전개한 유엔군은 적의 퇴로를 위협했다. 쫗기는 공산군은 저항할 능력도 의지도 없어보였다. 아군은 북으로 진격하면서 북괴군과 양민의 귀순을 종용하는 선무작전에도 최선을 다했다. 국군 정훈부대들은 적이잠복한 가까운 거리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귀순종용 방송을 실시했다. 손을 들고 귀순하는 양민과 병사들이 참된 자유를 누릴수가 있었다. 북진하는 국군과 유엔군은 발길도 사뭇 가벼웠다. 박천을 거쳐 일로 압록강으로 향했다. 10월 말경에 이르러 한국군과 유엔군은 마침내 한만국경까지 진격해들어갔다. 10월 26일 한만국경에 있는 초산에 도착한 국군선봉대 이제야 말로 국토 통일이 눈앞에 온 것으로 여겨졌다. 눈앞에 전개된 저 강이 바로 압록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