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맞은 서울의 밤거리는 흥청거렸다. 25일 새벽 정확히 4시 20분 소련제 T34형 탱크 242대를 앞세운 북괴보병 10개 사단 11만 1천 병력이 38선 전역에서 남침했다. 6월 25일자 서울의 신문은 괴뢰군이 돌연 남침을 기도했지만은 시내 민심은 지극히 평온하며 전에도 때때로 있었던 단발적인 충돌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군당국은 휴가와 외출을 나왔던 장병들에게 가두방송까지 동원 원대복귀를 종용했다. 우리 국군은 전열을 정비했다. 그러나 치밀한 계획하에 탱크를 앞세운 괴뢰군 병력앞에는 너무도 무력했다. 임진강을 넘은 괴뢰군의 1차 목표는 서울이다. 임진강과 의정부 방어선이 무너지자 국군은 개전 사흘만인 28일 새벽 2시 반 한강대교와 철교를 폭파하고 후퇴했다. 28일 오전 북한 공산군은 서울을 점령했다. 대다수의 서울 시민은 엉겁결에 피난을 가지도 못했다. 북괴 탱크는 지체하지 않고 한강 철교를 넘었다. 1차대전으로 가장 큰 규모의 전란으로 등장한 북괴의 불법 남침 외신은 곧 북괴남침을 전세계에 알렸다. 뉴욕시간으로 이날 오후 3시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긴급 회합을 갖고 북괴에 대해 즉각 침략행위를 중지할것과 병력을 38선 이북으로 철수할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 결의안은 마침 소련 대표가 참석치 않은 관계로 거부권 행사 없이 9:0 기권 한표로 채택됐다. 한강 방위선이 무너지자 수원이남으로 피난민은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전쟁의 비극은 차츰차츰 그 처절함을 더해갔다. 국군은 1차로 안양에서 집결해 남하하는 적을 저지하려고 했다. 일요일 새벽을 골라 남침해온 북괴의 만행에 국민들은 정신차릴 여유도 없이 피난길에 올랐다. 무조건 남으로만 발길을 재촉한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