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대동강 철교 곡예사처럼 철길을 타고 평양 사람들은 강을 건넜다. 남으로 향하는 가까운 길은 철길이다. 누구나 힘에 겨운 봇짐을 지고 사력을 다해 걸어갔다. 아무리 쏘아도 중공군 숫자는 줄지를 않는다. 인해전술의 무서운 힘에 유엔군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유엔군은 그해 크리스마스를 철수 길에 맞이했다. 음악( 기쁘다 구주 오셨네 ~)피난길에 한국아이들 유엔군이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철없는 아이들은 즐겁기만 하다. 음식이 많아도 그들 앞에서부터 아껴 먹는 아이 이들이 살았다면 30대 후반이 되었을 것이다. 원안의 3.8선을 또 뒤로 두고 철수하는 병사들 이 민족의 비극을 3.8선은 지켜보고 있다. 정부는 서울시민에게도 피난령을 내렸다. 이것이 한 많은 1.4후퇴였다. 6.25가 일어났을 때를 생각해서 시민들은 서둘러 피난길에 올랐다. 서울역 근처의 남대문거리다. 서울역을 메운 피난민들 언제 와서 언제 떠날지도 모르는 기차를 마냥 기다렷다. 그 지루함을 뜨개질로 메우는 아주머니 당시 서울 시민은 120만 명이었다. 북에서 남하한 50만 명과 함께 한강으로 향하는 길은 큰 혼잡을 이루었다. 수난의 한강은 얼어붙었다. 김포공항에서의 유엔군 고아 수송 작전이다. 패스대령의 얘기를 전송가는 영화로도 제작한 실제 현장인 것이다. 영등포역 객차든 하차든 올라탈 수 있는 곳은 다 올라탔다.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얼어붙은 찬도시다. 화통연기와 뿜어대는 전기에 견디어야만 했다. 얼어붙는 아기얼굴을 자기얼굴로 녹이려는 엄마의 모정 두려움과 겁에 질린 아이들의 눈망울 떨어질까봐 화통에 아이를 매어 놓는 아버지 화통에서 뿜어대는 전기는 얼굴에 닿자 곧 얼어붙는다. 이윽고 기차는 떠난다. 일정한 시간도 없이 기차나 차량이 마련되는 대로 떠나는 피난 열차였다. 인천항이다. 인천역에도 피난민은 몰려들었다. 이것은 먼 얘기가 아니다. 바로 30년 전 우리가 겪었던 일이다. 운 좋은 사람들은 배를 탔다. 고기잡이배든 조각배든 가리지 않고 인천의 시설물은 모두 폭파되었다. 세 번이나 당하는 파괴에 인천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렸다. 텅 빈 주인 없는 서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