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피난지 부산.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임시로 몰려 살았습니다. 한숨과 눈물과 굶주림의 피난생활. 돌이킬 수 없는 이 비극속에서 후회는 결코 앞서지 않는다는 사실이 가슴을 메웁니다. 허기져 쓰러진 아이와 노인들. 고달픈 피난생활 속에서도 아이들은 피난학교에 이렇게 모였습니다. 대학은 판자집이나 천막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안전 보장없이 결코 자유로운 배움이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3년 1개월에 거친 6.25 동란은 숱한 비극을 남긴 채 끝이 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휴전일 뿐입니다. 혈육을 찾아 헤매던 어제의 기억들을 우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남편을 잃은 여인들. 억울하게 죽어간 아들딸들. 민족의 가슴에 총부리를 들이댄 공산도개들 해독불가(12:48). 6.25 전범자 김일성 일당은 아직도 무력적화의 망상을 버리지 않은 채 또다시 남침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6.25직전처럼 다시 미지상군의 철수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27년전 그때와는 다릅니다. 그날의 폐허위에 우리는 번영의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겐 자립경제와 자주국방 그리고 이 나라를 영도하는 힘있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3500만이 뭉친 총화의 힘이 있으며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의 피땀으로 쌓아올린 번영을 또다시 이렇게 폐허의 잿더미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밝게 곧게 자라는 우리의 아들딸들을 의지할 곳 없는 고아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나라를 지킬 결의가 섰을 때 우리는 살 수 있습니다. 27년 전의 그 참상을 되새기며 오늘 날 우리는 자주국방의 결의를 다시 한번 굳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