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기억속에서 점차 잊혀져 가는 6.25의 비극. 그러나 우리는 27년 전의 그 비극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6.25 동란이 나던 1950년 봄 38선 이남의 사람들은 무방비상태에서 절제없는 자유를 누리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해 5월 30일 제 2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이 나라의 지도층은 아무도 나라의 안전을 걱정하는 이가 없었습니다. 모내기에 한참 바빴던 6월 바로 그 무렵 북괴는 모든 전쟁준비를 마치고 전투부대를 38선 전역에 은밀히 집결시켰습니다. 6월 25일 새벽. 평화롭던 이 땅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바뀐 그 날의 비극을 어찌 우리가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밀어닥친 괴뢰군. 그 때 우리는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서울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집을 잃고 혈육과 헤어진 채 피난의 길을 떠나야 했습니다. 자욱자욱 고인 설움과 울분. 그 때 우리는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을 천번만번 후회했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과오로 우리 스스로 겪은 시련은 컸습니다. 곧 전쟁이 끝나리라는 우리의 기대는 무너져 전선은 낙동강으로 대구로 밀려내려왔고 피난의 길은 이어졌습니다. 당시 포항의 송도해수욕장에 몰려든 피난민들. 이것이 27년전 바로 우리가 겪었던 피난 생활의 모습입니다.