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에 상륙하는 유엔군 함흥에서의 수복 환영대회에 이승만 대통령도 참석했다. 극심한 핍박을 받던 북한의 크리스찬은 누구보다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마음놓고 하나님께 머리숙였다.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전선은 계속 북상했다. 백두산 방향의 치산진으로 향하는 유엔군은 겨울이 성큼 다가온 추위속에 험한 산구비를 계속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전선은 심상치 않은 조짐도 있었다. 포로중에는 중공군도 끼어 있었던 것이다. 중부전선의 국군 박천을 거쳐 국군은 추워지는 날씨에 외투를 갈아입을 틈도 없이 압록강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신문들도 국경선에 가까워지는 전선소식에 들떠 있었다. 벌써 눈이 내렸다. 유엔군은 눈속을 헤치며 치산진으로 진격해들어갔다. 11월 21일 유엔군은 한만 국경선 압록강에 도달했다. 인적은 없고 유령 도시같은 치산진 그리고 그렇게 와보고 싶었던 압록강변 국군 선봉이 국경선 초산에 도달한것은 치산진 보다 한달앞선 10월 26일이었다. 정확히 10월 26일 오후 2시 15분의 일이다. 국군은 압록강 물을 떠서 마시고 휘발유통에 담아서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내 이 기쁨을 온국민과 같이 나눴다. 신문도 연내로 북한에서 선거를 실시할것이라는 추측 기사를 썼다. 압록강변 미군들의 기쁨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추수감사절도 끼어서 본국에서 보낸 칠면조 고기로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한반도에서 가장 추운 중강진을 낀 이 일대에 겨울이 왔다. 그러나 모진 추위보다 더욱 쓰라린 현실이 닥쳐오고 있었다. 그것은 중공군의 개입이었다. 중공의 수도 북경의 조선관 전세가 불리해지자 북괴는 허정숙을 단장으로 하는 사절단을 북경에 급파했다. 구원병을 애걸한것이다. 당시 소련은 중공의 한국참전이 3차대전을 유발할것을 걱정했으나 모택동은 정규군대신 인민의용군 형식으로 참전하면 걱정할것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