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4일 토요일밤의 서울은 평온하기만 했다. 38선상의 6월 25일 새벽 정확히 4시 20분 소련제 T34탱크를 앞세운 북한 공산군은 전면 남침을 자행했다. 6월 25일자 서울의 신문들은 북한 괴뢰군이 돌연 남침을 기도했지만 정예의 국군이 공격중이며 전에도 자주 있었던 산발적인 충돌로 판단하고 민심은 지극히 평온하다고 보도했다. 갑자기 북괴의 전면남침을 당한 국군은 긴급히 대책을 마련코자 했으나 별다른 방도가 없었다. 치밀한 계획아래 현대식 무장을 하고 잘 훈련받은 11만 북괴군은 거침없이 남진해왔다. 그날 세계신문들은 북괴군의 불법 남침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뉴욕시간으로 이날 오후 3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마침 소련대표가 참석치 않아 거부권 행사 없이 북한에 대해 즉각 공격을 멈출것과 그들의 병력을 38선 이북으로 철수할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전세는 시시각각으로 국군에게 불리했고 장비와 병력등 모든면에서 월등한 북괴군이 빠른 속도로 남진했다. 침략군은 마침내 임진강을 건너고 말았다. 6월 26일 27일에 이어 28일에 이미 북괴군은 서울을 장악하고 인천 영등포 춘천 강릉으로 이어지는 전선을 구축할수 있었다. 28일 새벽 국군은 한강대교를 포함한 두 개의 철교를 폭파하고 남쪽으로 후퇴했다. 적의 남진을 지연시킬 목적이었으나 이바람에 피난길이 막혀버린 시민들도 많았다. 개전 사흘후인 이날 오전 북한 공산군은 서울을 짓밟았다. 이상하게도 북괴군은 이로부터 3일간 승리에 도취되어 서울에서 질척거리고 있었다. 이 때문에 한국군은 시간을 벌수 있었다. 마침내 북괴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한강을 넘었다. 한강 방위선이 무너지면서 남하하는 피난민들의 발걸음도 바쁘기만 했다. 당시 수원역 앞을지나 남쪽으로 걸음을 재촉하던 피난민들 살던집 정든 고향을 버려두고 목숨을 부재하기 피난길을 떠나야만 했던 이 참담한 비극을 오늘의 우리는 어떻게 헤아릴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